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 소식 끊긴 오빠 보자마자 '벌떡'.. "엄마는 평생 대문 열고 사셨어요" 오열

금강산 공동취재단·이지선 기자 2014. 2. 2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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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2차 상봉.. 북측 신청자 이산 상봉
젖먹이였던 딸 만난 아버지 "못 알아보겠어..엄마는?"

북한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이 23일 금강산에서 만났다. 남측 가족들은 대부분 6·25 전쟁 중에 소식이 끊긴 부모 형제가 이미 사망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금강산면회소에서 이뤄진 단체상봉도 가지각색의 상봉 사연들로 애틋함을 더했다.

전경숙씨(81)는 중절모에 지팡이를 짚은 북측의 오빠 전영의씨(84)가 상봉장으로 들어오자마자 "오빠"라고 부르며 벌떡 일어났다. 또 다른 동생 영자씨도 오빠를 얼싸안았다. 두 여동생은 "엄마가 평생 대문을 열어놓고 살았다"며 흐느꼈다. 북의 오빠도 "오마니, 내가 언제 올지 몰라 대문을 안 잠그고 살았단 말이오"라며 눈물을 흘렸다.

딸 얼굴 차마 똑바로 못 보고…

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 첫날인 23일 금강산면회소에서 남측의 딸 봉자씨(61)가 북측의 아버지 남궁렬씨(87)를 만나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살 젖먹이였던 딸을 60여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딸을 마주보지 못한 채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부모·자식 간 만남은 2차 상봉에서 이들이 유일하다. 금강산 | 사진공동취재단

6·25 전쟁 때 젖먹이였던 남궁봉자씨(61)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북쪽 아버지 남궁렬씨(87)를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 봉자씨가 "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못 알아보겠다"며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봉자씨는 "5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네 엄마는 나한테 진짜 과분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1시간 가까이 아버지는 차마 딸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조카들만 쳐다봤다. 딸이 아버지 얼굴에 가까이 대고 말을 걸고 나서야 미안한 듯 바라봤다.

북쪽의 형 김봉기씨(81)를 만난 동생 연주씨(79)는 형이 6·25 전쟁 때 의용군으로 끌려가고 죽은 것으로 알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전했다. 충남 청양이 고향인 북쪽 박창순씨(86)의 남쪽 동생들은 서울에서 공부하던 형이 행방불명되자 죽은 줄 알고 사망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약혼자와 함께 북한으로 간 언니 홍석순씨(80)를 생각하며 남측 동생 명자씨(65)는 '영혼결혼식'까지 올려줬다고 했다.

이종신씨(74)와 영자씨(71)는 북측의 형 종성씨(85)를 만났다. 종신씨는 형이 4·3 사건 때 군경에 끌려가 사라진 뒤 인천 소년형무소에 수감된 것으로 알고 있던 터다. 난리통에 형이 죽은 줄 알았던 가족들은 형의 가묘(假墓)를 만들고 비석까지 세워놓았다. "고향은 그대로 있는 게냐"는 형의 물음에 종신씨는 "제주가 '시'가 됐어요"라고 했다.

이어 열린 환영 만찬 분위기는 첫 만남보다 화기애애했다. 가족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음식을 챙겨줬다. 수원이 고향인 북한의 박재선 할아버지(80)는 남한의 동생 재희씨에게 "아까 흘린 내 눈물이 부모님 묘소에 떨어져 금잔디가 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김종섭 2차 상봉단 남측 단장은 '사랑'과 '평화'를 건배사로 건배를 제의했다.

24일에는 개별상봉과 공동오찬, 단체상봉 3차례 만남이 이어진다.

한편 이날 오전 상봉단과 함께 북측으로 향한 남측 취재진 중 한 명의 노트북을 북한 군인이 북측 출입사무소에서 검사해 바탕화면에 있던 북한인권법 관련 자료를 문제 삼아 출입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남북 협의 끝에 이번 일이 상봉 행사 등에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고 판단해 해당 기자는 오후 10시가 넘어 취재단에 합류했다.

< 금강산공동취재단·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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