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용돈 50만원 벌려다 1억원 물어낼 판

석남준 기자 2011. 11. 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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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대여했다 날벼락.. 전세 사기에 이용돼 수많은 피해자들 낳아, 법원 "배상책임 있다"

공인중개사 임모(53)씨는 2009년 11월 자신의 부동산중개업소 등록증을 신모(30)씨에게 빌려줬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업계 관행으로 여기고 수수료를 받고 빌려줬던 것. 신씨는 임씨의 부동산중개업소 등록증을 전세사기에 이용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피해자 장모(38)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등록증을 빌려준 임씨에게 3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임씨는 "사기에 이용될지 꿈에도 몰랐다"면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전세 사기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임씨처럼 공인중개사 면허나 등록증을 빌려준 공인중개사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용돈'을 벌려던 공인중개사가 수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월 50만원을 받고 빌려준 공인중개사 정모(50)씨의 면허도 전세 사기에 이용됐다. 지난 11일 서울 중앙지법은 정씨에게 1억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대여하였고, 자신의 명의가 이용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계약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사기에 이용된 점을 확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월 50만원을 탐내다 결국 1억원이 넘는 돈을 물어주게 되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나 사무소 등록증을 대여하는 행위는 부동산업계의 오랜 관행이었다. 서울시가 지난 상반기 동안 공인중개사 면허·중개사무소 등록증을 대여하거나 공인중개사를 고용해 중개업을 하는 무자격자 등을 단속한 결과 전체 3364개 중개업소 가운데 337개소에서 문제점이 적발됐다. 열 곳 중 한 곳이 불법 업소였다. 지난 2008년부터 계산할 경우 불법 중개업소를 운영하다 적발된 건수는 3169건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매달 50만~60만원을 벌기 위해 자격증이나 등록증을 대여하는 공인중개사가 많다"며 "시청에서 단속을 하긴 하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뿌리뽑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국토해양부 등 정부 당국은 전세 사기가 잇따르자 공인중개사의 신분증과 자격증·등록증을 대조하고, 집주인의 부동산세금 납부영수증과 등기권리증 등을 확인하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전세난과 맞물려 전세를 구하려는 이들이 당국의 당부대로 일일이 따져볼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다. 귀한 전세 매물을 확보하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전세 사기범들은 일관되게 "매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격증 대여 관행은 전세대란과 맞물리며 부동산 범죄의 지능화를 불러왔다. 지난해 8월 서울 역삼동에 2억7000만원짜리 아파트 전세를 얻은 이모씨는 석 달 뒤 집주인으로부터 월세가 밀렸으니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석 달 전 전세 계약을 체결했던 최모(33)씨는 집주인이 아니라 이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월세 살던 세입자였던 것. 최씨는 집주인의 신분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이씨와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이뿐만 아니라 최씨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빌려 부동산중개업소까지 차려 놓고 공범을 공인중개사로 위장시켰다. 위조한 신분증으로 은행 계좌를 만드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씨는 가짜 주인과 가짜 공인중개사에 속아 전세금을 송금할 수밖에 없었다. 최씨 일당에게 같은 수법으로 당한 피해자만 20여명, 피해액은 30억원에 달했다.

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시민들의 주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개업자들이 자격증이나 등록증을 대여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며 "전세 사기는 세입자들뿐 아니라 공인중개사들에게도 큰 피해가 온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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