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장애인의 날.. 하반신 마비 8살 수민이의 일기
[서울신문]20일은 33회 장애인의 날이다. 초등학교 1학년 수민(가명)이는 태어나면서 소아암에 걸려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활동보조인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어른스러운 수민양의 일상을 통해 장애복지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안녕하세요. 전 서울 강동구 A초등학교 1학년 수민(가명)입니다. 올해 8살이 됐죠. 태어나자마자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소아암 진단을 받았고 15번의 항암치료 끝에 완치됐죠. 하지만 암세포가 척추를 눌렀던 후유증으로 걸을 수 없어요. 전 4살 때부터 학교에 가는 게 꿈이었어요. 친구들이 뛰어노는 시간에 전 책을 읽고 시도 쓰면서 초등학생이 되기를 기다렸죠. 학교에 가면 교실에서 선생님한테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니까요. 엄마는 절 평범한 애들이랑 한 반에 넣으셨어요. 특수반은 머리가 아픈 친구들이 많이 있는 곳이라서 공부는 잘 안 배우거든요. 저도 몸은 불편하지만 공부는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입학하고서는 이모(활동보조인)와 함께 학교에 다녔어요.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나라에서는 사람을 보내 주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라는 걸 시행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저 같은 '2급 장애인'도 지원해 주거든요. 지난해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1급 장애인들만 도와줬는데 돈이 많이 남았대요. (지난해 지원제도 예산은 800억원이 남아 올해로 이월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장애인 24시간 돌봄서비스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모는 참 고마운 분이셨어요. 친구들이 뛰어다니는데 혹시 제 휠체어가 넘어질까 봐 잡아 주기도 하고 하루에 두 번씩 제 도뇨(소변을 기구로 뽑아내는 일)도 꼬박꼬박 도와주셨죠. 떨어진 지우개도 집어 주셨어요. 그런데 2주 있다가 휴가를 내셨어요. 절 들어서 옮기거나 휠체어를 미는 게 힘들어서 몸살이 나셨대요. 허리 보조기까지 하면 제가 30㎏이나 되거든요. 수업 시간 내내 저 같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의자를 놓고 수업을 듣는 것도 부끄러우셨대요. 이틀 있다가 오신다던 이모는 다시 오지 않으셨어요. 이모부가 관두라고 하셨대요. 지금은 도뇨는 집에서 할머니가 와서 해 주시고요. 학교에선 친구들 방해 안 되게 무조건 조용히 있어요. 제가 넘어지면 담임 선생님이 불편하시잖아요.
엄마는 한달째 전화통을 붙잡고 계세요. 복지관이랑 서울시랑 보건복지부 담당자는 이제 엄마랑 제 이름을 척 아실 정도죠. 저처럼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나 많이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은 활동보조인 구하기가 힘들대요. 그분들이 거의 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서 힘든 일은 잘 못 하신대요. 전 복잡해서 잘 모르겠는데 엄마가 이렇게 전해 달래요. "활동보조인의 업무 강도를 감안하지 않고 지금처럼 장애 정도에 따라 월 사용 시간만 정해 주면 수민이 같은 중증 지체장애인들은 계속 소외받을 수밖에 없다"고요. 나라에서 전 한달에 72시간짜리 서비스 대상이라고 정해 줬거든요. 그런데 이모들은 한달 내내 한 사람만 보고 싶어 한대요. 제가 생각해도 차비도 안 주니까 직장이 하나인 게 좋을 거 같아요. 엄마가 또 한숨을 쉽니다. '저 장애인 처지가 딱하니 네 몸이 망가지더라도 좀 돌봐 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면서요. 시간이 아니라 제가 얼마나 학교에 잘 다니고 싶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지를 재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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