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무명 탈출' 김원해 "배설 장군 논란 곤혹스럽죠"

2014. 10.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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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서 배설 장군 연기..'고교처세왕' '해적' '타짜2'도 출연

'명량'서 배설 장군 연기…'고교처세왕' '해적' '타짜2'도 출연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죄송하지만 '명량' 얘기는 안하고 싶어요. 너무 큰 논란이 되고 있어서 굉장히 곤혹스럽고 곤란한 상황이에요. 지금은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라서요."

왜 아니겠나. 그는 화제의 영화 '명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 역할이 뒤늦게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배설 장군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래서 그가 더욱 궁금했던 것을.

2014년 여름 20년 무명의 긴 터널을 탈출한 배우 김원해(45)를 1일 광화문에서 만났다.

김원해는 '명량'의 배설만 연기한 게 아니다. '해적'에서는 산적단의 2인자 춘섭을, '타짜2'에서는 만능 해결사 조화백을 연기했다. 올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작품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안방극장에서 화제를 모은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명량'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직후 종영)에서는 사내 2인자 자리를 놓고 경쟁자와 신경전을 펼치는 한이사를 연기했고, 현재는 tvN '아홉수수년'에 출연 중이다. 여세를 몰아 지상파에도 진출한다. 오는 11일 첫선을 보이는 SBS TV 새 주말극 '모던파머'에서는 사채업자 독사 역을 맡았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렸다.

"대중들이 알아보는 것까지는 모르겠고요, 일단 업계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나 대접이 조금 달라진 것을 느껴요. '고교처세왕'이 방송될 때 '명량'과 '해적'이 개봉했어요. 드라마 촬영장에서 대접이 달라지더라고요.(웃음) 제 주변에서는 '이제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면서 밥 사라고 난리였어요. 근데 그때 제 수중에는 돈이 없었어요. 영화 개런티는 한참 전에 받았고, 드라마 개런티는 사후에 받잖아요. 그래서 '고교처세왕' 방송 중일 때는 대출 받아 생활할 때인데 여기저기서 축하한다고 하니…. 그래도 어쩌겠어요. 집사람 눈치보면서 다른 씀씀이를 줄이고 후배들한테 밥 사고 술 사고 했죠.(웃음) 20년 무명으로 지내다 한 달 사이에 빛을 보니까 빚을 내서라도 즐기긴 해야겠더라고요."

다시 배설 장군으로 돌아오면, 배설 장군의 후손인 경주 배씨 문중은 지난달 15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명량'의 제작자와 감독 등을 고소했다. '명량'이 1천7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한국영화사를 새롭게 쓴 이후다.

김원해는 "촬영을 앞두고 나름대로 인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하지만 사실만을 따지고 들면 사극은 찍기 힘들지 않나 싶다"면서 "그럼에도 진위가 어떻든 이렇게 논란이 되니 후손들께는 죄송한 마음이 든다. 민감한 상황이라 더이상은 말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김원해는 열여섯 살에 연기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선배들과 연극을 보러갔어요. 마당쎄실 극장에서 '색즉시공'을 봤는데 세상에 저런 것도 있구나 싶었어요. 그전까지는 연기에 관심도 없었고 학교에서 오락부장, 응원단장을 맡는 정도였어요. 공부에는 뜻이 없는 까불이었죠. 근데 '색즉시공'을 보고는 저렇게 재미있는 게 있구나 충격을 받았고 바로 연극반에 들어갔어요."

그는 고3이던 1987년 동랑청소년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고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여기서 평생의 인연을 만났으니, 1988년과 1989년 같은 연극제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들이 잇달아 대학 동문이 된 것이다. 그들이 바로 장진 감독과 배우 정재영이다.

"20대를 그들과 매일 붙어지내며 연기를 논했어요. 컴퓨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와도 연기와 무용은 컴퓨터가 대신할 수 없다는 개똥철학을 나누면서 창작극 활동에 매진했죠. 무용과를 기웃거리며 무용도 배웠고 국악과에서는 사물놀이를 배웠습니다. 너무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졸업 후 1991년 뮤지컬 '철부지들'로 연극무대에 데뷔한 그는 대학로에서 활동하다 1997년 '난타'의 세계로 들어가 꼬박 10년을 보냈다. 그는 '난타'에서 주방장을 맡아 '난타'가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할 때까지 함께 했다.

하지만 2008년 돌연 연기를 접고 김밥집을 차렸다.

"그때가 서른아홉인데 그렇게 열심히 연기를 했는데도 수중에 가진 게 없더라고요. 그쯤 했으면 내 손에도 뭔가 쥐어져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고 모든 게 허무하더라고요. 근데 탈탈 털어 차린 김밥집을 1년 만에 말아먹었죠.(웃음) 그럴 즈음 연극판 동료들이 당장 돌아오라고 해줘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올여름부터 김원해라는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작년까지는 일이 들어오면 닥치는대로 했는데 이제는 좀 작품을 고를 정도가 된 것 같아요. 이정도가 어디겠어요. 제가 경기도 고양시 탄현 SBS 맞은편에서 10년을 살았어요. 매일 SBS를 보면서 '저기를 자전거 타고 가서 촬영하는 날을 만들고야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SBS 드라마를 하게 됐네요.(웃음) 하지만 설마 이게 끝은 아닐거야 하는 마음이 있어요. 지금 너무 좋아하지 말고 좀 누르면서 더 참고 기다려보자 싶어요."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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