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겨울, 쪽방 ⑤쪽방촌에서 억을 벌다

차지연 2012. 2. 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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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가구 건물 1년 임대수입 1억..부자들의 투기장 '얼굴 없는 건물주' 방세 수금은 관리인이 대리

50가구 건물 1년 임대수입 1억…부자들의 투기장

'얼굴 없는 건물주' 방세 수금은 관리인이 대리

(서울=연합뉴스) 차지연 기자 = "이 사람이 넉달째 방세를 못 내고 있어. 원래 일하던 사람인데 폐병에 걸려서 일을 못 나가고 있다는데…. 나도 돈을 걷어서 주인한테 내는 처지라 그동안은 어떻게 메워줬지만 계속 밀리면 힘들어."

동네 골목에서 마주친 관리인 아주머니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3층의 한 아저씨와 함께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하는 등 도움을 받으려면 한 달은 걸릴 테니 밀린 방세라도 일단 도와줄 수 없겠냐고 동자동 사랑방 사무실에 물어보러 간다고 했다.

쪽방촌에는 건물마다 관리인이 있다.

건물 주인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받으며 방을 관리하고 월세를 징수하는 일종의 '대리인'인 셈이다.

여러 사정으로 월세가 밀리면 이렇게 자신의 돈으로 메워 사정을 봐주고 기다려주는 관리인도 있지만 일주일도 기다려주지 않고 칼같이 쫓아내는 사람도 있다.

관리인이지만 방의 난방 장치가 고장 나거나 수도꼭지가 얼어붙는 등 건물 시설에 문제가 생겨도 이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쪽방 월세를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어서 자비를 들여 무언가를 고쳐주는 것이 그들에게도 똑같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쪽방 건물의 열악한 시설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한다.

내가 만난 쪽방촌 주민 중 건물 주인을 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유모(48)씨는 "10년째 살고 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어. 돈 많은 사람들일 텐데 이 동네 근처에 얼씬거리기나 하겠어?"라고 말했다.

관리인 중에는 주인과 친인척 관계인 사람도 드물지만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이 건물에 오는 일이 없어 아예 얼굴을 모른다는 관리인도 있었다.

수십 개의 쪽방이 빼곡하게 들어찬 건물에서 방마다 선불로 다달이 20여만 원의 월세를 받으면 꽤 큰 수입이 된다.

50여 가구가 사는 쪽방 건물이라면 얼추 계산해도 한 달 집세만 1천만 원이다. 200여만 원 안팎으로 나온다는 전기료와 가스 요금, 각종 관리비를 제해도 700만~800만 원은 넉넉히 떨어진다.

이렇게 1년이면 쪽방 주민은 꿈조차 꾸기 어려운 '1억'에 가까운 돈이 된다.

인근 건물주인과 짜고 방세를 올려받는 등 횡포를 부리는 주인도 있다.

남대문 지역 쪽방촌은 동자동보다 방세가 평균 4만~5만 원 높다. 주인들이 '까칠해서' 이사를 하기도 어렵고 외부인에 대한 경계도 심하다고 한다.

각종 소란이 잦고 시설이 낡아 관리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늘어놓는 주인도 있지만 짭짤한 월세 수입에 재개발 기대 수익까지 있어 쪽방 건물은 인기 있는 편이라고 인근 부동산업자들은 말한다.

한 부동산업자는 쪽방 건물만 200평 이상 가지고 있다는 '아는 형님'과 통화하고 나서 "강남이나 용산 지역 건물 평균 수익률이 3.8~4.0%인데 비해 이 형님의 빌딩은 수익률이 5%에 육박하는 것으로 봐 돈벌이가 짭짤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인근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쪽방이 딸려 있는 건물은 평당 1천500만~3천만 원을 호가한다.

최근에는 월 500만 원의 수입이 나는 방 18개짜리 36평 쪽방 건물을 11억 원에 팔겠다고 내놓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부동산업자들과 쪽방 주민들은 모두 '동자동 쪽방촌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재개발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용산구청에 따르면 이곳은 후암동 특별계획구역에 속해 지구단위 계획 수립 후 주택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이 예정된 지역이다.

쪽방 주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막무가내로 재개발한다면 분신을 해서라도 막겠다'는 이들도 있다.

반대로 건물 주인들에게 재개발은 호재다.

2010년에 한 장관 내정자의 낙마를 불러왔던 쪽방촌 투기도 재개발을 염두에 둔 사례로 볼 수 있다.

인근 부동산업자는 "동자동 쪽방 건물은 워낙 미래가치가 높아서 사람들이 물건을 잘 내놓지 않는다"며 "지금 동자동에 건물을 사놓으면 100%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매매가 자주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3~4개월 전 방 10개짜리 24평 1층 건물을 50대 여성이 6억원에 산 이후로는 거래가 없었다고 부동산업자는 전했다.

수익이 좋은 부동산을 내놓을리 없는 것이다.

쪽방촌에서 억을 버는 사람들. 쪽방촌에는 결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얼굴 없는' 그들에게 이 차가운 쪽방은 뜨거운 투기장이다.

charg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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