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공주' 감독 "청불? 외국에선 자녀들과 같이 보던데.."

2014. 4. 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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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 재심의 신청, 왜 안 했느냐고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영화 '한공주'는 청소년들이 봐야 할 작품이다. 그런데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다. 재심의 신청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수진 감독은 "고민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권고받은 사항을 수정해야 했다. 그렇게 하느니 본래 의미를 담아 상영하기로 했다. 앞서 영등위는 '유해성, 폭력성, 선정성, 약품 모방 위험이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해야 할 사람은 우리 연령대 부모와 학생들인데, 학생들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어진 것이니까 아쉽긴 해요." 이 감독은 해외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전했다. "로테르담에서 일이죠. 교포분인데 15세 딸, 11세 아들과 같이 '한공주'를 보더라고요. 11세 아이가 봐도 이해 안 되고 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부모님 반응이 '같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했어요. 호기심이 많은 나이인데 뭐나 나쁜 것이고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기회를 준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한공주'는 제13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와 제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각각 대상격인 금별상과 타이거상을, 제16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도 심사위원상 등 해외 영화제에서 잇단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수상이 영화 전체를 다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는 수상 개수만큼이나 많은 것을 일깨운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가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이야기는 담담하게 사회의 문제들을 꼬집는다.

인터뷰 내내 '청소년 집단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은 이 감독은 이 이야기를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비슷한 류의 사건에 7년 정도를 분노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들여다봤다. 솔직히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상업적으로 비치는 영화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공동체영화사라는 영화사를 만들었고 마음 한구석에 크게 남아있던 '한공주'를 만들어냈다. 조심스럽게,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이 감독은 자기 생각을 똑똑히 밝혔다. "'한공주'의 모티프는 있지만 그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해요.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다라는 식으로 보여주면 기존 영화들과 유사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요. 최대한 과거 사건 재연을 안 하려고 했고 반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오히려 취재도 안 했고, 관계된 분들 인터뷰도 안 했죠." 이 감독은 초고가 완성될 때까지도 조심스러웠다. 12고까지 그런 과정이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청소년 집단성폭력이라는 소재와 내용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신경을 많이 썼다. 과거와 현재를 오버랩시켜 보여주는 등 소재를 다뤄나가는 감독의 연출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복잡하고 답답하며 힘들었을 연기를 제대로 소화한 한공주 역의 천우희에 대한 평가도 듣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학생 역할은 진짜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공주 역할만 많이 못 봤죠. 공주를 표현할 배우는 한정돼 있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우희가 인상적이었죠. 본인이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더라고요. 사실 우희를 캐스팅하는데 망설였어요. 모르는 배우들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우희도 조금 알려졌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럼에도 우희를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프랑스 출신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영화를 보고 "천우희의 팬이 됐다"고 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잘한 선택 같다"고 웃었다. 그는 "상을 받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기대가 없었는데 고마웠다"며 "스태프와 배우들이 고생한 걸 보답 받고 헛된 일이 아니라는 의미니까 좋은 일"이라고 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다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단편을 찍었고, 인디비디오 페스티벌에 소개돼 연출가로 방향을 튼 이 감독. 그는 앞서 2007년 '적의 사과'로 제7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비정성시(사회)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대오에서 이탈해 막다른 골목에 갇힌 전투경찰과 시위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사회성이 짙은 블랙코미디물이다. 이에 앞서 2004년 단편 '아빠'도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성적 욕망을 느끼기 시작한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딸의 아버지 이야기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과 근친간 성이라는 소재를 진지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사회성이 짙다.

이 감독은 사회 문제에만 유독 관심이 있는 걸까. 그는 웃었다. "'적의 사과' 끝나고 상업영화 러브콜이 있었는데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 했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은 크죠. '한공주'도 그중 하나였을 뿐이에요. 어떤 건 사회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요." 이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놓고 이야기가 분분한 데 대해 한 마디를 건넸다. 자세한 이야기를 공개하는 건 스포일러지만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될 것 같다. 그는 "마지막 장면이 이 영화를 하게 된 가장 큰 의도"라고 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첫 장면과 엔딩신 때문"이라며 "엔딩 신이 1분 28초인데 이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머지 111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의 생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마지막 장면, 관객은 또 한명의 대단한 감독을 만나게 됐으니 기쁠 것 같다.

jeigun@mk.co.kr

/사진 유용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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