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우승에..가난한 '캐디 아빠' 닭똥 같은 눈물

2013. 6. 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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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보경 'E1 채리티오픈' 1위

5년만에 KLPGA 정상 올라

집안 형편 탓 아버지가 캐디

"4번 아이언 대신 7번 우드를…"

9번홀서 딸 승리에 결정적 조언

우승한 김보경(27·요진건설)은 동료들의 축하 세리머니에 흥겨워 그린 위를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그런 신이 난 김보경을 지켜보며 그린 한쪽에 서 있던 캐디는 닭똥 같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아무리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다.

늙수그레한 캐디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다. 순간 김보경의 동료 선수들이 캐디에게 다가와 화려한 꽃잎과 물을 뿌리며 축하해 준다. 캐디의 튼튼한 두 장딴지에는 파스가 붙어 있다. 다행히 뿌려준 물이 얼굴을 흘려내려 눈물을 감출 수 있었다.

김보경의 동료들은 그 캐디에게 "아버님 축하드려요"라고 진심으로 말을 건넨다. 캐디는 바로 김보경의 아버지 김정원(57)씨였다. 딸과 숱하게 다투며 견뎌 온 지난 9년이었다.

2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김보경의 아버지이자 캐디인 김씨는 놀랍게도 골프를 전혀 못 친다. 골프채를 휘둘러 보지도 않았다. 다른 골프 선수들의 아버지처럼 사업차 필요해 골프를 하다가 취미가 되며 딸을 골프에 끌어들인, 그런 여유 있는 아버지가 아니다. 10년 전까지 부산에서 조그만 잡화가게를 했다.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나마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 수술을 받느라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수술비로 집안의 돈을 다 썼다. 다행히 딸은 골프를 잘 쳤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가르친 골프가 아니다. 김씨의 남자 후배가 "딸의 신체조건이 좋으니 실내 골프장에라도 데려가 골프를 가르치라"고 권유해 시작한 골프다. 그러니 다른 선수들처럼 유명한 골프 코치에게 레슨을 받은 적도 없다. 타고난 체력과 집중력으로 딸은 골프를 잘 쳤다.

심장병 수술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김씨는 할 일도 없고, 대회에 나가는 딸을 도와줄 캐디를 고용할 돈도 없어 무작정 캐디백을 메기 시작했다. 남들은 캐디의 도움을 받으며 경기를 했지만 김보경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했다. 그린 위에 올라간 공의 라이(공을 칠 방향)도 보지 못하는 캐디였다. 게다가 성격은 정반대. 김씨의 성격은 다혈질에 급했고, 딸은 차분하고 낙천적이었다. 딸은 형편이 어려워 캐디백을 메고 따라오는 아버지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씩 골프에 대해 알면서 아버지의 잔소리도 늘었다.

2008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을 했지만 김보경의 가장 역할과 아버지 김씨의 캐디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체계적으로 레슨을 받지 않으니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왔고, 김보경은 자신의 골프가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도 없었다. 선수 딸과 캐디 아버지의 갈등은 최고점으로 치달았다. "2년 전엔 최악이었어요. 답답했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다행히 레슨 전문 프로를 한두번 만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치면서 고비를 넘겼어요."

아버지와 딸은 고향인 부산에 살아,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회장으로 움직인다. 골프장이 많은 경기도에 이사 올 형편도 안 된다. 남들이 다 하는 외국에서의 동계훈련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날 김보경의 우승에 아버지 캐디 김씨는 '보기 드문 결정적인 조언'을 해줬다. "9번홀(파4)에서 두번째 샷을 4번 아이언으로 하려고 아이언을 꺼내려는 순간, 아버지가 '7번 우드를 잡아라'라고 권유하셨어요. 반신반의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 우드를 쳤고, 180야드를 날아가 하마터면 홀에 들어갈 뻔했어요.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어요." 김씨는 "딸이 우승해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쁘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하게 못난 아빠와 같이 생활해준 것이 정말 고맙다"며 딸을 고마워했다. 김씨는 아직 심장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보경은 이날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 스프링스 골프장(파72·6496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에 보기 1개를 곁들여 3타를 줄이며 합계 10언더파 206타를 기록해, '슈퍼 루키' 김효주(18·롯데)를 2타 차로 제치고 생애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1억2000만원을 받은 김보경은 시즌 상금 랭킹 6위(1억5500만원)로 올라섰다.

마지막날 동타로 우승 경쟁을 시작한 김보경과 김효주는 10번홀까지 동타를 유지하다가 김보경이 14번홀(파3), 16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김효주를 제쳤다. 김보경은 "이번 대회 시작하기 전날 우승 재킷을 입는 꿈을 꿨는데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기뻐했다. 아버지 캐디 김씨는 말없이 짐을 챙겼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천/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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