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약자들 "초능력 생겨도 살기 힘든 세상"

강은영 입력 2015. 4. 27. 20:37 수정 2015. 4. 2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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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시대' 20대 취업준비생, '냄새를 보는 소녀' 범죄 피해자

부조리 해결 못 하는 법ㆍ제도 풍자

'여자를 울려' '앵그리맘' 아줌마는 학교폭력 해결사로 맹활약

취업준비생, 엄마, 소녀 등 약자들이 사회부조리에 맞서는 히어로가 된다. 영웅이 필요하지만 영웅이 없는 시대다. 사진은 MBC '여자를 울려' MBC 제공

SBS '냄새를 보는 소녀' SBS제공

tvN '초인시대'. CJ E&M 제공

TV는 지금 영웅시대다. 그런데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히어로들처럼 지구를 구하는 막강한 능력의 영웅 이야기가 아니다. 20대 취업준비생(tvN 금요극 '초인시대'),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긴 소녀(SBS 수목극 '냄새를 보는 소녀'), 고교생 딸을 둔 아줌마(MBC 수목극 '앵그리맘', 주말극 '여자를 울려')가 어울리지 않게 영웅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나약하고, 초능력이 있어도 조롱거리에 가까운 이 히어로들은 법과 제도를 풍자하는 동시에 세상이 개선되지 않으리라는 허무함을 반영하고 있다.

"아직 학자금 대출도 다 못 갚았는데, 취업도 못했는데 이제 학교에서 쫓겨나게 생겼네." '초인시대'의 주인공들은 20대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이다. 집안에선 천덕꾸러기, 좋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 앞에선 주눅들기 일쑤다. 24일 방송된 3화 '눈물의 졸업식'에선 입사 면접 때문에 혹은 일부러 친구들을 피하려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캠퍼스의 현실이 담겼다. "어차피 떨어질 면접에 왜 가냐?"며 졸업식에 오라는 친구의 말에 병재는 "넌 오늘만 살지? 난 내일을 살련다"고 말하며 취업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병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을 이용해 같은 면접을 37번이나 본다. 그러나 외모나 학벌, 집안 배경 등 사회가 요구하는 필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병재에게 탈락의 고비는 어쩌면 당연하다. 초능력으로도 합격을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쓰디쓰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초인시대'의 주인공들은 초능력을 가졌지만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는 허무주의를 극적으로 보여준다"며 "유병재가 벌거벗고 뛰어야만 초능력이 발휘되는 설정부터 우습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건 현실이 워낙 무겁기 때문에 공감하는 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학교 폭력에 멍든 아이들을 위해 해결사를 자처한 아줌마 조강자('앵그리맘')와 정덕인('여자를 울려')은 공권력과 교육제도로 학교 내 원조교제나 폭력, 비리 등 사회 부조리를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정덕인이 학교를 향해 "엄마들이 대체 누구를 믿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느냐, 맞아 죽을까 겁나서 어떻게 학교에 보내느냐!"고 외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복면을 쓰고 주먹으로 해결하려는 검사(KBS2 '복면검사')의 이야기도 제 얼굴로는 영웅이 될 수 없는 사회 부조리를 드러낸다.

그나마 냄새를 보는 능력으로 실종자들을 찾아내는 소녀 오초림('냄새를 보는 소녀')은 경찰의 맥 못 추는 수사를 비웃으며 영웅의 역할을 한다. 조강자나 정덕인이 홀로 정의가 사도가 되려하는 활약상을 보이는 장면도 어느 정도는 통쾌함을 줄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강한 면을 강조한 예전의 영웅 드라마와는 달리 최근에는 무언가에 억눌린 사회적 약자들이 서민들의 영웅으로 나온다"며 "그러나 여전히 법과 제도의 틀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이 더 부각될 뿐이어서 서글픈 면이 많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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