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우, "연극쟁이의 열정이 다시 떠올랐어요"

2012. 11. 16. 09: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쇼핑저널 버즈]

▲ 연극 [양철지붕]에 출연하는 이찬우 배우를 공연 전 무대에서 만났다. (뉴스컬처)

경기도립극단 수석단원, 연극 '양철지붕'에서 구광모 역 맡아 열연중

이 배우를 대학로에서 만난 건 행운이었다. 배우 자신도 13년 만의 외출에 신이 나 있었다. 경기도립극단 수석단원 이찬우의 이야기다. 20~30대를 줄곧 대학로를 지키며 연극쟁이로 살다가, 40살이 되던 해인 2000년 경기도립극단 단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고선웅 연출이 2010년부터 도립극단 단장을 맡으면서, 그에게 대학로 무대에 다시 설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늙어가는 기술'에서 사채업자 찬봉 역으로, 그리고 현재는 '양철지붕'에서 깡패 같은 남자 구광모 역으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 사이 10월에는 화성시 반석아트홀에서 '화성인, 이옥'의 문인 이옥을 연기하기도 했다.

"담금질 당하는 기분이었죠." 두 달 동안 무려 세 편을 연달아 공연하는 지옥같은 스케줄이었다. 현대극과 사극을 오가고, 성격도 말투도 계속 바뀌었다. "이건 횡포다"라며 엄살을 부렸지만, 내심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청춘 때 대학로에서 열정을 쏟아부었어요. 그러다 가족이 생겨 극단 단원 생활을 택했고요. 지난 10년 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했는데, 고선웅 단장이 오고나서부터 '연극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아, 내가 연극쟁이였지!'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죠."

경기도립극단과 연극열전이 손잡고 선보이는 연극 [양철지붕]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14년 만에 옛애인을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는 '나쁜 남자' 구광모다. "10년 전부터 배역을 받으면, 그 캐릭터와 정서적으로 비슷한 곡을 선별해서 듣는 습관이 있어요. 이번에는 비오는 거리에서 외로운 인생을 노래하는 곡을 선택했죠. 평소에 계속 들어요. 정서에 빠지기 쉽더라고요."

그는 내면에서 구광모를 끌어냈다. "모든 인간은 수만가지 캐릭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속에도 착한 자아와 나쁜 자아가 동시에 꿈틀대고 있어요. 폭력적인 성향의 구광모도 제 속에 잠재돼 있었죠."

사실 구광모의 첫인상은 달갑지 않았다고 했다. 제일 불편했던 건 '나이'였다. "50살이 넘었는데 3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구광모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여태까지 도립극단에서 했던 역할과도 굉장히 달랐죠. 주로 좋은 역할만 했거든요. 물론 대학로에서 인신매매범, 깡패 같이 포악스러운 역할은 해봤어요. 그런데 13년 만에 다시 찾아온거죠. 생소했어요."

▲ 연극 [양철지붕](연출 류주연) 공연장면 중 애인 유현숙(사진 오른쪽 이서림 분)을 14년 만에 찾아온 구광모(이찬우 분).

그는 주어진 역할에 온 애정을 쏟아부었다. 작품에서의 구광모는 정말 '죽일 놈'이다. 애인 유현숙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 그가 순전히 복수심에 불타올라 하는 행동 같다. 하지만 그는 "구광모를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제가 그 사람으로 살고 있는 한, 제가 생각하는 구광모는 나름대로 아픔도 있고 외로워하고 슬퍼하는 인물입니다. 인생이 잘못 풀려서 그런 것뿐이죠. 구광모도 사랑을 아는 남자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애인을 되찾아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을 거에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복수심'보다는 '애증'에 가깝다고 했다. 희곡에는 구광모의 진한 페이소스를 느끼는 대사도 있었다. 그러나 캐릭터를 분명하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략됐다. 일례로, 극중에서 유현숙이 "왜 나를 때리기 시작했어?"라고 묻자, 구광모는 "청승맞은 소리 그만해. 쓸모가 있잖아 반반한 년은..."이라며 회피한다. 하지만 희곡에는 그녀에 대한 그의 태도가 명확하게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유현숙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구광모는 근본부터 악질로 비춰져야 했다. 그래서 구광모는 자신의 사랑을 겉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무뚝뚝한, 나쁜 '남자'인거죠. 나쁜 '놈'은 아니에요. '당신의 마음 다 안다. 그런데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는 근래 해왔던 작품 중 [양철지붕]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폭력의 영속성을 말한다. "폭력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잖아요. 영원히 공존하며 사는 겁니다." 관객이 공연장을 나설 때 불편해하고 찝찝해하면 성공이라고 했다. "삶이 명쾌하지 않잖아요? 잠들기 전 찝찝하지만, 또 내일을 사는거죠. 이 연극은 우리 삶과 닮았아요."

그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다. 서울예전에 진학해 졸업하자마자 대학로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순수 연극배우"라고 표현했다. "한 눈을 판 적이 없죠. 죽으나 사나 연극만 했어요."

30년 동안 무대를 지켜온 그에게 연극을 사랑하는 이유를 물었다. 비록 상투적이지만, 그만큼 진심이 담긴 대답을 내놨다. "수많은 캐릭터로 살 수 있으니까요. 지루하지 않죠."

두 달 사이에 세 인물로 살아온 요즘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23년 동안 같이 살아온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배역에 따라 제가 집에서 하는 게 다르더랍니다. 지금은 구광모를 맡았으니, ?고 와일드하게 행동하니까 안사람도 좋아하더라고요.(웃음)"

경기도립극단 소속이기 때문에 외부 활동에 제약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는 어디에 있든 연극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했다. "특별한 꿈은 없어요. 매일 재밌고 즐겁게 작품할 수 있으면 돼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얼마나 흥미롭고 재밌는 일입니까? 그걸 객석에서 공감해주면 더욱 좋죠."

오는 18일 대학로 공연이 막을 내리면, 그는 다시 경기도문화의전당으로 내려가 같은 작품으로 경기도 시민과 만난다. 그리고 그는 평소처럼 지역 순회 공연에 합류할 예정이다. 언제 다시 그를 대학로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보내기엔 아쉽다.

그의 말마따나 "음식에 후추가 필요하면 안에서든 밖에서든 후추를 만들어오는 고선웅 단장" 덕분에 그도, 관객도 행복했다. 앞으로 그의 무대가 어디든지간에 강렬한 존재감으로 '연극쟁이'의 길을 묵묵히 걷길, 그리고 또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뉴스컬처에 동시 게재됩니다.)

[관련기사]

이버즈 트위터에 추가하기

송현지 기자(mailto:news@ebuzz.co.kr)

이 기사는 No.1 컨슈머뉴스 이버즈에 동시 게재됩니다.-Copyright ⓒ ebuzz.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