[김지혜의 논픽션] 박찬욱 감독이 '무뢰한'의 기획자로 나선 이유

김지혜 기자 2015. 5. 28. 08: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BS funE | 김지혜 기자] 영화 '무뢰한'은 오승욱 감독의 15년 만의 복귀작이다. 오승욱이 연출하고, 전도연, 김남길이 연기하며, '신세계'를 제작한 사나이 픽처스가 제작한 끝에 근사한 하드보일드 멜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 화려한 제작진에서 또 한 명의 흥미로운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올드보이', '박쥐'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은 조영욱 음악감독과 더불어 '무뢰한'의 기획자로 이름이 올라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과 음악감독이 '무뢰한'의 기획자로 나선 사연은 뭘까.

오승욱, 일반 관객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영화계에서 그의 발자욱은 선명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두 영화 '초록물고기'(1997)와 '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성공 뒤에는 오승욱 감독이 있었다. 두 작품에서 오승욱 감독은 이창동, 허진호 감독과 함께 각본을 썼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오승욱 감독은 "미술보다 영화가 좋다"는 이유로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시작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출부였다. 이 영화를 통해 이창동 감독('그 섬에 가고 싶다' 각본)과도 인연을 맺었다.

연출부, 시나리오 작가를 거친 오승욱 감독은 2000년 영화 '킬리만자로'로 연출 데뷔했다. 당시 충무로 최고의 파워맨이었던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제작하고 안성기, 박신양이 주연을 맡았다.

'킬리만자로'는 밑바닥 인생의 끝없는 절망을 통해 삶의 애환을 그려낸 수작이었다. 코미디를 강조한 조폭영화가 홍수처럼 쏟아지던 시기, 하드보일드 느와르라는 매혹적인 장르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렸다.

그러나 평단의 호평과 마니아들의 지지가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전국 9만 5,541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데뷔작이 흥행에 실패한 탓에 두 번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긴 휴식기를 보냈지만, 오승욱 감독은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다. 그렇게 완성한 각본 중 하나가 '무뢰한' 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좀 더 빨리 영화화 될 수도 있었다. 오승욱 감독의 영화세계를 지지했던 박찬욱 감독이 제작에 나섰다. 2005년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제작사 모호필름에서 제작하려 했다. 그러나 캐스팅, 투자 등이 순조롭지 못했다.

오승욱 감독은 "여배우 캐스팅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노출도 좀 있고, 대사도 거칠어 출연한다는 배우를 찾기가 어려웠다. 제작비 역시 15억에서 7억까지 낮춰봤지만 투자가 여의치 않았다"고 당시의 어려운 상황을 회고했다.

모호필름에서 약 1년간 제작을 준비했던 '무뢰한'은 결국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좌초된 영화가 수면위로 다시 떠오른 건 오승욱 감독이 사나이 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를 만나면서부터다.

'무뢰한' 프로젝트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며 재도전에 나섰다. 가장 난제였던 여배우의 캐스팅은 "어차피 거절당할 것이니 톱 여배우에게 건네보자"는 마음으로 전도연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놀랍게도 전도연으로 부터 "시나리오가 너무 좋다. 출연하겠다"는 답이 왔다.

투자·배급은 CJ엔터테인먼트에서 CGV아트하우스로 자리를 옮긴 이상윤 사업 담당이 나서며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2008년 첫 발을 뗀 '무뢰한' 프로젝트는 무려 7년 만에 열매를 맺었다. 제작 사나이 픽처스, 기획 박찬욱·조영욱, 투자·배급 CGV 아트하우스, 감독 오승욱, 주연 전도연·김남길, 음악 조영욱이라는 화려한 라인업으로 말이다.

오승욱 감독은 "모호필름과 계약을 했는데 결국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1년 동안 제작을 준비하며 쓴 진행비도 상당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한재덕 대표에게 "부디 영화를 잘 만들어달라"며 그간의 진행비를 받지 않았다. 한재덕 대표는 박찬욱 감독의 뜻에 고마워하며 크레딧으로도 예의를 다 하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무뢰한'은 각 분야의 장인들이 오랜 시간 발로 뛰어 완성한 인내의 산물이다. 이를 일찌감치 알아본 칸영화제는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했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관객의 사랑만 남았다.

'무뢰한'은 진심을 숨긴 형사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멜로 영화로 지난 27일 개봉했다.

ebada@sbs.co.kr

▶ SBS 실시간 방송 정보 APP 다운로드

[SBS FunE 관련기사]

[김지혜의 논픽션] '서울이 낯설다?'…'어벤져스2' 한국 묘사의 견해차

[김지혜의 논픽션] 하정우도 울고 갈 '차이나타운' 속 먹방의 의미

[김지혜의 논픽션] 충무로 장수생의 2번째 도전…이번엔 통할까

[김지혜의 논픽션] 히어로·미친맥스 잡은 '악의 연대기'의 힘은?

[김지혜의 논픽션] '끝까지 간다', 363일의 놀라운 여정…'제목대로 왔다'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