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인생> 용감한형제 "킬러 콘텐츠 제작에 목말라있다"

2014. 11. 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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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데뷔 10년..새 사옥 짓고 종합엔터사 발돋움 "브레이브엔터 브랜드 가치 높이는 게 숙제"

작곡가 데뷔 10년…새 사옥 짓고 종합엔터사 발돋움

"브레이브엔터 브랜드 가치 높이는 게 숙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작곡가 용감한형제(본명 강동철·35)는 여느 스타급 가수 부럽지 않은 가요계 유명 인사다.

2002년 YG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출발했지만 2005년 렉시의 '눈물 씻고 화장하고'로 작곡가 데뷔를 한 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의 히트곡을 내며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2008년 YG에서 나와 기획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이하 브레이브)를 설립한 뒤 2010년 일렉트로보이즈를 시작으로 빅스타, 브레이브걸스, 박수진 등을 배출하며 음반제작자로도 나섰다.

최근에는 강남구 역삼동에 지하 2층, 지상 5층짜리 브레이브 사옥인 'YH 빌딩'을 세웠다. 작곡가로는 10년 차지만 회사 설립 6년 만에 사옥까지 세우는 성공을 거뒀다.

또 작곡가 회사란 개념을 탈피하고자 매니지먼트 확장을 결정했다. 그 첫 단추로 최근 김사랑, 정만식, 김병춘 등의 배우들을 영입하고 매니지먼트 인력을 보강해 이곳에서 종합엔터테인먼트사로 도약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하기 시작했다.

새 사옥에서 만난 용감한형제는 공격적인 사업 전개에 대해 "SM·YG엔터테인먼트는 유명한 프로듀서가 이끌고 있지만 기획사의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다"며 "우린 브레이브 보다 내 이름이 더 인지도가 있는 상황이어서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내 숙제"라고 강조했다.

이전보다 가수 육성에도 한층 움직임이 클 것이란 그는 "좋은 콘텐츠 제작은 변함없는 나의 목표"라며 "사옥을 설립한 것도 임대로 기획사를 꾸렸더니 운영 자금이 많이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내년 2월 완공을 목표로 서초동에 연기자 및 매니지먼트 팀들이 들어갈 또 다른 사옥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 히트 콘텐츠 산실…"내년 아이돌 판도 바꿀 그룹 계획"

브레이브에는 용감한형제 외에도 별들의전쟁, 미스터강, 코끼리왕국, 미쓰리, 제이에스 등 5개의 작곡팀이 더 있다. 여느 기획사와 달리 사옥도 작곡가들의 작업실 6개, 녹음 스튜디오 2개, 보컬 레슨 부스 2개, 연습실 1개 등 음악 콘텐츠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작곡가가 유기적으로 협업하며 음악을 만들어내 씨스타, 손담비, 애프터스쿨, AOA, 틴탑 등 다수 가수가 스타로 성장하는데 일조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용감한형제의 작품 수는 350여 곡.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음반제작자치고 그에게 곡을 의뢰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손담비의 '미쳤어', 씨스타의 '나혼자' '마보이' '있다 없으니까' 등 히트곡은 부지기수다.

특히 성장세가 정체됐던 포미닛이 지난해 그의 곡 '이름이 뭐예요?'와 '물 좋아?'로, 데뷔 2년에도 뜨지 못한 AOA가 올해 그가 작곡한 '짧은 치마'와 '단발 머리', '사뿐사뿐'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한 단계 도약했다. 그가 '심폐소생 작곡가'로도 불리는 이유다.

용감한형제는 "단순히 노래만 만드는 게 아니라 무대, 안무, 의상 등 전체적인 콘셉트를 잡는 프로듀서 역할을 해 성과가 좋았던 것 같다"며 "내가 큰 그림을 그리면 전문가들이 멋있게 포장해 준다. 특히 변화와 발판이 필요한 가수들이 잘되면 큰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간절한 마음으로 만드니 한두 번의 우연이 아니라 성공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악에 대한 나의 의지인데 평상시 말하는 중에도, 길 가다가도, 노는 순간에도 음악만 생각만 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획사에서 키운 가수들이 '킬러 콘텐츠'가 되지 못한 점은 스스로 인정했다. "남의 가수만 잘 키운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며 "시스템을 정비하고 공부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스타를 육성하는 건 혼자 할 수 없는데, 제 가수는 저 혼자 도맡아 하려고 했어요. 식품 회사도 제품을 내놓을 때 음식을 만든 후 소비자에게 어필하고자 포장 디자인, 마케팅, 광고 등을 맡는 팀이 분업화돼 있잖아요. 그간 우리 회사엔 이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전문 인력이 보강돼 더 잘해낼 자신감이 생겼죠."

내년에는 3인조로 된 새로운 남성 그룹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주변 환경이 안정되니 더 큰 꿈을 그리게 된다며 지금의 아이돌 판도를 바꾸는 팀을 선보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성공 여부는 '대중의 심판'이지만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연습실에서 슬쩍 엿본 이들은 잘생긴 외모에 현란한 춤 실력을 갖췄다.

"서태지와아이들이 1990년대 음악계 판도를 바꿨듯이 의미 있는 방점을 찍고 싶어요. 2007년 렉시의 '하늘 위로'를 통해 '힙트로닉'(힙합+일렉트로닉)을 선보이자 이전 3년간 주름잡던 '소몰이 창법' 장르가 저물고 일렉트로닉이 활성화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죠. 내년엔 장르의 변화가 필요한데 3인조 그룹을 통해 제시하고 싶어요."

그는 이어 "요즘 서태지와아이들과 듀스의 노래를 미친 듯이 듣고 있다"며 "힙합과 댄스 뮤직이 섞인 랩댄스뮤직 장르가 한 번 더 도래할 것 같다. 물론 신선한 트랙이 필요하고 헤어와 패션까지 모두 새로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 자리에 오기까지 노력과 고민이 컸지만 콘텐츠의 생산량이 많고 연간 음악저작권료가 수억원에 이르다 보니 아이돌 음악만 만든다, 비슷한 곡을 쓴다는 비난도 받았다.

특히 감성적인 멜로디에 랩을 가미한 스타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남성보다 여성의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가 강점이어서 딱 들으면 '용감한형제 곡이구나'란 걸 느낄 때도 있다.

그는 "감성은 내재된 것이니 제 음악의 시그니처(Signature)인 셈"이라며 "트랙의 장르와 멜로디 라인에 변화를 주며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나뿐 아니라 작곡가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철없던 청년기 딛고 자수성가…"세계적인 엔터 기업이 목표"

용감한형제는 팔과 목을 감싼 문신, 방송에서 들려준 어두웠던 청년기에 대한 고백 등으로 거친 이미지가 강해 악플을 달고 산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 속에 소녀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여성성이 강하다.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는 그의 사옥에는 입구부터 베어브릭(곰을 의인화한 모형 장난감) 등 곳곳에 아기자기한 피규어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난 무섭게 한 적이 없다. 해코지 안하고 내 일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웃은 뒤 "혼자 음악할 때와 달리 기획사를 운영하고 직원이 생기니 책임감도 강해졌다. 이 가족들을 지켜야 해 성숙해질 수밖에 없다.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평범하지 않은 10대를 보낸 탓이다. 서라벌고등학교 입학식에만 가고 자퇴한 그는 유흥업소에서 DJ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 음악에 별 관심 없던 그는 그곳에서 사이프레스힐과 투팍의 음악을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땐 싸움도 하고 다니며 분노가 쌓인 시절이었는데 그들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얘길 랩에 쓰더군요. 갱스터랩이란 음악으로 사회적인 존경도 받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에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1997년, 19살 때였어요."

그는 이즈음 유흥업소 생활을 접고 낙원상가에 가 가진 돈으로 컴퓨터와 사운드 카드, 시퀀스 프로그램, 마스터 건반을 샀다. 20살 때부터는 집에 처박혀 독학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누구의 가르침 없이 뭐든지 몸으로 부대끼며 배웠다"며 "지금도 그때 쓰던 미디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는데 영어로 된 용어의 뜻을 아직도 모른다. 대신 파일에서 몇 번째를 누르면 어떤 기능이라는 게 머릿속에 입력됐다. 지금은 좋은 미디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는데 다른 걸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그때 만든 설익은 음악을 들고 YG엔터테인먼트의 문을 두드렸고 양현석 대표의 눈에 띄어 2002년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데모 CD의 곡 중 발표된 건 없어요. 지금 들으면 촌스럽고 말도 안 되는 곡이죠. 제가 마치 청소년의 대변인인 양 거친 욕설과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음악들로 지금 들으면 듣기 거북해요. 현석이 형이 당시 신선하게 봐주셨단 게 감사하죠. 그곳에서 가수로 데뷔는 못했지만, 곡을 쓰면서 정말 많은 가르침을 얻었어요."

그는 지난날을 돌아보고는 "나이를 먹는 걸 느낀다"며 "아직도 철부지 같은 구석이 있어 어른이 되려면 멀었지만 매년 변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KBS 예능 '달빛 프린스' 등에서 자신의 청년기를 얘기한 데 대해 "솔직히 어린 시절의 철없는 행동이 자랑처럼 비칠까 봐 방송에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며 "'저렇게 살아도 쉽게 성공할 수 있구나'란 안일한 생각을 갖게 하는 존재가 될까 봐, 내 모습이 거만하게 보일까 봐 싫었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이제 직원이 40명인 기획사를 운영하는 어엿한 제작자가 된 만큼 목표도 한 뼘씩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카데미 사업 등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돈 버는 것보다 브레이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걸출한 스타를 만드는데 목말라 있다"며 "그 숙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선 다른 일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가 집중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되고 싶다"며 "이를 위해선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이고 향후 코스닥 상장 목표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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