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 "중2병 스무살 때..속도 10년 느리다"(인터뷰)

김수정 2014. 11. 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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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수정 기자] 십수 년 전, 얼짱 출신으로 세상에 얼굴을 알렸을 때만 해도 구혜선(30) 이름 앞에 '감독'이 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짱에서 배우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늘 예측 불가능한 궤도로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구축하고 있는 그는 분명 충무로에서 대체불가능한 존재다.

첫 장편영화 '요술'(10)을 시작으로 '복숭아나무'(12)로 부산국제영화제, 브뤼셀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그 연출력을 인정받은 구혜선이 영화 '다우더'(예스프러덕션 제작)로 돌아왔다. '다우더'는 삐뚤어진 모성애로 얼룩진 엄마와 그녀에게서 벗어나려는 딸의 이야기를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심혜진, 구혜선, 현승민, 윤다경이 출연했고 지난 6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연기, 연출, 음악, 미술, 책까지. 다채로운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내가 대단해서, 능력이 있어서, 돈이 많아서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오히려 남들보다 느리고, 조금은 더디게 인생이라는 숙제를 풀고 있는 게 구혜선의 모습이란다.

"근래 드는 생각은, 제가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거예요. 남들보다 뭘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느리게 가고 있는 편이거든요. 전 이제서야 진로를 찾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거잖아요. 실제로 중2병이 스무살 때 왔고, 초등학생이 하는 행동을 중학생 때 했어요. 남들 다 졸업하고 취업할 나이인 지금도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고, 삼십대 중반은 돼야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10년 정도 느린 것 같아요. 깨닫는 속도도 한 템포 느리고요."

다음은 구혜선과 일문일답.

-일단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했나

처음엔 아기 낳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다가 떠올랐다. 가족 때문에 답답해하던 친구가 어느새 가족을 구축하고 있는 걸 보며 사람은 참 아이러니하단 느낌이 들더라. 그 자리에서 친구들끼리 각자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놨는데, 거기서 얻은 모티브가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인가

복도식 아파트, 항상 일찍 나가고 늦게 퇴근하는 아버지 등 설정은 자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극 중 엄마(심혜진)가 딸에게 극단적인 히스테리를 부린다.

영화에는 극단적인 장면만 나오니까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더 한 경우도 많지 않나.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엄마들의 히스테리란…. 특히 엄마들은 딸이 초경시작하고 나면 임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래서 딸들은 연애하면서 괜한 죄책감을 갖는 거지.

-혹시 어머니가 영화를 봤나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못 보여드렸다.

-본인은 어떤 딸인가

예쁜 말 잘 못하고 무뚝뚝한 딸. 살갑게 잘 못한다. 그런데 남자친구 어머님 만나면 되게 살갑게 한다. 흐하하.

-산은 엄마의 폭력에 가까운 히스테리에도 마냥 어둡지 않다.

엄마가 인생의 전부인 시기는 아니니까. 부모의 탯줄을 끊는 순간이, 바로 첫사랑을 만날 때라고 하더라. 산이도 남자친구랑 일요일에 만나서 뭘 할까가 더 중요하지 당장 엄마가 모진 말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엄마 몰래 신발 사서 내 방에 숨겨뒀다가 남자친구랑 데이트할 때 신고 나가고.(웃음)

-심혜진과 호흡은 어땠나. 배우 대 배우뿐만 아니라 배우 대 감독으로 대해야 했는데

힘들진 않고 어려웠다.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더라. 선배님 연기하시는 데 방해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존경심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웠다.

-평소 배우들에게 연기 디렉션은 어떻게 하나

배우에게 맡기는 편이다. 가령 울어야 하는 장면인데 배우가 웃었다면 지적해야겠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배우는 세상에 없지 않은가. 배우의 감정을 믿고 맡긴다.

-'다우더'에서는 연출에 연기까지 했다.

내가 정말이지 민망해서.(웃음) 내내 '이걸 왜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본인 작품에 연기까지 한 이유는 뭔가

첫 번째는 예산이다. 내가 참여해서 제작비를 줄이는 거지. 두 번째는 안 해본 캐릭터라서. 늘 밝은 캐릭터를 해왔고, 또 그런 캐릭터만 들어온다. 내 작품 아니면 언제 이런 연기를 해보겠는가.

-배우 구혜선이 보는 감독 구혜선, 감독 구혜선이 보는 배우 구혜선은 어떤가

배우로서 감독 구혜선은 아직 정리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으로서도 마찬가지다. '다우더'에서 그 둘을 함께 하느라 참 힘들었는데, 가령 감독으로서 연출하다가 내 분량을 찍으려고 여배우 모드로 바뀔 때 엄청 민망하더라. 메이크업 수정하는 것도 민망해서 내가 직접 하곤 했다. 다행히 누구 하나 그런 나를 민망하게 여겨주지 않아서 고마웠다.

-연기, 연출, 음악, 미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출발은 그림이었다. 그림 그리다가 어느 날 작곡을 하게 됐다. 미술에서 비롯된 게 연출까지 오게된 거고. 10대 때만 해도 배우는 생각도 못했다. 몇 년 뒤엔 정말 뜬금 없는 걸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어찌됐든,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 뿌리에는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 성격 자체가 일단 행동하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중1 때 기획사에 직접 내 앨범을 만들어 보냈을 정도니까.

-본업은 뭐라고 생각하나

본업은 돈 버는 일 아닌가, 그렇다면 연기다. 아직 다른 일이 돈이 되진 않는다. 돈이 많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순수한 꿈으로 하는 일들이 많다. 직업처럼 돈받고 한다는 점에서 연기가 내 본업이다. 물론 언젠간 본업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방이 3평이라는 인터뷰가 화제가 됐다.

내 방에 물건이 별로 없다. 20대 때는 뭘 엄청 많이 샀다. 한 번 입고 다시는 안 입을 원피스, 쓰지도 않을 접시…. 내가 만약 이 세상에 없을 때, 이것들을 누가 정리해줄까 싶더라. 이사 오면서 주변 사람들 다 나눠주고 지금은 딱 3평에 맞는 짐만 있다. 비우고 나니 인생이 심플해지더라. 방에서 혼자 멍 때리기도 잘하고, 오늘은 무슨 라면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좋다.

-하하. 해탈한 것 같다.

푸하하. 아직 멀었다. 배우는 일이 없을 땐 비정규직이다. 오로지 불안한 시간밖에 없다. 모아놓은 돈으로 안주해야만 하는 불안함이 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인터넷 검색기록 몇 줄로 정리되더라. 나야 10년을 투자했지, 다른 사람들에겐 단 몇 줄인 거다. 예전엔 기본 3~4년씩 계획을 세우고 살았는데, 이젠 천천히 바람 쐬며 살아도 될 것 같다. 가끔 막막하다. 믿는 구석을 만들어야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휘몰아쳐 이 일을 못 하게 될 때 잘 살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을 가져야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산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이선화 기자 seonflower@tvreport.co.kr, 영화 '다우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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