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의 '노사이드' 정신, 어른을 울린다

2014. 9. 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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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준수 기자]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 오사카 조고의 럭비부 학생들 이야기를 다큐 형식으로 다루었다.

ⓒ 인디스토리

다큐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는 오사카 조고 럭비부 학생들의 이야기다.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조선인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청소년이자 럭비부 대표선수로 삶의 매 순간 좌충우돌 부딪히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2010년에 있었던 일본의 럭비대회를 무대로 시작된다. 때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전국대회 '하나조노'에 참가한 오사카 조고 학생들은 우승을 위해 단합에 전념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소소한 일화들이 아기자기하고 찡하게 관객을 울린다.

시작은 다큐로, 후반은 스포츠 드라마로

오사카 조고의 럭비부를 소재로 촬영한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는 다큐멘터리의 성격이 짙다. 작은 카메라 한 대에 의존해 럭비 경기와 연습 장면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담았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앳된 얼굴과 우람한 체격이 묘하게 조화돼 귀여움을 자아내는 10대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주장인 관태는 우람한 체격을 바탕으로 공격진을 지휘한다. 17세 이하 일본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에이스 유인은 뛰어난 실력과 팀을 정신적으로 안정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부주장 용휘는 강한 체력뿐 아니라 경기를 읽는 감각도 탁월하다.

이처럼 주인공들은 청소년 드라마, 혹은 만화의 캐릭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각자 특징이 뚜렷하다. 덕분에 별다른 특수효과나 배우들의 연기력없이도, 이미 영화는 관객을 한껏 몰입하게 한다. 또한 쾌활한 고교생들의 순수한 내면을 수줍게 드러낸 말과 행동에서는, 꾸밈없고 사실적인 감정표현이 또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한다.

영화에서는 '오사카 조고의 럭비부는 지역의 자랑이 되었다'고 전한다. 당당히 전국대회에 지역대표로 출전해서 순위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샤워실조차 없고, 여러모로 열악한 훈련환경에서 선수와 감독이 단결하여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었다. 카메라는 럭비부 선수들이 훈련하고 준비하면서 실력이 점차 늘어가고, 마침내 대회 예선과 본선에서 폭발적인 재능을 선보이는 장면을 차례로 그려낸다.

여드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땀을 흘리고, 상처로 피를 쏟으면서도 우승을 향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자세를 보면 이것만큼 열정적인 모습이 또 있을까 싶다. 말하자면 <60만 번의 트라이>는 '다큐로 시작해, 후반에는 스포츠 드라마로' 이어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두 장르의 만남은, 영화의 줄거리가 흘러가는 동안 관객에게 경계가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다큐로 들여다보는 재일동포의 삶과 현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포스터.

ⓒ 인디스토리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는 럭비라는 스포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이해가 쉽도록 경기의 흐름과 용어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진행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원활히 이어진다. 이렇듯 구성에서도 그렇지만, 이것과 더불어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드러내는 부분은 대회 전후의 상황을 들추는 내용에 있다.재일동포가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고, 일본 정부의 차별에 맞서는 모습도 담았다. 한국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이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무국적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아픈 상처는, 대회에서 만난 한국 선수가 호주 선수에게 "쟤는 일본인이고 내가 진짜 한국인이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로 압축된다.

하지만 <60만 번의 트라이>에 등장하는 재일조선인들은 하나같이 "나는 한국인"이라고 정체성을 밝힌다. 잊지 않고자 한국말과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과의 교류를 진심으로 기뻐하는 장면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에서는 차갑게 외면받고, 일본에서도 핍박받는 이중고를 겪는다.

이는 주요 등장인물인 오사카 조고의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2010년부터 시행된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조선인 학교만 제외되는 차별을 겪고, 심지어 매년 지원되던 지방 정부의 학교 보조금까지 전액 삭감된다. 지역 대표로 전국대회에서 3위에 진입하는 뛰어난 성적을 보였는데도 말이다.

박사유 감독은 오사카 지방 정부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보조금 지원을 끊은 이유를 묻는다. 이에 지방 정부 소속 일본 정치인은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에 강경책을 펴지 않느냐, 한국 내에 북한인 학교가 있다면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지원예산 삭감을)했을 것"이라 냉정히 대답한다. 영화를 통해 국가 간의 자존심 싸움과 압박에 애꿎은 사람들만 외롭게 남아 고통받는 것을 보게 된다. 더불어 결국 감정적인 이유로 시행된 강경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재일동포들은 자신들을 향한 인식을 바꾸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영화 속에서 재일 조선인들은 럭비부의 활약으로 대중의 부정적인 시선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스포츠가 사회를 바꾼다'고 믿으면서, 오사카 조고 럭비부는 오늘도 경기장을 달리고 더 좋은 성적을 내고자 트라이를 해나가는 것이다.

60만번의 트라이가 이루어질 때면, 과연 변할까

박사유 감독은 2011년 촬영을 마치고 3년간 항암치료를 하면서 어렵게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조고 아이들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애정이 힘든 투병생활을 딛고 작품을 완성하게 만든 동력이라 밝히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내면서도 한국 이름을 쓰며 한국의 통일을 염원하고, '소녀시대' 음악을 즐겨듣고, 일본 사회에서도 각 분야에 걸쳐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는 재일조선인 학생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민족주의적 발상과 감정을 배제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를 도와야 할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스스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보이고 역사적 배경으로 보아도 그렇다. 또한 자국에서 살아가는 지역 사회의 일원이기에 일본 정부도 체류중인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평등한 방식으로 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가 비추는 재일동포의 현실은, 양국의 무관심 속에서 철저히 고립된 신세다.

한국과 북한,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모두 습득하고 공유하는 이들의 존재야말로 어쩌면 세 나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 간의 예민한 부분이 자극되어 균열이 생긴 국가 간의 화해를 위해서, 재일조선인을 돕는 일을 늘려나간다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앙금은 결국 긍정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일로 풀고 털어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중 한 장면.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오사카 조고의 럭비팀 사연과 동시에 재일동포 이야기를 담았다.

ⓒ 인디스토리

상대방의 진영까지 공을 몰고 가서 지면에 터치하는 '트라이'가 60만 번, 혹은 600만 번 더 이뤄지면 그 때는 과연 달라질까?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고독하게 조국으로부터 외면받는 일 말이다. 1994년까지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회참가를 허락받지 못하다가, 일본 교사들의 항의 연대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된 오사카 조고 럭비부의 모습을 보면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하다.

경기중에는 팀이 나뉘지만, 시합이 종료되면 '우리는 모두 같은 럭비인'이라 말하는 럭비계의 '노사이드 정신'이 더 넓은 세계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800개 팀에서 3위를 기록하고도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손가락질 받는 슬픈 일이 사라지는 방법은 바로 그것이라고,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는 보여주고 있다.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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