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영웅숭배에 시달리는 싸이

듀나 2012. 9. 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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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 이 와중에 정신이 멀쩡하다니..- < 강남스타일 > 을 가장 재미없게 갖고 노는 나라

[엔터미디어=듀나의 TV낙서판] 지금 싸이가 나오는 텔레비전 CF가 몇 개나 되던가? 아무리 적어도 세 개는 넘는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 같다.

그런데 여러분은 싸이가 나오는 CF가 무엇을 광고하고 있는지 아는가?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는데, 그가 나오는 CF들을 구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광고에서 싸이는 말춤을 추면서 < 강남스타일 > 을 부르고, 그게 그의 역할의 전부이다. 각 광고를 차별화하는 것은 싸이가 아니라 같이 나오는 다른 연예인들이다. 다시 말해, 이 광고에서 싸이의 역할은 길거리 가판대에서 호객용으로 틀어놓은 유행가 테이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세계적인 스타가 된 연예인이 늘어진 뽕짝 테이프와 동격인 것이다.

이게 광고 효과가 있을까?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그냥 돈 낭비 같다. 싸이의 < 강남스타일 > 공연과 뮤직 비디오는 재미있지만, 광고는 아니다. 척 봐도 졸속 티가 나고 아이디어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이것은 제품을 파는 광고보다는 전세계적인 히트를 쳐 '국위선양'을 한 연예인에게 바치는 조공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광고로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마 싸이의 지갑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싸이도 이 작업들을 그리 즐겼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싸이와 < 강남스타일 > 을 가장 재미없게 가지고 노는 것이 우리나라라는 생각 말이다. 심지어 나는 기대했던 < 무도 > 의 패러디도 생각보다는 별로였던 것 같다. 아마 멤버 둘이 오리지널 뮤직 비디오에 나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 강남스타일 > 을 가장 재미있고 신나게 가지고 노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에 있다. 그리고 우린 오히려 그들을 보며 어리둥절하며 놀라는 경우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우린 [강남스타일]의 가사를 시치미 뚝 떼고 명시처럼 소개할 생각 따위는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엄청난 아이디어도 아닌데 말이다.

대신 우리는 다른 뉴스를 듣는다. 외교 통상부가 싸이에게 '독도 스타일'을 부탁하려 했다는 뉴스는 시작이었다. 얼마 전에는 대권 도전을 한다는 정치인 두 명이 말춤을 췄다. 한 명은 "청년들에게 미안해서 눈물 닦고 말춤 췄다"라는 변명을 늘어놓았고, 다른 한 명은 베드로처럼 아버지의 죄를 억지로 사과한 바로 그 날 오후에 말춤을 선보이는 기가 막히는 타이밍을 선보였다. 이런 뉴스들은 어이없게 웃기긴 했지만 재미있지는 않았고 언뜻언뜻 불쾌했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싸이라는 딴따라가 만들어낸 이 단순명쾌한 놀이를 즐길 생각은 없어 보였고, 심지어 그것이 어떤 종류의 즐거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싸이 역시 엉뚱한 영웅숭배에 시달린다. 어떤 매체에서는 한류 스타들이 '싸이의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는 훈시를 한다. 순식간에 그는 전세계를 정복하려는 한국 연예인들의 유일한 모범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를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물론 그와 비교해서 덜 성공적인 사람들이 비교대상이 되며 죽도록 까이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싸이의 지금 성공이 유튜브와 SNS 시대에서라면 어디에서건 벌어질 수 있는 특이한 이상현상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 소동 중에서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건 싸이 자신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얼마 전에 그가 가진 귀국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떴다고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은 그를 '동방예의지국의 겸양의 모범'이나 '한류의 영웅'으로 보는 무리들과는 달리, 그가 자신의 위치와 이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아마 그는 옳은 방향으로 갈 것이다. 하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겠지.

우스꽝스럽고 단순한 춤과 그에 어울리는 신나는 노래. 그리고 그런 것들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신기한 인터넷 세상. 그게 < 강남 스타일 > 현상의 전부이다. 그렇다면 우린 여기에 대한 엄청난 기대나 과대평가 없이 신나게 즐기면 되는 거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은 모양. 얼마 전에 영화감독 김종관이 날린 트윗이 떠오른다. 그는 공원에서 넥타이를 맨 양복쟁이 아저씨들이 모여 강남스타일 말춤을 연습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컴컴한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윗사람들이 시킨 것 같더란다. 그들의 민망한 운명에 대해서는 각자 알아서 상상하기로 하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YG엔터테인먼트, 빌보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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