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반미 공격받던 참여정부 '장밋빛 환상'FTA 통과땐 우리 경제 '정글자본주의' 될 것"

2011. 11. 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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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참여정부때 정책수석 지낸 이정우 교수 인터뷰

그나마 성과라던 자동차분야

재협상으로 얻을 것 없어져

투자자-국가소송제 등으로

한국의 정책·제도 변경 압박

미국식 시장주의로 바뀔 것

강행 처리하면 역사의 죄인

시민의 힘으로 막아내자

정부와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추진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 때 체결됐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등이 지상파 방송에 광고를 내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에프티에이,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스로 "정치적 지지층이 등을 돌리게 한 선택"이라고 말했을 만큼 진보개혁진영으로부터 성토를 당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시작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당시 불경기와 저성장이 오래 지속됐고,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반미라고 공격했기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안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등과 함께 반대했지만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장밋빛 환상이 지배했고 미국 경제 체질의 병폐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문제점을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어 대통령을 설득할 만한 논리로 무장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미국식 시장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도 상황의 변화를 인정했다. 2008년 11월 한나라당이 협정 비준안을 처리하려 하자, 대통령 자신이 운영하던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에 협정 체결 뒤 금융위기가 발생해 비준보다는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글을 두 차례 올린 것이다. 이 교수는 "그나마 성과라던 자동차 분야를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하면서 아무리 주판알을 튕겨봐도 강대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는 허세 말고는 얻을 게 없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5년 뒤에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자동차가 수출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 관세 인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별로 살펴봐도 농업·축산업·제약업에서 입을 피해는 명백하지만 조선·철강·반도체 등 주요 수출품은 이미 무관세를 적용받아 관세 철폐 효과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섬유는 잠재적 수출 효과가 큰 분야로 꼽히지만 '원산지 규정'이라는 비관세 보호 장벽에 막혀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정책 주권을 위협하는 몇 가지 독소조항이다. 이 교수는 미국이 네거티브 리스트와 역진 방지 장치, 미래 최혜국,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등을 지렛대로 해서 한국의 정책·제도 변경을 요구할 것이며, 우리의 경제 체질이 미국식 시장주의로 바뀔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송에 휘말리고 책임지기를 꺼리는 우리나라 관료들은 앞으로 사회적 약자, 중소기업 보호 정책을 줄일 것이고, 모든 정책·제도가 미국식 정글자본주의로 바뀌어 강자가 판치는 1% 대 99%의 사회가 될 것이다."

한-미 협정은 개방의 폭이 계속 넓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열거하고 나머지는 다 개방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해 개방의 폭이 넓고 새로 생기는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역진 방지 장치란 개방 확대는 가능하지만 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고, 미래 최혜국이란 장차 한국이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시장을 추가 개방하면 자동적으로 이를 미국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소송의 3분의 1에 미국이 관여하고 있을 만큼 미국 중심의 제도다.

이 교수는 "을사늑약을 맺은 이완용도 강대국인 일본에 기대어 급속히 발전하겠다고, 그것이 국익이라고 불평등조약에 도장을 찍었을 것"이라며 "국회가 한-미 협정을 강행처리한다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협정 발효 뒤 재협상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실효성이 없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도 결국 민초들이 의병운동, 독립운동을 펼쳐 나라를 지켜낼 수밖에 없었다"며 시민의 힘으로 막아내자고 제안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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