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위구르에서는 왜 피바람이 멈추지 않을까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2012. 1. 19. 15: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신장자치구의 카슈가르에 있는 이드 카흐 모스크 앞 광장에 무장 경찰들이 집결해 있다. ⓒ 모종혁 제공

"2009년과 상황이 똑같다. 거리 곳곳에 장갑차가 세워져 있고 기관총을 앞세운 무장 경찰(武警)이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고 있다."

지난 1월2일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서남쪽 끝 카슈가르(喀什)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위구르인 일암 에와르(가명)는 전화 통화에서 현지 소식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매주 금요일 오후 이드 카흐 모스크에서 열리는 주일 예배는 정상적으로 열렸지만, 참가자는 절반에 그쳤다. 광장을 에워싼 군대의 공포 분위기가 그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카슈가르를 대표하는 명물인 일요 바자르도 제때 열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평소와 사뭇 달랐다. 택시 운전기사인 케르무 아즘은 "일상 용품이 거래되는 타크닥 커릇 바자르에서는 기관총을 맨 특수 경찰(特警·SWAT)이 여기저기를 순시하면서 불시 검문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공안(公安)의 그림자를 보기 힘든 우라크(가축 시장), 캐시릭(야시장) 바자르에도 정·사복 경찰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호탄 시 총격 사건을 둘러싸고 진실 공방

새해 벽두부터 중국의 화약고 신장 자치구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12월28일 신장 중부 호탄(和田) 시 부근 피산(皮山) 현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으로 현지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중국 공안은 "일단의 위구르족이 주민 두 명을 납치해 범인 중 일곱 명을 사살하고 네 명을 체포했다"라고 발표했다. 인민일보 자매지인 < 환구시보(環球時報) > 는 '위구르족 청년들이 출동한 공안에게 흉기를 들고 저항해 어쩔 수 없이 조준 사격으로 사살했다. 사망한 청년들은 인도나 파키스탄으로 넘어가 테러 조직에 참여하려던 독립운동 세력이다'라고 보도했다.

테러리스트의 난동에 따른 진압이라는 중국 정부의 주장과 달리 해외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는 '탄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위구르 의회의 딜삿 라싯 대변인은 "최근 지방 정부가 위구르족을 강력히 탄압하고 있다. 여러 명의 주민이 사라지고 종교 활동도 금지해 이를 항의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상반된 주장 아래 진실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지 위구르인은 죽어간 동포에 대한 복수를, 중국 정부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자비 없는 응징을 외치고 있다. 신장에서 이처럼 피바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구르인의 정신적 고향 카슈가르는 오늘날 신장 자치구의 혼돈 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7월 말 카슈가르에서는 폭발 사건과 흉기 살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한족 거주지인 상업보행가(步行街)와 런민시루(人民西路)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14명이 죽고 42명이 부상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동(東)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일으킨 테러라고 발표했다. 중국 공안은 용의자인 위구르인 두 명을 현장에서 검거해 즉결 처형했다.

중국에서 위구르인은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으로 매도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위구르 분리·독립 단체를 '폭력 테러 세력' '민족 분열 세력' '종교 극단 세력'이라는 3대 악으로 규정해 탄압하고 있다. 이와 달리 대다수 위구르인은 극단적인 테러에 반대하거나 분리·독립하는 데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고단한 경제 상황과 억압된 사회 분위기는 위구르인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고향인 신장에서조차 삶의 터전을 잃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족이 상권 장악…위구르인의 불안 커져

한족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카스가르 지역 상권은 전통 시장인 바자르와 황금 상권으로 등장한 상업보행가로 나뉘고 있다. ⓒ 모종혁 제공

카슈가르는 투르크어로 '옥(玉)이 모이는 곳', 즉 상업 교류지를 의미한다. 기원전부터 카슈가르에는 멀리 로마, 터키, 바그다드 등지에서 상인이 와서 문물을 거래했다. 7세기 카슈가르를 찾은 당나라 승려 현장은 < 대당서역기 > 에서 '물이 풍부하고 문물이 넘쳐나는 땅이다'라고 묘사했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과 교류해왔지만, 중국이 신장을 점령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카슈가르 인구의 절대다수는 위구르인을 위시한 투르크계 민족이었다. 지금도 공식 통계상 카슈가르 지구 내 4백10만명 가운데 90%는 위구르인이고 한족은 8%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수치상 허점이 있다. 첫째, 60만의 도시민 중 한족은 40%를 넘고 있다. 10여 년 전 그 비율은 5%에 불과했다. 둘째, 중국 내지에서 온 적지 않은 한족은 정식 거주민으로 등록되지 않았는데, 그 수가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쓰촨(四川) 성 등지에서 온 농민공이다. 셋째, 신장 병단(兵團)의 군인과 직계 가족 20여 만명은 인구 조사에서 제외되었다. 그들 중 절대 다수는 한족으로 도시 외곽에 주로 살고 있다.

한족의 급속한 증가는 카슈가르의 상권을 두 개로 나누었다. 바로 전통 시장인 바자르와 그에 버금가는 황금 상권으로 등장한 상업보행가이다. 상업보행가 내 상점 간판에서는 위구르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온통 한자투성이이고 가게 주인도 모두 한족이다. 상가는 깨끗한 쇼핑 공간을 갖추었고, 상점은 세련된 내부 장식으로 꾸며져 여느 대도시의 상업 거리에 뒤지지 않는다. 쾌적한 쇼핑환경을 갖춘 상업보행가는 연해 지방에서 직수입된 값싼 중국 상품을 고루 갖추고 있어 위구르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상업보행가뿐만 아니라 카슈가르 요지의 상권은 한족이 장악해가고 있다. 한족 사업주는 기업이든 점포든 종업원을 같은 한족으로만 채용한다. 언어 소통상 불편함이 없는 데다 독실한 이슬람교도로서 생활 속에 종교 행위를 하는 위구르인을 고용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가 성장하면서 비즈니스 기회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증가했지만, 그 결실은 모두 외지에서 온 한족들이 차지했다. 지난해 8월 홍콩 명보(明報)는 현지발 르포에서 '위구르인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찾기 힘들고 설사 직장을 구해도 낮은 봉급을 받는다'라고 보도했다. 한 위구르인 청년은 "이런 현실 속에서 누가 부자가 될 수 있고 누가 가난뱅이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밀려오는 한족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소외감은 비단 카슈가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0년 현재 신장의 전체 인구는 2천1백81만명이다. 이 중 위구르인은 1천만명이 조금 넘어 8백74만명인 한족보다 많다. 하지만 1949년 신장 전체 인구의 6.7%에 불과했던 한족은 60년 만에 40%로 급증했다. 신장 내 12개의 소수 민족은 정부 정책에 따라 두 자녀까지 낳을 수 있지만, 중국 내지에서 몰려오는 한족의 증가율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위구르인 분산 이주 노린 촌락 개조 정책

위구르인의 전통 촌락과 가옥이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촌락 개조 정책에 따라 사라지고 있다. ⓒ 모종혁 제공

중국 정부는 위구르의 고유한 생활 환경과 전통 문화도 압살하고 있다. 본래 카슈가르에는 위구르인의 전통 촌락과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오늘날까지 옛 원형을 갖춘 촌락은 세 곳에 달하고 집도 길게는 수백 년 된 연혁을 자랑한다. 가옥은 짚과 흙을 덧쌓아 지었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거주 공간도 넓어 대가족 중심인 위구르인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2004년부터 중국 정부는 전통 가옥이 지진 등 자연재해에 취약하다며 촌락 개조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역 언론은 신식 아파트로 이주해 기뻐하는 위구르인의 모습을 끊임없이 보도하고 있지만, 현지 위구르인의 반응은 냉담하다. 2009년 6월 카슈가르에서 만난 베린마르트는 "살던 집의 피해 보상액은 쥐꼬리만 한데 새 아파트 입주 비용은 그 2~3배에 달한다. 거주 면적도 절반 이상 줄어드는 데다 빚을 얻어 이주하는 형편이라 주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라고 말했다.

스위스 국제 관계·안보 네트워크(ISN)는 "중국 정부가 이주할 아파트를 현 거주지에서 8~9㎞ 떨어진 곳에 마련해 분산 이주시켜 위구르인의 전통문화를 희석시키고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자 한다"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18일 호탄에서 발생한 유혈 사건도 호탄 시 정부가 위구르인 촌락을 무단 점거하고 개조하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100여 명의 위구르인들은 삶의 터전을 침탈당한 데 격분해 시위를 벌였다. 중국 공안의 강압적인 진압으로 시위는 파국으로 끝나 18명의 희생자를 냈다.

2009년 7월 1백97명이 숨지고 1천7백여 명의 부상자를 낸 우루무치 유혈 사건도 진실 규명을 바라는 위구르인의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같은 해 6월 광둥(廣東) 성 샤오관(韶關)의 한 공장에서 위구르인이 한족 여성 두 명을 강간했다는 헛소문에 한족 노동자들은 위구르인 두 명을 죽이고 수십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사건이 발생한 뒤 중국 정부는 위구르 분리 독립 세력이 일으킨 난동이라며 조기 매듭에만 급급했다. 결국 진실을 왜곡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분노와 희생자에 대한 동정심은 위구르인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고, 대규모 유혈 사태라는 참극으로 끝났다.

중국 정부의 주장처럼 극단적 분리·독립 세력의 활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천만 위구르인 중 분리·독립을 동조하고 추진하려는 이들은 극소수이다. 대다수 위구르인은 이슬람교를 믿고 순박하게 살아간다. 이런 위구르의 마음을 중국 정부는 제대로 보듬어 주지 못하고 있다. 신장은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 중국 1위, 석탄과 철광석 매장량 중국 2위 등 막대한 부존자원을 지니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경제·군사적 전략 요충지로서의 가치도 커져가고 있다. 중국이 절대 놓치기 힘든 매력적인 옥토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위구르인의 경제·사회적 소외와 박탈이 치유되지 못하는 한, 신장은 영원한 분쟁의 화약고로 중국의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