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하면 은하 아닌 스마트폰만 떠오르나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2014. 4.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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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TV봤수다] ■ 악동뮤지션 신곡 '갤럭시'"특정 브랜드 오해 소지" KBS, 방송 부적격 판정"지나친 일반화" 지적 대두특정 상표·일본어 표현 빌미.. 납득 어려운 판정 속출 유감

악동뮤지션의 신곡 '갤럭시'가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스마트폰 광고로 오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노래에 나오는 "탭 더 갤럭시 오(Tap the galaxy oh)"라는 가사는 듣기에 따라 그런 연상 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마트폰을 먼저 떠올린 후 '갤럭시'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갤럭시'는 그저 일반명사일 뿐이다.

'갤럭시'라는 일반명사가 원래 의미를 상실한 채 특정 상품의 의미로 전용된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상표의 위력이 크다는 얘기니까. 하지만 이런 일은 흔치 않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있어도 '현대'라는 상표를 일반명사로 사용하는데 우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쏘나타'라는 자동차 브랜드와, 클래식 음악의 악곡 형식인 소나타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 역시 많지 않을 것이다. '갤럭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KBS의 판정은 그러나 '오해할 우려'를 먼저 들은 결과다. '갤럭시' 하면 은하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떠올리는 세상이니 KBS 판정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건 너무 메마르고 서글픈 이야기다. 별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떠올리는 세태라니. '오해할 우려'라는 말에는 대중이 그럴 것이라는 짐작이 들어 있다. 그런데 과연 대중은 노래에 들어있는 이 단어에서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오해할까. 지나친 일반화다. 혹은 대중에 대한 무시.

KBS의 판정 잣대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해졌다. 최근 Mnet의 '슈퍼스타K'에서 군인 출신으로 주목 받았던 김정환이 에디 킴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데뷔 앨범 중 '슬로우 댄스'라는 곡이 KBS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프랑스산 보드카 브랜드 '그레이 구스(gray goose)'가 노랫말에 등장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도 아니고 또 노래가 이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의도도 없어 보인다. 이 단어가 쓰인 것은 곡의 분위기와 라임 때문이다.

일본어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은 크레용팝의 '어이'도 여전히 논란 중이다. 가사 중 '삐카뻔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삐카'는 일본어로 '반짝'을 뜻한다. 이 단어와 우리 식의 번쩍을 합쳐 만든 조어라고 보면 된다. 사실 이 표현은 인터넷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며 심지어 언론에서도 사용한다. 우리 식 표현으로 정착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의 '삐카뻔적'을 우리 식으로 '번쩍번쩍'이라 고치면 노래의 맛이 나지 않는다. 언어란 것이 결국 서로 다른 종류가 섞여 변하기도 하는 것 아닌가. 항간에는 크레용팝의 '삐카뻔적'이 문제라면 '피카추'는 '번쩍추'가 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농담까지 있다. '번쩍 추'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는 느낌이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크레용팝의 노랫말에 대중 정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민감한 한일관계를 건드리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레용팝에 대한 호불호도 뒤섞여 있다. 하지만 악동뮤지션의 '갤럭시'를 방송 부적합으로 판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KBS 심의실은 정말로 대중이 '갤럭시'에서 스마트폰만 떠올릴 것이라 믿는 걸까. 거꾸로 심의실의 발표와 그에 따른 논란이 갤럭시라는 단어에 스마트폰 이미지를 고착시킨 꼴이 되지 않았는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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