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X파일] 아파트 공동 브랜드 조어의 말 못할 속사정

2014. 4. 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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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래미안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센트레빌 등 최근 들어 아파트 브랜드 공동 조어 경향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공동 시공 아파트 견본주택을 가봤는데 생각보다 밋밋하더라. 건설사들이 단독 시공하는 것보다 공동 시공하는 경우 의욕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견본주택 방문객 L씨ㆍ여성)

견본주택에서 이런 반응은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한 공동시공 아파트 단지 전경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누구든 스스로 공을 들여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는 어떤 동기 부여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해놓은 일에 자기 이름이 영영 함께 기억된다면 누구든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만약 나와 동료 P씨의 업적이 될 일을 하고 있다면 동기가 처음보다는 조금 더 떨어지겠지요.

그 반대로 건설사가 단독 시공하는 경우, 그 건설사의 열의는 대단합니다.

지방을 연고로 한 건설사 W사는 수도권의 아파트 1개 단지를 건설하면서 열과 성을 다해 그 아파트 입주자협의회가 단지 내에 건설사를 대상으로 감사비를 세운 경우도 있습니다. 이후 이 건설사는 소비자들로부터 믿을 수 있는 시공사로 각인돼 수천세대의 아파트 단지를 분양할 때마다 매진 사례를 기록하는 '보답'을 받았습니다.

옛말에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다지요.

마찬가지로 건설사는 자기가 들인 공을 알아주는 소비자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공동 시공의 경우 이와 같은 동기부여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지어봐야 내가 지었는지 제대로 알아주겠냐는 회의가 생기는 겁니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최선을 다해 짓겠다는 건설사도 물론,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건설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즉, 건설사도 공동 시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 시공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단지 수주전에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공동 시공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쟁사와 열띤 수주전을 벌이다가 패하고 나면 그 손해가 너무 막심하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경쟁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공동 시공하면 단독 수주에 비해 수익이 낮고 아파트를 잘 짓겠다는 동기 부여도 낮게 형성되나 수주에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건설사들이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는 단독 시공권 확보가 지상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제 살을 깎아먹는 출혈 경쟁도 심하게 했습니다. 출혈 경쟁으로 인한 내상을 심하게 겪은 건설업계가 옛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공동 시공 추세로 서서히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한때 건설사들의 단독 시공권 확보를 위한 수주전은 정말 치열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저러다가 저 회사 망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량 공세를 퍼부었지요. 2009~2010년께 치열하게 전개되던 강북권 뉴타운 수주전에서 그런 현상은 정점에 달했습니다.

당시 단독 시공권 수주 경쟁은 한마디로 가관이었습니다. 조합원 총회에서 투표로 시공사를 선정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조합원들에게 뜨거운 구애 전쟁을 벌였습니다.

A사가 수백명의 조합원들에게 20만원 상당의 전기밥솥을 돌리면, B사는 그 다음 주에 조합원들에게 식기세트를 돌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헌 집 주면 새 집 준다'는 뉴타운 공약에 푹 빠져 있던 뉴타운 조합원들은 하루하루가 행복했을 겁니다. 건설사들이 돌아가면서 선물 세례를 하는 통에 집안에는 선물세트들이 그득하게 쌓였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건설사가 고용한 OS(아웃소싱) 요원들이 조합원을 일대일로 만나 고급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사거나 카페에서 차를 사며 환심을 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투표일이 임박해오자 A사와 B사는 경쟁적으로 관광버스를 빌려 이른바 조합원 모델하우스 투어를 떠납니다. 일정은 해당 건설사의 모델하우스와 실제 시공단지를 돌아보는 순으로 진행됩니다. 그게 끝이 아닙니다. 이날 일정의 백미는 부페식 점심식사입니다.

투어 버스는 구경을 마친 조합원들을 고급 부페식당으로 실어나르고, 조합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산해진미의 바다에 빠져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냅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귀가길에 건설사가 마련한 선물 꾸러미가 조합원 각자에게 전달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주에는 경쟁사인 B사가 비슷한 일정을 또 진행합니다.

조합원들은 이제서야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어떤 시공 조건을 해줄 것인지 건설사들한테 넌지시 묻습니다. 그러면 또 A사와 B사 등 2개사, 또는 A, B, C사 등 3개사가 발코니 확장 무료, 시스템 에어컨 무료, 50인치 TV 무료, 김치냉장고 무료 등의 선심성 공약(?)을 경쟁적으로 뿌려댑니다. 조합원들은 투표일 전까지 시공 조건을 저울질하며 엄중한 투표권 행사의 향방을 고민했습니다. 그야말로 갑 중의 갑이었던 겁니다.

이런 식으로 엄청난 호조건 속에 시공사를 선정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일 판이 커져가는 시공 조건 공약에 슬슬 힘이 부쳤는지 일부 구역에서 조합원들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강북권 뉴타운 한 구역에서는 투표 전날만해도 서로 비방과 중상을 일삼으며 더 좋은 시공 조건 내놓기에 바빴던 A사와 B사가 투표당일 하나의 컨소시엄으로 입찰해 조합원들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투표 용지에는 A사냐, B사냐로 묻지 않았고, A와 B의 컨소시엄인 Z의 찬성이냐, 반대냐를 물었습니다.

Z컨소시엄은 A사와 B사가 당초 내걸었던 시공 조건도 대폭 줄였습니다. 조합원은 단일 후보에 대해 울며 겨자먹기로 찬성하고 말았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갑, 을이 뒤바뀐거지요. 나중에 일부 조합원들이 "속았다"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뒤늦게 소용이 없었습니다. 후에 이 구역은 조합장을 해임하고 총회를 보이콧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게 됩니다. 이런 사고뭉치 구역이 훗날 공동 브랜드 아파트의 얼굴로 다시 태어나겠지요. 물론 넓은 택지지구에 3000~4000가구의 아파트를 건설사가 공동 수주해 사이좋게 함께 시공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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