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간첩 死刑, 53년 만에 무죄 선고.. 법원은 고개숙였고 유족은 오열했다

송원형 기자 2012. 10. 2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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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심문규씨 재심.. 법원 "사법부 역할 다 못해 죄송하고 안타까워.."

"판사님 말씀이 계속 가슴에 남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 재판부가 '이중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심문규(사망 당시 38세· 사진)씨에게 53년 만에 무죄를 선고하자, 심씨 아들 심한운(63)씨는 흐느꼈다.

심씨에 대한 재심 심리를 맡은 형사21부 이원범 부장판사는 "당시 수사 서류를 검토한 결과 심씨가 위장 자수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심리하면서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심씨 명예가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씨는 1955년 동해안을 통해 북파돼 인민군 장교 생포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 북한군에 체포된 뒤 1년7개월 정도 대남간첩교육을 받고 다시 남파됐다. 심씨는 서울에 도착해 자수했으나 불법 구금돼 '위장 자수' 혐의로 1959년 사형을 선고받았고 1961년 대구교도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아버지가 북파되기 직전 아들 심씨는 일곱 살이었다. 심씨는 아버지가 북파된 후 어린 나이에 북파 공작 교육을 받기도 해서 평소 특수부대에 대해 아는 것도 많았다. 심씨는 "아버지가 처음에는 북한의 간첩 교육을 받기를 거부하다가, 내가 북파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내려오셨다"며 "나를 살리려고 오셨다가 일을 당하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 소식이 끊어지자 심씨는 어릴 때 집에 자주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던 아버지 동료들을 찾아나섰다. 한 사람은 심씨에게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면서 "너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심씨는 "그분은 북파된 아버지가 작전을 수행하면서 부대에 쳤던 무전까지 알려주셨다"며 "나중에 정부 기록을 확인해보니 거의 맞았다"고 했다. 심씨는 강원도 방첩부대 동지회 등을 찾아다니며 아버지를 알 만한 사람들을 만나 관련 사실을 하나둘씩 모았다.

아들 심씨가 아버지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군 당국은 2006년 심씨에게 아버지 사형 판결문을 줬다. 심씨는 판결문을 바탕으로 추적해 아버지가 1961년 사형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하지만 국군정보사령부는 아버지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를 번번이 기각했다.

심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찾아가 아버지 사형 판결문과 사형 집행 기록,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모아 제출했다. 위원회는 2009년 9월 육군첩보부대(HID)가 사건을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재심을 권고했다.

심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다음 아버지 유해를 찾는 것이 남은 숙제"라며 "나라를 위해 생사를 넘나든 사람에게 정부가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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