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힘이 잔뜩 들어간 배우였다"..김남길, 11년차에 찾은 해답

2015. 5. 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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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서보현기자] 지난 2013년. 연기를 시작한지 꼬박 10년이 되던 해였다. 남들이라면 축포를 쏘아 올릴 그 때, 그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배우에 안맞는 게 아닐까?"

그는 연기로 승부를 본 배우였다. 연기력 하나로 단역에서 조연, 조연에서 주연까지 올라갔다. 그저 연기가 좋아서, 긴 무명 생활도 견뎌왔던 그였다.

그런 그가 흔들리고 있었다. 정체성을 의심하니 자신감도 떨어졌다. 배우 유해진이 "왜이리 중심을 못잡는거냐"고 질책할 정도였다.

스스로를, 자신의 연기를, 냉정하게 돌아봤다. 그리고 머지않아 깨우쳤다. 그는 달라져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돌파구는, 그래도 연기였다.

압박감을 내려놓고 힘을 풀었다. 멋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려 했다. 의구심이 들 때 마다 전도연이 손을 잡아줬고, 일으켜 세워줬다.

"비로소 힘을 뺐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힘 뺀 연기가 어떤건지 알게 됐어요. 이제서야 저는, 시작인 것 같습니다."

김남길이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으로 또 한 번 출발선에 섰다. 그의 연기는 이제 진짜 시작이다.

◆ 김남길의 고집

김남길에겐 목표가 있었다. 고유의 색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었다. 롤모델인 양조위가 그랬듯, 김남길도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지려 했다.

"배우에겐 한 가지 특별한 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화된 캐릭터가 있어야 된다고요. 그래야 변신을 하더라도, 신선할거라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색은 어두웠다. 내면에 상처가 있는 인물을 골랐다. 드라마 '굿바이 솔로', '선덕여왕', '나쁜남자', '상어', 영화 '모던보이', '미인도' 등이 그랬다.

"아픔이 있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성장하고, 치유하고, 복수하는 사람들요. 그렇게 지금까지 비슷한 캐릭터를 반복해 왔습니다."

◆ 김남길의 변신

더 잘하려는 마음은 욕심을 불렀다. 캐릭터를 강렬하게 표현하려는 생각에 힘을 잔뜩 줬다. 더 멋있고, 더 강하고, 더 세게 구사하려 했다.

그러다 고집(?)에 균열이 생겼다. "이렇게 연기하는 게 정답일까?"싶었단다. 아쉬움이 남았고, 그럴 수록 의구심이 커졌다.

"그동안 (연기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죠. 어느 순간 (힘이 들어간) 그 연기가 식상해지더라고요. 무언가를 깨고 싶어졌습니다."

확신을 갖게 된 건 전도연의 한 마디였다. "네가 잘하는 연기는 20대에 다 하지 않얐냐"는 충고였다.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는 조언이었다.

"전도연 선배가 말하더군요. 어떤 하나의 감정이 정답은 아니라고요. 그러니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말라고요. 네가 느낀 만큼만 표현하라고 말이죠."

◆ 김남길의 에너지

'무뢰한'은 그 시험대였다. 그는 비정한 형사 정재곤 역을 맡았다. 살인 용의자를 잡기 위해 그의 여자 김혜경(전도연 분)에게 접근하는 인물이다.

정재곤은 대사도, 표정도, 건조하다. 그 어떤 상황에도 덤덤하다. 김혜경에게 빠졌을 때도, 또 김혜경에게 상처를 줄 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정재곤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설명이 되는 인물"이라며 "내가 따로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힘을 덜어내고 주위와 섞였다"고 말했다.

힘들 때면 전도연을 보며 에너지를 냈다. 실제로 그녀는 늘 변화를 모색하고, 그에 맞춰 노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김남길에게 일종의 배우 교과서였다.

"전도연 선배는 자신의 연기를 늘 고민하고 점검해요.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데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더 치열하게 연기해야겠다고 채찍질했죠."

◆ 김남길의 새 시작

김남길은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더 나은 연기,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 데뷔 12년차에 스스로 찾은 해답이었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쉬움을 털어놨다. 그러나 이 영화로 연기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건, 분명해 보였다.

"전보다 힘을 뺐을 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해요. 단, (앞으로)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힘을 뺄 수록 깊어진다는 걸 알았으니 말입니다."

김남길은 솔직했다. 부족한 부분까지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매 작품을 할 때, 또 끝낼 때 마다 늘 출발선상에 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그렇고요. 그래도 조금 다른 기분이 듭니다. 저는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12년차 배우, 김남길은 다시 달릴 준비를 마쳤다.

<사진=김용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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