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료 연간 800억.. "토익시험 꼭 봐야 하나요?"

2012. 10. 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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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오전 7시, 수진(가명?24)씨는 버스 정류장에서 졸린 눈을 비비고 있다. 영어 단어장을 들고 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수업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그녀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는다. 며칠 전까지는 토익 수험서를 꺼냈지만, 오늘부터는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 :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프로그램과 윈도우 운영체제에 대한 자격증)를 준비해야 한다. 밥 먹는 시간을 쪼개가며 도서관과 교실을 전전한 그녀는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곧장 휴식을 취할 수는 없다. 서류마감이 다가온 지원서에 넣을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내용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만족스럽지 못한 글쓰기를 마치고 오전 3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특별히 특별할 것도 없는 취업준비생의 하루의 모습니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며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다. 오늘 뭘 해야 할지는 확실하지만, 내일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지 알 수가 없다.

취업준비생들이 털어놓는 고민

"대체 내가 어디까지 달려야 '너 괜찮아. 잘했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거죠? 그 답을 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줄 알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요. 정말 이대로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은형(가명) ? 29)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문재인 시민캠프에서 20대 취업준비생과의 '디테일한 청년 미팅'이 진행됐다.

ⓒ 김민수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문재인 시민캠프에서 20대 취업준비생과의 '디테일한 청년 미팅'이 진행되었다. 지난 30대 싱글여성과의 만남 이후 두 번째로 진행된 행사였다.

"사람들 인식이 중소기업은 어렵고, 힘들고, 비전이 없다는 거잖아요.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대학을 나와야 하고, 그것도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훌륭한 스펙을 갖춰야 하고, 눈높이를 높여서 대기업에 들어가야 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고, 이런 생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는 않아요." (진혁(가명) ? 20)

대학 졸업장을 받으면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었던 시절은 역사 교과서에나 있는 이야기다. (좋은) 직장의 공급은 줄고, 구직자의 수요는 늘어나니 가격경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생들은 각자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경쟁과 압박에 시달린다. 중국어 통역업무를 지망하는 지윤(가명?23)씨는 관련학과 전공, 중국 연수, 해외 봉사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아왔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각은 그 정도로 되겠냐는 것이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토익 점수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 남들은 토익 시험을 왜 준비 안하냐는 것을 계속 묻더라고요. 경영학 복수전공도 왜 안하냐고 묻고… 집에서도 그렇고, 주위에서도 그 정도 스펙은 있어야 하지 않냐며 압박 주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야 하지 않냐, 뭐 이런 식이에요. 저는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주위에서 계속 압박이 들어오니 고민이 되요."

오랫동안 대학교 학생회에서 활동하느라 스펙을 관리하지 못한 준호(가명?26) 씨는 진로 문제로 고민이다. 최근 들어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고 있지만, 학교 측에서 요구하는 학점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 걱정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장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서, 스펙이나 학점 같은 것은 저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학점 때문에 대학원 진학이 발목 잡히더라고요. 저 말고도 학점 기준이 충족되지 않아서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활동하느라 정신이 없긴 했었지만 어느 정도 학점관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조금 들어요."

선혜(가명?24) 씨는 스펙경쟁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청년들을 소진시키는 스펙 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지만, 이 규칙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괴로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토익 같은 스펙경쟁 이런 거 다 잘못된 시스템인거 알겠는데, 정작 나는 어떻게 하고 있지 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 괴롭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토익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하지만 마음에 없는 일을 하려다 보니 효율은 떨어지고… 개인적으로는 이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가지게 될 정도로 현실감각이 떨어지지만, 한편에서는 이 현실이 작동하는 시스템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지요."

토익이 꼭 필요한가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한 윤성(가명?20)씨는 스펙경쟁, 특히 토익시험이 가지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를 했고, 외고에 다니면서 토익 시험도 꾸준히 봤어요. 10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면서 살아온거죠. 그런데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지를 못해요. 대체 뭘 했나 싶더라고요. 독해나 문법도 필요하지만, 밸런스가 중요해요. 말을 못하다보니 실생활에서의 활용도가 너무 떨어지고 의지도 안 생기죠. 토익 스피킹 나올 때 웃겼어요. 이제는 토익으로는 정말 변별력이 없으니까 이런 것도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죠."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문재인 시민캠프에서 20대 취업준비생과의 '디테일한 청년 미팅'이 진행됐다.

ⓒ 김민수

토익은 취업준비생들의 필수적인 이력이 된지 오래다. 토익시험을 치르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청년유니온에서 청년층 50명의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전체 청년층의 90% 가량이 토익 시험에 응시한 경험이 있으며, 이들은 평균 9차례의 토익시험을 치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이 토익 등 자격증 응시에 들인 '응시료'만 평균 59만원에 달했고 학원 수강, 교재비 지출 등 사교육에 쓰인 비용도 평균 112만원에 이르렀다. 2012년 현재 토익 응시료는 4만 2000원이며, 연간 토익 응시자 200만 명 가량이 지출하는 응시료는 약 800억 원 수준에 달한다. 토익 외의 자격증 응시와 사교육 비용을 포함하면 청년 취업준비생들의 구직 비용은 천문학적 액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자리에서는 토익과 스펙경쟁을 둘러싼 취업준비생들의 정책 제안도 이어졌다. YBM 차원에서 응시료와 성적 유효기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대학교에서 장학금 대상 선정과 졸업 인증을 위해 토익을 기준 삼는 정책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사립대에 다니는 제 친구는 토익 점수가 기준치를 넘지 못해서 결국은 장학금을 받지 못했어요. 학점도 충분했는데. 토익 졸업인증제 뿐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정말 문제인 것 같아요. 완전 발목잡기죠." (준호 (23·가명))

행사의 진행을 맡은 김영경 공동선대위원장은 "스펙경쟁의 본질은 일자리의 부족에서 기인한다"며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서 "전국민이 토익 등 영어시험을 치르기 위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하며 블라인드 테스트와 표준이력서와 같은 제도를 공공부문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도입해 채용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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