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홍보는커녕 나라 망신 부를라

입력 2014. 4. 18. 22:00 수정 2014. 4. 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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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김치 워리어' 괴작 논란

▶ '두 유 노 김치?' 외국 스타가 한국을 찾을 때마다 한국 기자들이 하는 질문 중 하나랍니다. 자매품으로 '두 유노 싸이?' '두 유 노 연아 킴?' 등이 있습니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식품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음식입니다. 이 김치를 세계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김치를 홍보하려고 만든 거야, 까려고 만든 거야?'입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럴까요?

"호잇, 호요요."

배추 머리를 하고 초록색 쫄쫄이를 입은 복면인이 괴성을 지르며 총각김치 쌍절곤을 휘두르면 돼지콜레라균들이 우수수 쓰러진다. 젓갈을 뿌리면 모기 형상을 한 말라리아균들이 흩어지고, 1000년 묵은 김치 냄새를 뿌리니 결국 몰살했다. 그의 여성 파트너는 믿기 힘들겠지만 이름이 '고추걸'이다. 빨간 쫄쫄이를 입은 고추걸은 커다란 붉은고추를 골프채로 날리는 기술을 사용한다. 김치워리어의 기지는 독도에 있고, 장독대를 등에 싣고 배추로 된 노를 가진 거북선을 타고 다닌다. 이 정도 설명을 듣고 나면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김치워리어> 전편을 본 기자도 사실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말 그대로 '괴작'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갑작스럽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이 5분짜리 연작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놀랍게도 1억4000만원의 세금이 투입된 김치 홍보 동영상이다.

김치워리어는 2011년 유튜브에 올려진 15편짜리 연작 애니메이션이다. 재미동포인 강영만 감독이 제작했으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2010년 10월 발주한 정식 입찰을 거친 작품이다. 영어로 제작됐고 한글 자막이 붙어 있다. 당시 입찰요청서를 보면 이 작품의 목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액션 장르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및 국내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홍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김치의 우수성 홍보 및 세계화'이고, 5개월의 용역기간 동안 '해외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김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개발, 재미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액션 코미디 장르의 김치 애니메이션 제작, 국내외 티브이(TV), 유시시(UCC) 동영상 사이트와 박람회 홍보용 스팟 영상 제작, 국내외 유시시 및 초등학교, 미국 티브이 어린이쇼, 아리랑티브이 등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배포'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참가 자격은 '평면(2D)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이 있고 미국 현지제작 역량을 갖춘 전문업체'다.

배추머리에 총각김치 쌍절곤젓갈과 김치 뿌려 병균 퇴치유튜브에 올려진 의문의 동영상알고보니 세금으로 만들어진글로벌 김치 홍보 애니메이션김치가 화생방 독극물질인가곳곳에 나오는 비하성 유머작화와 완성도 누리꾼 비판 일색감독과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문화적 차이로 생긴 오해"

'닌자'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이 사업에 입찰한 업체는 단 두군데뿐이었으며, 그중 강영만 감독의 '와이엠케이필름'이 이 용역을 수주하게 된다. 만화전문 케이블 채널 관계자 등 각계의 심사위원 8명이 기술평가 80%와 가격평가 20%의 비중을 적용하여 종합평가를 실시해 결정한 것이라고 농수산식품유통공사 쪽은 설명했다. 강영만 감독은 김치워리어를 제작해 2011년 유튜브에 올렸고, 당시 음식한류를 이끄는 애니메이션이라며 뉴스를 타기도 했지만 곧 잊혀졌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김치워리어가 인터넷에서 갑작스럽게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국내 누리꾼들의 평은 대부분 비슷하다. '희대의 산업폐기물' '망작 중의 망작'이라는 악평이다. 각종 패러디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지극히 간단하다. 김치워리어가 '질병마왕'이 보낸 병균, 또는 바이러스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김치워리어는 간혹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고추걸이나 스승인 '대사부', 옹기로 만든 로봇인 '옹기봇' 등의 도움을 받아 질병을 퇴치한다. 김치워리어의 무기는 총각김치 쌍절곤, 마늘봉, 김치나 젓갈을 발사하는 총 등이다. 작품 내에서 김치는 말라리아, 광우병, 신종플루, 스페인 독감 등 그 어떤 질병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김치 냄새나 젓갈 등은 일종의 '화생방 무기'처럼 사용된다.

누리꾼들은 김치워리어의 이런 설정에 대해 '김치를 홍보하려고 만들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발효된 김치 냄새는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이것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내용을 담았냐고 비판한다. 4편에서는 말라리아를 퇴치하기 위해 타지마할에 2000년 묵은 김치 냄새인 '신라'를 뿌리는 장면까지 나온다. '독도 & 사스' 편에서는 예전에 조상들이 김치로 만든 그물로 곡식을 보호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날아가는 새들이 김치그물에 닿자마자 바로 추락해서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누리꾼들은 김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본다면 김치가 독극물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빈정대고 있다. 김치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기는커녕 혐오감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대목이다. 게다가 김치의 매운맛은 고추장에서 나온다는 등 김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담겨 있는 것도 누리꾼들을 화나게 하고 있다. 게다가 쫄쫄이를 입고 있는 김치워리어나 고추걸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일본의 '닌자'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등 한국적인 느낌이 거의 없다는 것도 주된 비판 대상이다. 또 '김치워리어와 신종플루의 아들' 편에서는 미국을 구한 김치워리어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개혁법안에 김치를 포함시키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바마의 초상권은 과연 구입한 것인가도 논란이다.

문제작 '김치워리어'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최근 한국에 돌아온 강영만 감독을 직접 만나봤다. 서울시극단이 준비중인 연극 <봉선화>의 영상작업을 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위안부 관련 영화를 만들 준비도 하고 있다. 그는 한국 내에서의 김치워리어에 대한 평가에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김치워리어가 오해를 받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제작비가 30억이 투입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처음부터 김치워리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박혀버렸다. 30억 가지고 이것밖에 못 만드냐는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 누리꾼들이 "<겨울왕국> 등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서 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웹을 기반으로 한 웹미디어에 대해 인식이 아직 자리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김치워리어를 변호했다. <겨울왕국>은 1억4000만달러가 든 작품으로, 김치워리어에 비하면 1000배의 제작비가 투입됐는데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치워리어도 전편을 합치면 극영화 1편 정도의 길이로, 낮은 제작비를 고려하면 잘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김치워리어 제작 과정에 "시간과 예산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입찰대행 업체에 수수료를 준 것 외에는 모두 제작비로 쏟아부었으며, 막판에는 사비까지 털어넣어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작가, 캐릭터 디자인, 애니메이터, 성우, 음악, 사운드 등의 제작비용을 할리우드 수준에 맞춰 지급했고, 이 때문에 비용이 상당히 들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터도 5~6명 정도 고용해 8개월 정도 작업했으며, 작곡가를 고용해 베토벤 심포니를 다시 편곡해 전문적인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비용도 상당했다는 설명이다.

강영만 감독 "100편 이상 만들고 싶다"

또 작화나 스토리가 엉망이라거나 영상의 질이 조악하다는 비난도 "웹미디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에서 보는 것을 목표로 한 웹미디어는 짧은 시간에 재미로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서사구조도 단순하고 '웃음'에 포인트를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림체나 스토리가 유치한 것이 "의도됐다"는 이야기다. 작화 또한 한국 사람들은 "실사에 가까운 매끈한 그림을 좋아하는데, 미국의 카툰네트워크(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를 보면 작품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다. (김치워리어는) 사우스파크처럼 투박하지만 재미있는 그림체를 추구했다"고 대답했다. 또 김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한국과 미국이 음식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다르다. 미국은 음식을 즐길거리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음식 많이 먹기 대회나 음식싸움 같은 이벤트가 벌어지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은 항상 정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이 애니메이션은 국내용이 아니라 글로벌 홍보용이며, 미국에서는 실제로 김치워리어를 보고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문화의 차이"라는 뜻이다. 또 오바마의 얼굴을 사용한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강 감독은 "미국에서 오바마 같은 인물은 '퍼블릭 도메인'으로 인정돼 저작권이나 초상권을 보호받지 않는 것이 관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강영만 감독은 "기회만 되면 김치워리어를 100편 이상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카레워리어처럼 각국의 고유한 음식을 이용해 음식 히어로를 만들면 교육용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엘에이(LA) 웹페스티벌에서 김치워리어가 3개의 상을 수상한 뒤 미국 조지아 지역 케이블 채널인 '파이트 티브이'에 2년간 김치워리어를 방영하는 계약을 맺고 왔다"고 설명했다. 국내와 국외의 반응은 다르다는 뜻이다.

이 사업을 발주했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쪽도 비슷한 답변을 했다. 공사 관계자는 "입찰공고에 따라 제안서를 받아 8명의 전문가가 평가해 발주를 했고, (2011년) 3월과 5월에 두번의 시사회를 거쳐 통과됐기 때문에 절차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시사회에서 "돼지독감이 쓰고 있는 모자가 멕시코 모자를 쓰고 있는데 외교적 마찰이 일어나지 않겠냐, 오바마 초상권 문제는 없나 등 다양한 지적사항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용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만들다 보니 비용이 좀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를 겨냥한 작품인 만큼 좀 비싸더라도 현지에서 만드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에 사업을 이렇게 진행했다"고 말했다. 제작비에 들어간 비용을 꼼꼼히 점검했냐는 질문에는 "우리가 준 금액 내에서 결과물만 내면 되는 구조라서 사후에 따로 검증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결과물에 대해서도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만족하는 모양새다. 공사 관계자는 "우리가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치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타깃층이 초등학생 이하인 만큼 유치한 게 당연하며, 김치워리어를 보면 김치를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또 사업이 완료된 이후 홍보 효과를 따로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유튜브 조회 수가 60만건이 넘는 등 홍보 효과는 충분히 거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식세계화 사업의 유산 중 하나

이들의 설명이 다 맞는다고 해도 석연치 않은 점은 여전히 남는다. 강영만 감독은 2000년 9월 980달러의 제작비로 제작한 <큐피드의 실수>를 개봉해 최저 제작비 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등 계속 영화작업을 해오긴 했지만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은 전혀 없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이 있고 미국 현지제작 역량을 갖춘 전문업체'라는 입찰 자격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1억4000만원의 세금이 쓰인 사업에 검증이 없었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고려해도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래시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업체 엔이모션의 정준호 실장은 "5분짜리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는 조금 긴 시간인데, 괜찮은 작품을 만들려면 적어도 200만원 이상은 들어간다. 신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음향이나 성우는 어떻게 썼는지, 직원은 몇 명인지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김치워리어에는 편당 1000만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갔다.

김치워리어는 한식세계화 사업의 유산 중 하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의 주도로 진행된 한식세계화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식재단,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농식품부의 의뢰를 받아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김치의 홍보 및 세계화' 사업을 벌인 결과가 바로 김치워리어다. 감사원이 지난해 한식세계화 사업 예산의 24.3%인 227억원이 부당 전용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는 등 사업의 성과에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김치워리어의 완성도나 홍보 효과에 대한 절대적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강영만 감독의 설명대로라면 기자는 '미국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인'이라서 김치워리어의 정수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의 상대성에도 한계가 있다. 김치워리어는 그 한계를 넘어선 일종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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