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이장호 감독 "필름값 걱정 덜었지만.."

글 박은경·사진 김문석 기자 2014. 4. 17.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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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69) 감독은 <별들의 고향>(1974)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나이는 29세. 국도극장에서 단관 개봉된 이 영화는 4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1967)이 처음으로 30만 관객을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바보 선언>(1983)에서 사회 문제를 관통하는 시선, 새로운 영화 문법을 보여주며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데뷔 40주년을 맞은 이장호 감독이 신작 <시선>을 선보인다. <천재선언> 이후 꼭 19년 만이다.

최근 서울 충무로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장호 감독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19년 전과 현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겠다.

"극과 극이다. 나이 많은 연출자도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됐더라. 전엔 카메라를 고정해 찍은 것 외에는 촬영 본을 볼 수 없어 불안했다. 필름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도 컸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시름을 덜게 됐다. 지금은 모니터 보면서 내가 표현하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현장 편집도 가능하다. 동시 녹음을 하니 배우들도 최선의 연기력을 발휘하더라."

- 어려운 점은.

"스태프들이 괴로웠을 거다. 난 책상에선 콘티가 안 짜진다. 현장 가서 배우가 투입돼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스태프들이 아무리 불평해도 해결을 못해줬는데, 나중엔 콘티없이도 이렇게 찍을 수 있냐며 놀랐다."

- 종교를 소재로 하지만 맹목적 선교 영화는 아니더라.

"영화를 보면서 비기독교인은 잊고 살았지만 마음속엔 잠재돼있는 향수를 느끼고, 기독교인은 잘못된 고정관념을 반성했으면 한다. 기독교인은 배교의 문제에서 특히나 엄격한데, 비기독교인의 눈에서 보면 어리석다고 느낄 수 있지 않나."

- 실제 교회 장로인데, 영화 속 장로는 세속적으로 그려진다.

"그게 다 내 옛날 모습이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내 분신들이다(웃음)."

- 지난해 <시선>에 출연한 배우 박용식, <별들의 고향>의 원작자이자 고교 동창인 최인호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 심정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최인호는 운명적으로 내게 은혜만 주고 간 친구다. 그를 만나지 못했으면 영화 인생이 이렇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침샘암으로 5년간 투병할 때 그는 그 모습을 주변에 보여주지 않았다. 유고집 <눈물>에 투병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데, 그걸 읽고 나도 모르게 최인호처럼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왜냐면 (최)인호는 한 번의 시련도 없이 쭉 내달린 고속 인생이었다. 투병하면서 하나님께 투정하고 집중적인 소통을 하면서 아주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했다. 대개는 철부지나 욕심쟁이로 살다가 마무리도 못하고 갑자기 떠나지 않나. 대한민국엔 암에 걸려야 아름답게 될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치인들도 병에 걸려야, 국민 생각을 할 것 같다. <눈물>에 대한 답신으로 최인호 추모 영화를 계획 중이다."

19년만에 영화 〈시선〉으로 돌아온 이장호 감독이 3일 서울 중구 주자동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시선〉은 선교사 조요한(오광록)의 안내로 선교를 떠난 8명의 한국인들이 반군에 피랍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오는 17일 개봉.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40년 전과 비교해 한국영화의 발전을 어떻게 평가하나.

"<바보선언>은 사전검열 때문에 시나리오 없이 찍었다. 외화 쿼터를 따기 위해 한국영화를 찍는 시대였다. 그때가 야만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로봇의 시대다. 상업적으로 발전하고 테크닉도 좋아졌지만, 투자자·배급사가 너무 거대해져 자본의 논리가 영화를 지배한다. 감독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작가정신은 거세당하고 희생된다."

- 바람직한 발전은 무엇일까.

"대개의 영화는 관객에게서 돈을 긁어모으려고 한다. 좀 훌륭한 감독이래야 자신의 명예를 높이는 데 이용할 것이다. 어쨌든 관객은 볼모로 잡혀있다. 관객들도 마조히스트처럼 당하는 걸 거부하지 않으니, 서로 변태적 관계인 셈이다. 영화는 관객들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작가적 생각을 가진 감독들에게 창작의 길이 열려야 한다."

- 예전엔 문학과 영화가 가까이 있었는데, 그 자리를 웹툰이 차지했다.

"요즘 세대는 스피디한 CF 영상의 움직임에 훈련되며 자랐다. 공부할 때도 이어폰 꼽지 않나. 오디오·비디오 분야만 조기 특수 훈련을 받은 거지. 문자는 거세되고, 영상만 천재적으로 키워진 거다. 그 와중에 인문은 실종돼버렸다."

- 젊은 후배 감독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영화 잘 만들고 학력 우수한 젊은 감독들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작품은 잘 모르더라. 외국 영화나 DVD만 보고 영화를 공부한거지. 봉준호는 젊은 데도 얘기가 잘 통한다. 그러니 <설국열차> 같은 작품도 나올 수 있었던 거다. 후배들이 인문학 기초를 탄탄히 다졌으면 한다. 인문학이 없으면 절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글 박은경·사진 김문석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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