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독립운동가의 아들.."선친 원망할 때도"

곽승규 기자 2013. 3.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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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ANC▶

불편한 사실이지만, 3.1절, 오늘 같은 날이나 돼야 문득 떠올리게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인데요.

대접 받으며 살아도 부족한데 대다수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곽승규 기자가 폐지를 모아 근근이 살고 있다는 독립운동가 후손 한 분을 만났습니다.

◀VCR▶

독립운동가 추모비 앞에 선 78살 김시진 할아버지.

아버지 이름 앞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참아냅니다.

그날 밤. 김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폐지를 주웠습니다.

하루 4시간 이상 폐품를 모아 버는 돈은 한 달에 6만원 남짓.

기초생활비와 노령연금까지 합쳐봐야 월 수입은 45만원 밖에 안됩니다.

◀SYN▶ 김시진(독립운동가 후손)

"어떨 때는 선친들께 원망도 더러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만주로 망명을 안갔으면 우리 아버지 앞으로도 땅도 있을거고, 집도 있을거고..."

김 할아버지의 선친은 1928년 북만주에서 독립 운동 기지를 세운 김문로 선생입니다.

◀INT▶ 김희곤 관장/안동 독립운동기념관

"(북만주 독립운동기지인) 취원창이란 마을을 개척하고 20년동안 끌고 간 최고의 주역이 김문로라는 분입니다."

선친의 활약상은 독립운동을 다룬 몇몇 책에도 나와 있지만, 중국 정부 등이 당시에 기록한 공식 문서가 발견되지 않아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INT▶

"이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는데 그래도 그만한 인정은 받아야되지 않겠나..."

일제와 싸우다 목숨을 잃은 독립운동가는 15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유공자로 인정된 1만 3천명을 제외한 대다수는 기록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무런 예우와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곽승규입니다.

(곽승규 기자 heartist@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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