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애국지사의 '쓸쓸한 영결식'

2011. 11. 12.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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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호 선생 별세… 정부 쥐꼬리 지원금만"평생 국가위해 사신 분인데" 곳곳 한숨·울분

가을비가 흩날리는 11일 오전 옛 서대문형무소 앞 독립문 광장에서 한 애국지사의 영결식이 열렸다.

영정 사진 속 주인공은 8일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난 고 이병호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이 선생은 일제 강점 말기인 1944년 당시 근무하던 조선상업은행에서 민족주의조선독립사회노동당을 결성, 중국에 독립자금을 전달하려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항일 독립투사다. 그러나 정부의 푸대접에 유가족과 독립유공자들은 영결식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선생 장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병원 측이 정산한 장례비는 1,000만원. 조문객들이 낸 조의금 512만원을 제외한 488만원은 고스란히 유족 부담이었다. 보다 못해 협회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탄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빈소를 찾은 비서관이 내놓은 것은 부조금 10만원에 대통령 이름이 적힌 화환 하나였다.

강석현 부회장은 "평생 나라를 위해 사신 선생에게 보훈처는 장례지원비 50만원, 사망위로금 150만원만 주고는 할 일 다했다는 식이다"며 "오늘 새벽 이 선생의 큰 며느리가 지인을 통해 잔금을 겨우 마련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결식 또한 정부가 아닌 서대문구청에서 지원 받아 진행했다. 이 선생이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현재까지 생존한 세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을 떠나 보내는 김숙희(77)씨의 표정도 내내 어두웠다. 평소 정부에서 나오던 연금 240만원이 남편 사망 이후엔 절반으로 줄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세 아들 중 둘은 사고로 몸을 다쳐 경제활동이 어렵고, 다른 아들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은 상태다. 이 선생 부부를 부양해온 큰 며느리 구묘정(52)씨는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지 막막하다. 친일파 자식들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독립운동가 가족들은 언제까지 이리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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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기자 ddackue@hk.co.kr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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