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금리 갈증'강남 부자들 연 4% 회사채에 꽂혔다

입력 2014. 4. 17. 09:22 수정 2014. 4. 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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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금리가 지극히 낮은 데다 대외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우량 회사채를 매수하는 개인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보수적인 기관투자자의 전용 상품으로 인식돼 왔던 우량 회사채의 인기 배경과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이는 회사채가 무엇인지 알아봤다.

"AA급 신용에 수익률 연 4% 회사채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거액자산가들의 금리 갈증이 올 들어 신용등급 AA급 우량 회사채 투자 열기로 이어지고 있다. 기대수익률이 연 3~4%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 되지만 은행 정기예금보다 조금 높은 금리를 안전하게 챙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이 연 5% 이상 고수익 채권에만 관심을 보여 온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 거액자산가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해석했다. 얼마나 높은 수익을 올리는가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추가 수익을 가져가는가 쪽으로 종목 선정 기준이 이동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AA급이 순매수 상위 '싹쓸이'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2월 말까지 개인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회사채 상위 3개 종목의 신용등급은 모두 '매우 안전한' AA급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인기를 끈 종목은 인천도시공사(신용등급 AA+)와 칼제11차유동화전문(AA-)으로 두 달 동안 각각 1570억 원과 960억 원어치를 개인들이 순매수했다. 인천도시공사는 인천시의 강력한 지원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1년 만기 기준 연 4.0% 수준의 매력적인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항공 운임채권을 기초로 발행한 칼제11차유동화전문 자산유동화증권(ABS)은 1년 만기 상품 기준 연 4.1% 금리를 제공하면서 개인 배정 물량이 판매 당일 대부분 매진됐다.

개인투자자들은 에프엔답십리18유동화전문(AA-)이 발행한 ABS도 전체 발행 잔액 1300억 원 중 570억 원어치를 가져가며 큰손 역할을 했다. 삼성물산이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면서 3년 3개월 동안 연 3.7% 수익률을 제공하는 상품이라는 데 매력을 느꼈다.

이해인 하나대투증권 압구정지점 프라이빗뱅커(PB)는 "요샌 고객들에게 기대수익률 연 7~8%짜리 A급 또는 BBB급 회사채를 소개하면 곧바로 너무 위험해 보인다는 반응부터 나온다"며 "그만큼 회사채 투자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 5% 이상이었던 회사채 투자 기대수익률이 연 3~4%까지 낮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AA급 우량 회사채는 낮은 절대 금리 때문에 그동안 보수적인 기관투자자 전용 상품으로 취급돼 왔다. 거래도 최소 100억 원 단위의 도매(wholesale)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 단위로 회사채를 쪼개 파는 소매(retail)시장에 상품을 내놓으려면 기대수익률이 적어도 연 5%는 넘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초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LG전자 회사채(AA)에 이례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을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증권사들이 이 같은 수요를 사전에 파악하고 인수한 물량을 곧바로 개인들에게 넘기면서 소매시장에서 LG전자의 상품성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LG전자는 1월 24일 만기별로 네 종류, 전체 5000억 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이 중 약 60억 원어치가 현재 개인 소유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를 끈 채권은 만기가 무려 10년인 장기 채권으로 연 4.4% 수익률을 제공하고 있다.

증권사 소매채권판매 담당자는 "LG전자 회사채에 소매 수요가 참여할 때부터 거액자산가들의 투자 성향 변화가 읽히기 시작한 셈"이라며 "이후 이름이 친숙한 우량 회사채이고 수익률이 연 4%에 근접한다면 소매시장에서 예외 없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동양 학습효과·경기 불안 영향

회사채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이 개인투자자들의 인식을 보수적으로 바꿔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2012년 웅진홀딩스, 지난해 6월 STX팬오션의 법정관리 신청에 이어 수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동양사태 직전인 8월 말까지 개인투자자들의 회사채 누적순매수 상위 5종목은 동양(8월 말 신용등급 BB), 두산건설(BBB+), 동부건설(BBB-), 동양시멘트(BB+), 동부CNI(BBB)였다. 모두 BBB급 이하면서 발행금리가 연 7%를 웃돈다는 게 공통점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순매수 금액이 1758억 원에 달했던 동양과 703억 원이었던 동양시멘트는 재무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9월과 10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고수익에 현혹돼 채권을 샀던 투자자 중 일부는 원금의 절반 이상을 날리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안정욱 한화투자증권 리테일채권파트 매니저는 "개인투자자들이 동양사태 이후로 수익률 못지않게 우량 신용등급을 갖췄는지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수익성에 우선해 종목을 선정하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거액자산가들은 공급 부족이 심한 우량 회사채를 대신해 우량 전자단기사채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AA급 회사채에 해당하는 'A1' 등급 단기사채 수익률이 보통 연 3% 중반 이하로 회사채보다 낮지만 만기가 짧아 일시적으로 현금을 묻어두기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시중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연 2.5% 수준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금리의 매력도 작지 않다. 발행이 잦은 편으로 투자 시점이나 종목 선택의 폭이 비교적 넓다는 것도 장점이다.

향후 금리 상승을 예상하고 단기 투자를 고집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이해인 PB는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중국의 신용경색 우려로 장기물보다는 단기물에 투자하려는 고객들이 많다"며 "포스코건설(AA-)이나 롯데건설(A+) 같은 우량 그룹 계열사 관련 전자단기사채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건설이 보증한 전자단기사채 수익률은 3개월 만기 기준으로 연 3% 초반 정도지만 지난해 말부터 한동안 4%를 웃돌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예금금리가 지극히 낮은 상황에서 대외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우량 회사채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박태근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연구위원은 "통계적으로 국내 AA급 회사채는 부도 사례가 없다"며 "거액자산가 관점에선 수익률만 은행 예금이자보다 높다면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테이퍼링 등으로 인한 경기 불안이 계속되면 자산가들의 대기성 자금이 계속 우량 회사채로 흘러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한국경제 기자 e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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