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질풍노도 시기에 만난 남편, 덕분에 버텼다"(인터뷰)

김수정 2014. 11. 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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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수정 기자] 바야흐로 문정희(38) 시대다. MBC 드라마 '마마'로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더니, 스크린으로 발걸음을 옮겨 지난 13일 개봉한 '카트'(부지영 감독, 명필름 제작)에 이어 20일 개봉한 '아빠를 빌려드립니다'까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문정희를 만났다.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는 명문대 출신이지만 10년째 백수 생활 중인 이빠 태만(김상경)을 엉뚱한 딸 아영(최다인)이 학교 나눔의 날에 내놓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문정희가 연기한 지수는 동네 단골 손님을 꽉 잡고 있는 미용사로, 백수 남편 태만과 딸 아영을 먹여 살리는 슈퍼맘이다. 백수 남편과 늘 티격태격하지만 나가서는 기죽지 말라고 태만에게 새 구두를 선물하는 속 깊은 인물이다.

'연가시', '숨바꼭질', '카트'까지. 스크린 안에서 늘 강인하고 어딘가 사연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 문정희는 이번 작품에서 어깨에 힘을 뺀 생활 연기를 선보였다. 남편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방귀를 뀌고, 자기 전 꼼꼼하게 '콜드크림'을 바르는 문정희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시대 엄마의 모습이다.

"솔직히 시나리오 자체는 밋밋했어요. 하지만 김덕수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죠. 감독님의 위트, 에너지가 참 좋았어요. 우리도 이제 웬만큼 짬밥이 생겨서(웃음) 감독들을 만나면, 그냥 하는 소리인지 정말 진심과 자신감이 있는지 한눈에 알아요. 김덕수 감독님은 후자였어요. 배우들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대단하신 분이에요. 정말 즐겁게 찍었고, 오랜만에 영화 안에서 생활 연기를 할 수 있어서 마냥 재밌었어요."

다음은 문정희와 일문일답.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출연 전에 원작을 읽어봤는데 정말 좋았다. 꼭 뭘 해야 아빠가 아닌, 존재만으로도 아빠가 의미를 갖는다는 게 좋았다. 아빠가 능력 있는 아빠든, 그렇지 않든 '아빠' 외의 수식어를 다 걷어내고 오롯이 아빠라는 존재만으로 다가왔다.

-김상경의 코믹 연기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으하하. 본인한테 딱 맞는 걸 한 거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었던 히든카드가 바로 코미디 연기였던 거다. 태만 캐릭터와 적역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이 한 방을 노린 것 같다.

-김상경이 다소 판타지적인, 붕 뜬 연기를 했다면 그걸 현실적으로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정확하다. '우리 영화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야'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현실적으로 끌어당기는 연기를 해야 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영화에서 생활적인, 예쁜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숨바꼭질', '연가시' 모두 너무 셌다. 그런 디테일한 생활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재밌었다.

-지수는 무능력한 백수 남편 태만을 묵묵히 10년 동안 기다려준다. 어느 정도 공감했나

10년 백수는 사실 상징적인 의미고, 난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다고 본다. 지수가 "난 새끼 두 명 키워"라는 대사를 하는데, 난 그게 그렇게 공감되더라. 하하. 지수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태만의 낡은 구두에 마음 쓰지 않나.

-지수가 가장으로서 생활고를 겪는 모습의 디테일한 연기가 좋았다. 집주인의 부당한 처사에 억울해 할 땐 '카트'가 떠오르기도 하더라

실제 우리 인생을 돌이켜 보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당장 분노하거나 내지르지 못한다. 오히려 쓰레기통에 발을 부딪혔거나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눈물이 쏟아지는 식이지.

-무명 시절 실제로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고

그때를 생각해 보면 터널이 끝이 안 나는 기분이었다. 여자들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질풍노도가 찾아온다. 그때 사춘기가 오는 거다. 직장에서의 위치도 애매하지, 경제적으로 독립도 안 되지, 정체성도 확립이 안 돼, 연애도 내 맘대로 안 된다. 짜증, 짜증, 개짜증만 나는 거다.(좌중폭소) 스트레스 받아서 먹긴 또 엄청 먹는다. 그때 내 짜증을 모두 다 받아준 게 지금의 남편이다. 그 당시 남편이 내게 자주 했던 말이 '너 왜이렇게 꼬였어? 너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였다. 정곡을 찌른 거다. 당시엔 연애하면서 매일 울었다. 정말 힘들었다.

-작품 하나에 출연료가 50만 원이었다고. 생활이 되나?

차비도 안 나오는 거지. 커피 한 잔 마시면 만 원인데, 만 원이면 내 며칠 생활비였다. 그러니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며 스트레스도 못 풀었다. 다행히 내 곁에 남편이 있어줬다. 버텨야 하는구나, 도망가지 말자는 생각에 정말 힘들었지만 딱 버티고 섰다.

-그때 생각하면 요즘 참 행복하겠다.

막상 그렇지도 않다. 하하. 좋은 일이 있다고 다 좋지도, 힘든 일이 있다고 다 힘들지도 않은 게 인생 같다. 현실에 나를 확 담그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나 자신과 항상 싸운다. 어느 날 어떤 도인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평정을 지킬 수 있는 건,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그 분노가 찰나의 순간처럼 짧기 때문이라고. 찰나의 순간 분노의 끝까지 다녀오는 거지. 나도 내가 갖고 있는 화, 슬픔, 분노가 모두 다 소중하다. 화가 나는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거다.

-이제 집 밖에만 나가도 많이 알아보지 않나

내가 생각만큼 튀는 스타일이 아니다. 목소리로 알아보시는 편이라 말만 안 하면 된다. 평소에 마트에서 쿠폰을 많이 쓰는 편인데, 쿠폰을 쓰려면 얘길 해야 하지 않나. 쿠폰을 못 써서 아쉽다. 하하.

-tvN '택시' 출연 이후 '지진희 닮은꼴' 남편이 화제가 됐다.

남편이 '문정희 남편'인 줄 아는 사람이 몇 안 된다. 방송 다음 날 그분들께 밥 샀다더라.(웃음) 그분들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하. 사실, 배우 남편으로 산다는 건 엄청 불편한 일이다. 남편의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이선화 기자 seonflower@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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