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성하 "걱정많던 딸, 내 트랜스젠더 연기 보더니.."

입력 2014. 7. 31. 08:03 수정 2014. 7. 3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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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실라',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뮤지컬""출연 거절, 24시간 내내 부담․머릿속은 지진""아이돌 선입견? 오히려 자극 받아"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여장 때문에 타격을 입진 않았냐고요? 너무 달라진 제 모습에 깜짝 놀란 분들이 많긴 하다던데…주변에서 이제 사극을 하더라도 왕이 아닌, 대왕․대비 역할이 섭외 오는 게 아니냐고 농을 던져요! 여배우들에겐 욕 좀 먹겠지만 배우로서는 영역이 오히려 확정된 셈이네요? 하하하!"'꽃중년' 조성하가 진정 꽃답게 무대에 올랐다. '프리실라'로 첫 뮤지컬에 도전한 그가, 초짜답지 않은 노련한 무대 매너로 연일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조성하는 지난 8일부터 시작된 뮤지컬 '프리실라'에서 트랜스젠더 '버나뎃' 역을 맡아 데뷔 이례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버나뎃'은 지금은 퇴물이 돼버린 왕년에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스타. 배우자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그는 특유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슬픔을 털어내고 틱, 아담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던 조성하. 생애 첫 여장의 소감을 물었더니, "원래는 상남자에 가까운 담백한 성격이었는데~ 요즘 내가 자꾸 변하네요? 오호호홍~"이라며 웃으며 답했다. 다리를 모으고 다소곳이 앉아, 손끝을 살짝 살짝 튕기며. 영락없는 무대 위 '버나뎃'이다.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 가야하는 거야?' 출연 섭외를 받았을 당시,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어요. 이상하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안 해본 역할, 자신 없는 역할, 아니 생각조차 못해본 걸 하게 되는 것 같네요? 못살아 정말~!" 전작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이 시대의 외로운 가장을 대변하며 방영 내내 시청자들을 짠하게 울리더니, 이번에는 배꼽을 잡고 울게 만든다. '천상배우'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아니, 내가 증~말 우는 걸 못한단 말이야~ 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어요! 그런데 '왕가네'에서 아주 주구장창 울었잖아~ 이번에는 또 트랜스젠더를? 아니 내 얼굴에, 내 몸매에 그게 어울리기나 하냐고! 그런데 어머 웬 일이니~ 막상 화장하고, 드레스까지 입혀 놓으니까 내가 봐도 너~무 너무 예쁜거야. 이래서 사는 게 재미 있는 거죠~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건!" 데뷔 10년차. 지난 2005년 드라마 '황진희'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꽃중년'의 아이콘답게 쉴 틈 없이 활동을 해왔다. 스스로 전작 '왕가네 식구들'이 끝나면 반드시 휴식을 취하겠노라 다짐했다던데, 휴식의 일환으로 선택한 게 바로 뮤지컬 '프리실라'란다. '재미있게 놀아보자'라는 심정으로 출연을 결심했다고. 그는 그만큼 유쾌하고 따뜻한 '힐링 공연'이라고 거듭 자랑했다.

"일단 결심하고 나니 준비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하이힐을 신고, 코르셋을 입은 채 생활했죠 뭐! 한 달반 동안 머릿속은 매일 지진이 일어났던 것 같아요. 공연장에 들어서면 솔직히 남자 냄새가 좀 나니까~ 어느 정도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연이 딱 시작만 하면, 곧바로 끝나는 느낌이 드는 거야~ 관객들과 정신없이 노느라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거지." 조성하의 '버나뎃'은 유독 여성스럽다. 연륜이 느껴지면서도, 엄마 같은 따뜻함이 있고, 사랑스러운 소녀 같기도 하다. 그는 섬세한 연기를 위해 손짓, 말투, 움직임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다. 때때로 농도 짙은 19금 애드리브도 서슴지 않는다.

과감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연기 덕분일까. 관객들은 그의 변신에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성원을 보내고 있다. 벌써부터 '흥겨움 그 자체'라고 해 '흥성하'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관객들의 반응이 이 정도인데,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놀라움은 오죽할까.

"우리 딸이 참 노래를 잘 하는데…과연 우리 아빠가 뮤지컬을, 그리고 트랜스젠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더라고~. 혹독하게 연습하는 걸 보면서 안쓰러워 하기도 하고. 최근 첫 무대를 감상하더니 크게 감동을 받은 눈치였어요. 딸에게 인정받는 다는 게 얼마나 뭉클하고 짜릿한 기분인 줄 아세요? 벌써 몇 번이나 공연을 봤는데도 매일 보러 오겠다네요! 호호호홍!"

큰 눈망울이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딸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진 건지, 혹독했던 연습 과정이 떠오른 건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는 "지금은 그저 유쾌하게 무대를 즐기고 있지만, 솔직히 왜 고민이 없었겠어요? 처음 섭외를 받고 그저 도망만 다녔지"라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여자? 단 한 번도 상상조차 안 해본 일이죠. 내 안에 '여자'를 구겨 넣으려니까 잘 안되더라고요. 가장 두려운 건 그저 '여자인 척 한다'고 느껴질까봐였어요.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후회요? 절대! 만약 이 공연을 시작할 때 성소수자를 대변한다거나, 사회의 어떤 선입견을 깬다 등의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면 합류하지 않았을 거예요. 고민조차 안했겠죠. 그런데 등장하는 인물이 트랜스젠더일 뿐 가족, 친구와의 우정을 다룬 유쾌한 여행기인걸요? 게다가 '버나뎃'은 참 매력적인 여자잖아요. 욕심날만하죠." 떠나간 사랑에 가슴 아파하지만 불현듯 찾아온 사랑에 설레는 '버나뎃'. 조성하는 다양한 여성미를 가진 그녀를 소녀 감성으로 귀엽게 보여준다. 그 모습이 억지스럽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무대는 유쾌하지만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진심은 있는 그대로 느껴져야 한다는 게 숙제였어요. 엄마 같은, 누나 같은, 또 사랑스러운 여인 같은 모습을 녹아내려고 했죠. 어떤 선입견이 생기는 게 싫어 일부러 트랜스잰더를 만나지도 않았어요. 무대에서 여자로서 어떤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지만 고민했죠." 한참 무대의 매력에 빠져있던 그가, 불현 듯 의외의 말을 해왔다. "다음 뮤지컬은 또 다른 모습이겠죠?"하고 물었더니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한 것.

"'프리실라'는 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뮤지컬이 될 거예요. 항상 준비된 자만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이번 공연은 운명처럼 저와 인연이 닿았지만 사실 좀 더 전문화된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제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분야에 대한 경계가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분야라기 보단 그 사람의 역랑"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동안 많은 아이돌 출신 배우와 호흡을 많이 맞췄는데, 하나같이 너무 뛰어난 역량을 지닌 친구들이었다"면서 "잘할 땐 문제가 안 되지만 나처럼 부족한 경우엔 다르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뮤지컬이든 연기든 노래든 어떤 한 분야에만 종사해야 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에요. 다양한 능력이 있다면 그 영역을 충분히 넓힐 수 있겠죠. 이번에 조권이라는 친구를 처음 만났는데 연기자로서 굉장히 고마운 후배라고 생각했어요. '아담'이라는 역할에 싱크로율이 너무 잘 맞고 실력이 출중해 공연이 더 빛났거든요. 무엇보다 정말 열심히 하는 그 에너지에 도움을 많이 받았죠." 연기 이야기를 하나 보니, 어느덧 무대 위 '버나뎃'이 아닌 배우 조성하로 돌아와 있었다. 웃음 가득했던 반달눈이 한층 또렷해진, 선명한 눈으로 변해있었다.

"조권뿐만 아니라 박유천, 수지 등 지금까지 만난 친구들은 연기를 정말 잘해 보기 좋았어요. 오히려 배우보다 더 열심히 해 자극제가 되죠. 충분한 실력과 준비만 돼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환영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전 한 우물만…하하!" 끝으로 그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무대에서 많은 관객들이 함께 즐겨주시고 소통해주셔서 행복합니다. 마지막 공연의 막이 내릴때까지 열심히 할게요"라며 인사를 전했다.

한편, 뮤지컬 '프리실라'는 시드니의 게이 가수 틱이 별거 중인 아내로부터 시골마을 앨리스 스프링스의 카지노 쇼 출연제의를 받고 왕년의 드랙퀸 스타인 트랜스젠더 버나뎃과 트러블 메이커지만 늘 당당한 신세대 게이 아담과 함께 고물버스 '프리실라'를 타고 떠나는 여행기를 담았다. 7월 8일부터 9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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