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으로 보는 드라마 PD와 영화감독, 다르거나 혹은 비슷하거나

유진모 입력 2014. 4. 23. 16:19 수정 2014. 4. 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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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유진모의 테마토크] 오는 30일 개봉되는 사극 영화 '역린'은 현빈의 군 제대 후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의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화제작이다.

현빈 외에도 정재영 조정석 조재현 한지민 등 관객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배우 혹은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돼 있다는 점 역시 구미를 당기게 한다.

대중의 관심이 주로 배우 쪽이라면 업계에서는 연출자 이재규가 'PD'에서 '감독'으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를지에 대한 관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 TV 드라마의 성공을 통한 명성을 발판삼아 영화에 진출한 'PD 출신 감독'이 여럿 있었지만 성공한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재규 감독은 지난 2003년 '다모'로 안방극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뒤 '패션 70's'(2005), '베토벤 바이러스'(2008), 그리고 2년전 '더 킹 투 하츠' 등으로 안방극장의 히트메이커로 인정받은 바 있다. 이번 '역린'의 화려한 캐스팅의 배경에는 전적으로 그의 '이름값'이 한몫 톡톡히 했다고 한다.

가깝게 1990년대부터 보면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 '고개숙인 남자'(1991) 등으로 MBC의 멜로 간판 PD로 명성을 날렸던 황인뢰의 1997년 영화감독 데뷔작 ''꽃을 든 남자'부터 스타PD의 영화데뷔 잔혹사는 시작됐다.

황 PD의 후배인 이진석은 '호텔'(1995) '아파트'(1995~1996) '별은 내가슴에'(1997)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역시 MBC의 간판 PD로 활약하다 1997년 '체인지'로 영화계에 데뷔했지만 역시 참담한 결과를 맛봤다.

SBS에는 이장수가 있었다. MBC에서 적을 옮긴 그는 '아스팔트 사나이'(1995) '아름다운 그녀'(1997)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아 1999년 정우성과 고소영이라는 톱스타를 기용한 '러브'로 영화계에 입문했지만 배우의 이름값만 부끄럽게 했다.

KBS에서 SBS로 넘어온 오종록 PD도 '내 마음을 뺏어봐'(1998), '해피투게더'(1999), '피아노'(2001~2002) 등의 잇단 성공으로 한껏 연출력의 물이 올랐을 때인 2003년 충무로에서 시나리오가 재미있다고 소문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나 차태현 손예진의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방송계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안판석 PD는 드라마 '짝'(1994) '장미와 콩나물'(1999) '아줌마'(2000) '현정아 사랑해'(2002) '하얀거탑'(2007)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MBC 드라마국의 총아였지만 2006년 스크린 데뷔작 '국경의 남쪽'으로 주연배우 차승원의 필모그래피만 낯간지럽게 만들었다.

얼핏 보면 드라마나 영화는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처럼 드라마 외주제작 시스템이 거의 자리 잡고 제작비가 크게 올라 퀄리티 면에서 결코 영화에 뒤떨어지지 않는 작품이 적지 않다는 수준적 측면에서 비교해볼 때도 차이점은 박빙이다. 영화 스태프가 드라마 제작현장에 투입되는 일이나 영화의 특수촬영 기법이 안방극장에 도입되는 사례는 이제 당연하다.

특히 PD나 감독은 그 호칭만 다를 뿐 연출자라는 역할은 똑같다. 다만 드라마는 작가의 입김이 크지만 영화는 감독의 역량을 제작사와 투자사가 인정하고 맡긴다는 점이 차이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드라마에서는 잔뼈가 굵고 충분히 연출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은 PD가 영화에서는 맥을 못 출까? 이는 아직도 디테일한 간극이 존재하는 두 콘텐츠의 체질과 생리의 차이에 있다.

우선 전술한 작가의 영향력의 큰 차이를 들 수 있다. 방송사에서 외주 드라마의 편성을 심사할 때 가장 먼저, 또 중요하게 보는 것은 대본이다. 즉 작가의 필력이다. 캐스팅과 비교하자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리가 등장할 수 있지만 편성책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히 대본이 먼저다. 그래야 캐스팅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드라마에서 작가의 입김은 절대적이다. 스타작가일수록 PD의 '힘'과 '연출의 의도'는 줄어든다. 모든 작가가 자신이 쓴 글의 토씨 하나 바꾸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데 특히 김수현 작가는 지문마저도 그렇고 캐스팅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배우에게 일일이 연기지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강제규처럼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이 많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시나리오가 탈고되면 감독이 이를 바탕으로 직접 콘티(카메라로 찍을 장면을 미리 그림으로 그린 것)를 짜기 때문에 이 과정과 더불어 촬영현장에서 감독의 독자적이거나 다양한 연출의 의도가 반영되는가 하면 감독에 의한 대사 수정이 가능하다.

물론 이 대사의 수정이나 애드-리브에는 주요 배우는 물론 스태프의 의견까지 반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작가의 입김은 그다지 크지 않고 오로지 현장지휘의 수장인 감독의 연출력과 지휘력이 절대적이다. 또한 호흡의 길이의 차이가 두 콘텐츠의 결정적인 이질성이다.

영화와 시나리오가 기획단계나 그 기간이 비슷해지는 수준이 됐지만 아직도 영화의 기획과 시나리오 개발 그리고 프리프러덕션 단계가 더 탄탄한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는 각 회차 방송 후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대본 수정이 필수기 때문에 이 단계가 많이 축소되고 '쪽대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제작현실이다. 드라마계에서 사전제작은 모험이다.

이런 이유로 아무리 드라마에 뛰어난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스태프가 붙는다고 해도 완성도 면에서 영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다수의 드라마 PD 출신 영화감독은 드라마 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영화의 긴 호흡에 적응하지 못한다. 시간에 쫓기는 드라마계의 생리상 '빨리빨리'가 몸에 익은 PD 출신 감독은 한 컷을 위해 한나절을 준비하고 밤을 새워 촬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제작현장의 호흡은 '드라마-단', '영화-장'이지만 작품의 스토리 전개는 그 반대다. 영화는 100분 안팎의 짧은 시간 안에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감독의 연출의도로 밑그림을 그리고 감독의 지시에 의해 배우가 자신의 표현력으로 채색을 해야 하는, 짧되 완벽한 조립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드라마라고 허술한 조립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니시리즈의 경우 20회 내외의 긴 호흡으로 진행되다보니 전체 스토리의 조합도 생각해야 하지만 매 회 적당한 수축과 이완의 흐름을 장치해야 하고 다음 회에 대한 관심을 끌기 위해 끝부분을 극적으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전체 스토리의 완벽한 얼개에 소홀할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드라마에서 성공한 PD들이 대중의 입맛을 모를 리 없다. 드라마 시청자와 영화 관객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같은 듯하지만 디테일은 매우 다른 영화의 체질과 생리를 배우려 하지 않거나 아니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지금까지의 결정적인 패착이다. PD들이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적응 못하는 이유다.

지난 22일 '역린'은 언론시사회를 통해 언론에 공개됐다. 이에 대한 언론의 평가를 종합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현빈을 보는 즐거움과 반가움!, 그러나 드라마 PD의 영화정복은?'이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제까지 등장한 어떤 PD보다도 섬세하고 심도 있게 작품을 잘 해석한 감독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언론의 평가와 대중의 호불호가 꼭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역린'의 스타일리쉬함에 대한 언론의 평은 대부분 호의적이다. 대중이 영화를 드라마와 차별화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뭔가 메시지를 바라는 지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란 게 어차피 2시간동안 '즐기자'는 목적이 가장 크다는 측면에서는 관객은 자신의 '목적'에 맞춰 관람하면 그뿐이다.

만약 관객이 감독의 예술적 이름값을 충분히 존중했다면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작품도 수백만명씩 관객이 들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드라마 PD의 영화접근법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피터 잭슨 감독은 18살에 TV 미니시리즈 '레이싱 게임'을 만드는 등 TV에서 연출을 먼저 했지만 일찍부터 16mm 카메라로 단편 SF 코미디를 촬영하기 시작한 이후 26살 때 사재를 털어 '고무인간의 최후(Bad Taste)'라는 75분짜리 컬트계의 걸작으로 일찍부터 영화계에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방송 드라마를 연출한 게 아니다. 이미 17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영화의 실전을 배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방송경험을 한 것이고 '고무인간의 최후'에서 보듯 자본의 간섭을 안 받고 자신의 연출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 사재로 제작비를 충당했다.

'직장인'의 체질이 몸에 뱄거나 독립 후에도 이를 완전하게 버리지 못하는 PD와 일찍부터 '독립군'이었으며 도제 시스템 아래서 성장한 영화감독이 다른 점이다.

[티브이데일리 유진모의 테마토크 news@tvdaily.co.kr / 사진=티브이데일리 DB]

역린

| 이재규| 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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