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40일간 여행 도전

이도은 2012. 6. 30. 01: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 미국 대륙 횡단하냐고? ..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하니까

"무슨 생각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도하려 이 교수에게 물었다. 여기에 1초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대답. "아이유요." [박종근 기자]

여행은 때로 떠나는 것 자체로 목적이 달성된다. 그곳이 어디가 됐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미지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채워준다면 효용 가치는 충분하다. 그래서 여행자에게 '왜 짐을 싸는지' 묻는 건 우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여행은 궁금했다. 어깨 윗부분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몸으로 40일간 미국 대륙을 횡단하겠다니. 얘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물음표가 여러 개 그려졌다. 처음엔 '어떻게'라는 물음으로, 그 다음엔 '왜'라는 질문으로.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50) 교수. 여행 출발을 일주일 앞둔 20일, 그를 만났다.

 고백건대 그가 중증 장애인이라는 걸 직접 보고 나서야 실감했다. 그에 대한 기사를 꽤 많이 접해 왔는데도 그랬다. 2006년 7월 2일, 이 교수는 캘리포니아 공과대(이하 칼텍)와 서울대가 공동으로 미국에서 진행한 지질 야외조사의 마지막 코스인 데스밸리(Death Valley)로 향하던 중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척추 손상으로 어깨 위쪽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전신 마비가 됐다. 하지만 사고 6개월 만에 강단에 다시 섰다. 음성을 글자로 바꿔주는 프로그램과 입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는 기술 덕이었다. 그래서 인터뷰 전 전화로 통화하고 e-메일을 주고받으며 '다름'을 잊었다.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스마트폰 시제품을 테스트 중이었다. 전화기에 컴퓨터를 연결해 손으로 버튼을 누르는 대신 마우스 클릭으로 (스피커폰) 통화를 시도했다.

전용 휠체어에 앉은 이상묵 교수.●불편한 몸으로 해외 여행을 간다니 놀랍다.

 "무슨 소리. 사고 이후 해외 여행, 아니 정확하게 미국을 여섯 번이나 다녀왔다. 물론 이번이 가장 긴 일정이긴 하다."

●어떻게 마음먹게 됐나.

 "사실 지금 상황에서 갈 수 있는 나라가 미국밖에 없다. 캘리포니아 같은 곳은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깜박할 정도로 모든 시설이 편리하다. 그런데도 미국에 갈 때마다 자동차가 문제였다. 휠체어 무게만 200㎏인데 이걸 실어 나를 차가 없는 거다. 장애인용 차량 렌털은 영세업자가 운영하니 보험이나 뭐나 복잡하고 비싼 게 많다. 그런데 지난 2월 미국에 갔다 차를 하나 봐뒀다. 아예 계약금을 걸고 왔다. 이번에 그 차를 인수받아서 여행을 시작한다. 이동 문제가 자유로우니 쌓아놨던 일들을 다 해보자는 거다."

●어떤 차인가.

 "도요타 시에나다. 장애인 차량으로 개조가 된다. 아쉽게도 국내 차엔 이런 차종이 없다. 개조된 크라이슬러 차도 본 적이 있는데 한국사람한테 팔면 코리아법인과의 계약으로 벌금을 문다고 하더라."

●IT 다음으로 자동차가 장애를 극복하는 도구가 됐다.

 "일반 차량을 내리고 탈 때마다 주변사람들이 너무 고생을 한다. 그러면 위축돼 외출을 꺼리게 된다. 개조할 차는 버튼만 누르면 전동으로 오르고 내릴 수 있다. 또 지금까지는 휠체어가 높아서 창문 바깥으로 지나가는 여자 다리밖에 안 보였다.(웃음) 근데 미국 여행을 바닥만 보고 갈 일 있나. 이걸 타면 일반 운전자 눈높이와 같아진다."

●차만 있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닐 텐데.

 "저와 함께 사시는 생활보조인 두 분이 동행한다. 노트북과 휴대전화만 있으면 보통 여행 짐 말고 따로 더 필요한 건 없다."

 그는 여행 일정을 묻자 컴퓨터 모니터를 눈으로 가리켰다. 구글 지도에 루트가 그려져 있고 지점마다 시간별 일정이 들어 있었다. 27일 한국을 떠나 LA에 도착, 캘리포니아 시애틀·오리건을 거쳐 보스턴에서 끝나는 40일간의 장도(長道)였다. 중간중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스케줄도 있었다. 'LA에 도착. 수전 폴리스(Susan Polis) 면담' 등이 그랬다. "이분은 TV 제작자다. 지난해 LA에 갔을 때 지인 소개로 만났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에 내 얘기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출연자 4명 중 하나인데 지난해 12월에 촬영을 마쳤다." 이 프로그램은 올가을 PBS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일정이 빡빡하다.

 "미뤄뒀던 일을 한꺼번에 하려니 그렇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구글 본사에 가서 라만 박사도 만나고 개발 중인 '혼자 가는 자동차'를 보고 올 예정이다. 오리건대·워싱턴대에서 전공 분야 세미나도 있다. MS와 아마존 본사에도 간다. 그들에게 한글 음성인식 프로그램과 전자책 킨들에 대해 장애인 사용자로서 조언할 예정이다. 또 장애인 정보화나 재활과학기술과 관련해 위스콘신대·시카고 RIC·피츠버그대·퍼듀대를 방문한다. 마지막 열흘은 전국에서 선발한 중증 장애인 학생 8명과 함께 워싱턴·뉴욕·보스턴을 둘러본다."

●공적 일정만 있는 건가.

 "몬태나에서 사냥을 할 계획이다. 나와 똑같은 한국계 장애인 친구가 그곳에 산다. 그는 목 아래를 모두 쓸 수 없지만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한다. 입에 마우스를 달아서 후 불면 총알이 나가는 방식이다. 이번에 오면 꼭 같이 하자고 하더라. 장애인일수록 아웃도어 활동을 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냥은 총기 허가 나기가 좀 힘드니까 철판을 깐 보트 위에서 낚시를 해보려 한다. 아, 또 하나 기대되는 이벤트가 있다. 현지에 사는 동료 과학자의 경비행기를 타고 옐로스톤을 상공에서 구경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은 따로 있다. 정확히 6년 전, 7월 2일 사고가 났던 캘리포니아 사막을 다시 가는 일이다.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함께 탔던 제자 이모(여·당시 24세)씨가 현장에서 숨졌다. 제자의 죽음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유가족의 얘기를 후에 전해 듣고 더욱 그랬다. 이씨의 쌍둥이 언니는 동생이 이 교수의 수업을 듣고 와선 늘 흥분했고 바다탐사 해양 연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매년 7월 2일 이 교수는 제자가 묻힌 인천가족공원을 찾아갔다.

⑥년 만에 현장을 찾는 의미가 있나.

 "모든 일이 끝났기 때문에 가보고 싶었다. 당시 내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한 캘리포니아 공과대와의 소송 문제가 마무리됐다. 이양 가족 분들도 학교 측으로부터 보상을 받았고 내 문제도 잘 풀렸고. 지난해 12월엔 포드자동차와 자동차를 개조한 퀴글리모터로부터 각각 278만 달러(약 30억원)와 77만5000달러(약 8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지금까지 친구들을 만나도 함부로 얘길 못했다. 한번은 상대 쪽 변호사가 한국에서 와서 아내에게 '남편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더란다. 집사람이 '상당히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더니 그걸 잘못에 대한 시인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내가 사고 현장에 가는 것 자체가 오해를 미칠까봐 지금껏 못 갔다. 그런데 조심스럽다. 유가족들은 상처를 묻고 사는데 이런 기사가 나오면 또다시 문제가 될까봐."

●그래도 한 번에 다 소화하기에 무리가 아닌가.

 "이번 여행의 컨셉트가 뭔지 아나. '나우 오어 네버(now or never)'다. 지금 바쁘고 할 일도 많다. 사고를 당해보니까 뭐든 기약이 없더라. 가족한테 뭘 해주겠다, 이런 것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대답을 마무리하려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고 전에는 이렇게 갑자기 내 인생에 플러그가 뽑힐 줄 몰랐다. 난 남들이 안 하는 것(연구)을 하고 착하게 사니까 하늘과 내가 합의를 한 줄 알았다. 난 과학을 하니 넌 날 지원해줘, 뭐 이렇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오라는 지시를 받으니까 어이가 없더라. 음, 사랑도 그렇지 않나. 끝까지 갈 거라 생각하지만 보장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있을 때 질러라' 이렇게 많이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가족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가족은 따로 살고 있다. 한 5년 전부터 난 활동보조인과 함께 산다. 다친 뒤에 나는 새로 받은 인생으로 뭘 해야 하는데 가족들은 나를 아낀다는 이유로 자꾸 말렸다. 부모님한테는 자식 출가했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이 곁에 있었다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다. 교회를 안 다니지만 하나님께 감사한 건 가족한테 짐이 안 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다친 점이다."

 이번 여행은 KBS 다큐프로그램인 '일요스페셜'로 제작되는 것은 물론 트위터(@sang_mook)와 홈페이지(qolt.snu.ac.kr)를 통해 시시각각 공개될 예정이다. 미리 일정을 알리는 이유는 현지에서도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이유는 또 있다. "사실 장애인들이 부족한 게 정보다. 심지어 수입산 장애인 장비를 사더라도 뭐가 있는 줄 모른다. 어려운 일엔 세상 어디든 솔루션이 있기 마련인데 그 자체를 모르는 거다. IT 덕에 강의를 하듯 장애인도 여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누가 아나. 앞으로 내가 갔다 온 길이 장애인들의 성지 순례가 될지.(웃음)"

 여행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때문에 인터뷰를 마치며 40일의 긴 여정, 그 다음을 물었다. 그리고 여행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치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게 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다. 그때 나는 1년만 산다면 가족과 부둥켜 안고 돈 다 쓰고 죽을 것이고, 5년만 산다면 9명 보좌관들이 생기니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년만 살 수 있다면 과학자로서 뭔가 의미 있는 걸 연구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로 6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다른 일을 했지만 다 변명이다. 앞으로 20, 30년도 더 살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제 본업으로 돌아가서 소신을 지켜가야 하지 않나 싶다. 내가 지금 인정받는 이유도 단 하나다. 내가 장애인이 됐다고 장애인을 위하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임에도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으로 비쳐졌기 때문일 거다. 과학자의 본업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도은.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박종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jokeparkjy/

6년간 서울생활 탈북女, 北 돌아가자마자…'충격'

일하러 호주 간다던 한국女 성매매 사이트에…

T-50 훈련기 실은 비행기 '금단의 구역' 들어가보니

안철수에 선거 준비 묻자 "그걸 왜 해야 되죠?"

또 먹고 싶은 빵, 알고 보니 초강력 식욕촉진제

정년 7년 남은 50대 교수, 노후준비는 어떻게

승무원 "꽉 잡아, 엎드려" 고함…비행기 지옥으로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