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처에서 미래부까지..과학기술 '부침의 역사' 47년

이승현 입력 2014. 4. 16. 02:55 수정 2014. 4. 16.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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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첫 과기부처 신설..'부총리급'에서 한순간 타부처에 '흡수'되기도
과학·경제발전 핵심역할..국정과제 '수행기관'으로 이용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베트남 전쟁 파병의 대가로 미 정부로 받은 원조금액(1000만달러)을 과학기술 개발에 투자키로 결심했다. 1966년 최초의 국책종합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어 당시 과기담당 행정기구인 경제기획원 내 기술관리국을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로 격상해 독임부처로 출범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157달러(세계은행 집계 기준)에 불과한 시기였다. 4월 21일은 이듬해부터 '과학의 날'로 지정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경제분야 발전에서 우리나라 과기부처와 산하 출연연구원은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과기부처는 정권의 목적에 맞춰 기능하는 탓에 한때 부총리급에서 일순간에 다른부서로 통합되는 등 크고 작은 부침을 겪어왔다. 오는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각종 행사가 열리지만, 47년이나 된 과기부처의 조직 안정화는 요원해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경제·군사 발전 위해...과학기술 기본 틀 마련한 박정희 정권

'과학입국 기술자립'을 내건 박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과기분야의 기본 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1971년)과 대전 대덕연구단지 조성(1973년), 기계·선박·전자·화학·전기기기 분야의 출연연 설립(1976년) 등이 모두 이 때다.

당시 대덕단지 연구원은 대학교수 월급의 3~4배를 받았다고 한다. 학생은 물론 어른들에게까지 과학의 '생활화'·'대중화' 등이 줄곧 강조됐다. 경제 및 군사발전을 위해선 과학기술이 필수라는 정권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뒤이은 전두환·노태우 정부도 박 정권을 승계했다. 특히 1982년 국가가 연구개발(R & D)에 본격 나서는 '특정연구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000억원대였던 정부 R & D 예산은 올해 17조7000억원대로 불었고, 80년대 후반에는 건설과 식품, 생산, 항공우주 분야의 출연연이 신설됐다.

◇부총리급→타 부처에 흡수→공룡부처...정권 따라 '흔들'

민주화 시대의 정권도 과기발전에 대한 의지가 결코 뒤지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는 '과학기술 고도화'의 일환으로 신산업인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강조했다. 체신부는 1994년 ICT를 총괄하는 '정보통신부'로 거듭난다.

김대중 정부는 과기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시켰다. 부처서열 17위 조직이 단숨에 8위의 장관급 기관이 됐다.

'제 2의 과학기술입국'을 내건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과기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켰다. 특히 정부 R & D를 조정 및 기획·평가하는 콘트롤타워인 '과기혁신본부'를 운영했다. 과기인재 양성화를 위한 '이공계지원 특별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부총리급의 과기부는 갑자기 또다른 부총리급 부처로 흡수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 슬림화'와 '과학과 교육의 융합'을 이유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합한 '교육과학기술부'를 출범시킨다. 전 정부 때의 과기혁신본부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넘어갔으며 과기분야는 현안이 많은 교육이슈에 줄곧 밀려났다.

과학계는 이 때를 "가장 암울했던 시기"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추진(2009년)과 기초과학연구원 설립(2011년), 나로호(KSLV-1) 발사 성공(2013년) 등 우리 과학역사에 기록될 핵심 프로젝트 또한 있었다.

이공계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은 과기부처를 5년만에 부활시킨다. 과학과 ICT를 중심으로 5개 부처를 통합한 공룡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탄생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3월 19일 정부과천청사 내 미래창조과학부 현관에서 최문기 장관 등 부처 관계자들 함께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정권 따라 미션 변해"...과학 프로젝트 일관성 있는 추진 어려워

과기부처가 이처럼 쉽게 바뀌는 것은 정권의 핵심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다. 미래부 고위관계자는 "과학분야는 정권에 따라 미션이 변화해왔다"고 말했다. 순수한 의미의 과학기술 발전이 최우선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군사정부는 과학기술 발전을 체제경쟁 수단으로 썼으며 노무현 정부도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과기 부총리제를 도입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 이명박 정부는 과기부 통폐합을 단행했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성과를 내기 위해 과학과 ICT를 통합한 측면이 있다.

때문에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등 장기 프로젝트들은 정권과 무관하게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연연구원장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4대강 사업을 위해 개발한 '로봇물고기' 때문에 현 정부에서 감사원 감사를 받게되자 출연연들은 차라리 국가사업을 맡지 않는 게 낫겠다는 판단까지 한다"고 했다.

단기성과를 기준으로 과기기관 수장을 자주 바꾸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기처에서 미래부까지 모두 29명의 수장을 맞아 평균 재직기간이 1.62년에 불과하다. 박정희 정부(2명)를 빼고는 정권에 따라 매번 3~5명씩 장관이 교체된 셈이다.

이승현 (lees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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