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중간첩 사형 북파공작원의 기구한 사연

2012. 10. 2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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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에 묻힌 아픈 가족사가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반세기가 넘도록 아버지를 찾아 헤맨 심한운씨(63)의 사연은 유난히 가슴을 저민다. 심씨의 아버지 심문규씨는 어린 시절 일제 관동군에 동원됐다가 광복 후 북한 인민군에 편입됐고 6·25전쟁 와중에는 국군에 소속됐다. 1955년 북파공작원이 되어 북한에 침투했다가 붙잡혀 남파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2년 뒤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이틀 만에 자수했지만 1960년 3월 이중간첩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1961년 5월25일 총살형에 처해졌다.

식민통치와 분단의 최전선에서 감당해야 했던 그의 비극적 삶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 한운씨는 10살 때인 1959년 군 형무소에 수감된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뒤 50년 가까이 생사조차 알지 못했다. 군 관계자와 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상대로 수없이 행방을 추적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아버지가 사형 판결을 받은 사실은 2005년, 형이 집행된 사실은 2006년에야 알 수 있었다. 군 당국이 심씨의 사형 판결과 집행 사실을 가족에게 통보하고 확인해주는 데 각각 45년씩이나 걸린 셈이다.

더욱 분통 터지고 가슴 아픈 일은 심씨를 사형에 이르게 한 사건의 진실이다. 2009년 9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심씨의 위장자수 혐의가 조작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육군첩보부대는 북파한 심씨가 제때 귀대하지 않자 당시 8세였던 아들 한운씨를 데려다 북파공작 훈련을 시킨 사실도 확인됐다. 심씨의 억울한 누명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원범 부장판사)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법적으로도 벗겨졌다. 재판부는 과거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심씨와 유족의 명예가 일부라도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씨 사건은 우리의 어두운 과거사와 그늘에서 이루어진 국가 폭력의 잔혹함은 물론 끝까지 이를 은폐·조작·호도하고 책임을 회피해온 국가 권력의 비정한 측면을 회의하게 만든다. 국가를 위해 사선을 넘나든 심씨와 55년 동안 고통받아온 유족에 대해 정부는 사과와 명예 회복, 보상 등 성심 있는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씨의 유골을 찾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도대체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6년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토한 한운씨의 절규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에게 아버지뿐 아니라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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