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딱 망한 <존 카터>, 더 끔찍한 건..

듀나 2012. 3. 3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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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카터 > , 흥행 참패를 담보로 얻은 쓰라린 교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앤드루 스탠튼은 지금 많이 억울할 것 같다. 그의 실사영화 데뷔작인 < 존 카터 > 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망작은 아니다. 물론 제작비는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갔다. 애니메이션 전문 감독인 스탠튼이 진짜 배우들을 현장에서 다루면서 통제력을 잃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가 이 영화를 실사 대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로맨스를 강화했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나온 결과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팝콘 무비이다. 평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토마토 지수는 지금 51퍼센트. 여전히 파랑색인 건 맞지만 이 정도면 영화외적인 지원이 있었다면 충분히 빨강으로 넘어설 수 있었던 점수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 트랜스포머 > 속편만큼이나 나쁘지는 않다.

< 존 카터 > 에서 가장 끔찍한 건 영화가 아니라 홍보였다. 우선 < 화성의 공주 > 나 < 화성의 존 카터 > 여야 마땅할 영화의 제목을 < 존 카터 > 라고 붙인 건 엄청난 바보 짓이었다. < 존 카터 > 가 뭔가? 그냥 이름일 뿐이다. < 화성의 공주 > 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존 카터라는 평범한 이름은 독자들에게 친숙함과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이걸 제목으로 쓰면 황당해진다. 열혈 SF 팬이 아닌 대부분 사람들은 이 제목에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다. 아마 닥터 카터가 주인공인 < er > 속편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조금 있을지 모르겠다. 실제로 모 잡지에서는 존 카터라는 이름의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이 영화에 대해 아느냐고 묻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왜 이 영화의 제목이 < 존 카터 > 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이 간다. 이 사람들은 < 화성의 공주 > 나 < 화성의 존 카터 > 에서 어떻게든 '화성'을 빼고 싶었던 모양이다. 예고편만 봐도 영화의 '바숨'이 화성이라는 단서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하긴 이해는 간다. 우리가 아는 화성은 100년 전 버로즈가 상상했던 화성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운하도 없고 고대문명도 없고 화성인도 없다. 이 불일치는 골치아프다.

이는 대부분 SF의 골칫거리이다. 작가들이 아무리 최첨단 지식으로 책을 써도 그 지식은 곧 낡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많은 SF 작가들이 배경으로 삼은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한 번 주변을 보라.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없고 화성에 간 우주인도 없고 생각하는 컴퓨터고 없다. 대신 SF 작가들은 인터넷을 상상하지 못했다. 피장파장이다.

하지만 당시의 과학과 추측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해서 당시의 작품이 빛을 잃는 것은 아니다. 버로스의 화성은 지금 우리가 아는 화성과 전혀 다르면서도 백 년의 시간 동안 고유의 역사와 신화를 쌓아올렸기 때문에 아름답다. 화성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는 것과 화성 신화를 감상하는 것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올림푸스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여전히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왜 버로스의 화성이 같은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가. 왜 그냥 자랑스럽게 존 카터가 간 곳은 화성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차피 영화 보면 다 알게 될 것을.

물론 이것은 팬들의 불평이다. 사실 팬들이 보는 < 존 카터 > 와 일반 관객들이 보는 < 존 카터 > 는 같지 않다. 인터넷 팬돌이들의 왕인 해리 놀즈는 < 존 카터 > 를 보고 방정맞을 정도로 열광적인 리뷰를 썼는데, 정작 댓글들을 보면 그가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독자들은 많이들 이해 못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버로스의 책들을 읽어왔고 심지어 잠시나마 < 존 카터 > 영화화에 참여할 뻔한 사람이, 그럴싸하게 구현된 초록 화성인을 스크린에서 접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물론 일반 관객들이 보는 것은 또 하나의 < 아바타 > 아류작이겠지만.

그렇다면 이 위치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가. 스탠튼은 팬돌이의 순정을 살짝 접고 < 아바타 > 식 액션 영화에 기울어진 영화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사랑받는 원작을 영화화할 때 이 길을 택한다. 하지만 이게 과연 옳은 각색인지 갈수록 의심이 간다. 일반대중을 따르는 것은 얼핏보면 옳은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이미 접한 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하지만 팬들의 비전을 보다 충실하게 따른다면, 영화는 팬들을 만족시키고 일반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보여줄 수가 있다.

나는 여전히 스탠튼의 지금 영화에 만족한다. 하지만 난 스탠튼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영화는 지금 버전보다 원작과 팬들의 비전에 충실한 것이었고,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현실화되고 팬들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의 올바른 지원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 믿는다. 아마 이는 앞으로 사랑받는 원작소설을 각색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존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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