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해!"가 아니라 "넌 할 수 있어!"

2011. 11. 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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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를 우등생으로 만든 '엄마표 공부법'

[한겨레]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부부는 맞벌이를 했다. 흔한 학습지 하나 보게 할 여유가 없었다.

"엄마, 애들이 나보고 바보라 그래."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어느 날, 직장에서 지쳐 돌아온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 어쩔 수 없이 방치했다. 그때는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받던 아들은 지금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공부스타'로 이름을 알리는 고교생이 됐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와 전국학부모지원센터가 공모한 <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자녀 교육하기/공부하기 > 수기 당선작 가운데 우수상을 받은 김민숙씨의 이야기다. '바보' 소리를 듣던 아들이 어떻게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을까? 지난 10월19일 저녁 김씨와 아들 심재웅(인천 부흥고 2)군을 만나 궁금증을 풀어봤다.

"어리바리하다" 놀림받던 아들

"주중에는 개념 위주의 공부를 해요. 그날 배운 것들을 웬만하면 다 이해하고 가죠. 주말에는 문제풀이를 하면서 문제 유형 감각을 익힙니다."

심재웅군이 한 주 공부 계획을 적은 메모장을 펼치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꼼꼼하게 적혀 있는 메모가 심군의 계획성 있는 공부 습관을 그대로 말해줬다. 시험성적 40점을 넘어보지 못했던 심군한테 변화가 찾아온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깨달음은 심군이 아닌 엄마한테 먼저 찾아왔다.

"'엄마, 내가 어리바리해?' 그렇게 묻더군요. 아이가 기죽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까 속상했어요. 뭔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죠. 근데 먹고살기 바쁘니까 공부에는 신경을 못 써주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친구들한테 놀림받고 온 이야기를 들으니 더 미뤄선 안 되겠더군요."

그날부터 엄마는 공부를 시작했다. 아들한테 맞는 학원을 알아보는 대신 5학년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출퇴근 때 전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활용했다. 귀가 뒤 8시부터 10시까지는 시간을 정해놓고 아들과 함께 공부했다. 20년 만에 다시 펼쳐보는 교과서와 문제집이 쉽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거기다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던 아들은 산만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이해했다.

"지금까지 공부라는 거 자체를 해본 적 없는 아이였어요. 단 5분을 버티지 못하고 핑계를 대면서 산만하게 굴었죠. 뭐라고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줬습니다. 그동안 방치한 것도 부모 책임이고, 아이가 공부와 친해지지 못하고 산만하게 구는 것도 아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5학년 문제집 사서 공부한 엄마

웬만하면 포기하고 학원 등록을 했을 법도 하지만 엄마한테는 뚝심이 있었다. 아들의 공부 수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안목도 있었다. 김씨는 "주변에서 학원 수업은 '수박 겉핥기'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솔직히 그런 데 보낼 환경도 아니었다"며 "무엇보다 재웅이처럼 공부의 기초가 없는 아이들한테는 학원이 안 맞을 것 같았다"고 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며 뭔가를 새로 알아와요. 하지만 재웅이처럼 공부 자체를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은 학원에 가도 못 따라갈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수준에 맞춰서 부모가 기틀을 잡아주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게 '자기주도학습'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공부가 학교의 영역이면서 가정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재웅이한테는 아무것도 해주질 못한 상태였고, 그래서 시작을 해본 겁니다."

'엄마표 공부'의 원칙은 '오래 걸리더라도 함께 반복해 공부하기'였다. 급할 것 없었다. 당장 성적을 올리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공부의 기초를 다지는 게 목표였다. 가르침에 임하는 엄마부터 조급함을 버렸다. 암기과목은 진도에 맞춰 차분하게 외웠다. 과학처럼 원리 이해가 필요한 과목은 실험도구를 사와 직접 실험도 해봤다. 심군은 "엄마한테 '이거 아는 건데 또 얘기해?' 소리를 정말 많이 했다"고 했다. 그만큼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했는가를 확인했다는 의미다.

칭찬·격려·용기의 교육관이 힘!

엄마는 아들 내면에 공부 잠재력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재웅이 안에 잠재된 공부에 대한 욕심과 재능을 발견하고 끌어내 주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성적이 턱없이 낮았지만 책상 앞에 꽤 이상적인 목표를 적어보자고 권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금도 심군의 책상 앞에는 목표가 붙어 있다. 대학 진학을 어디로 할 것인지를 적은 '큰 목표', 다가오는 기말고사에서 몇 등을 할 것인지를 적은 '작은 목표', 한 달 동안 과목별 진도를 얼마나 나갈 것인지를 적은 '한달 목표'다. 이렇게 목표를 책상 앞에 붙여두는 습관은 엄마와 공부를 시작했던 5학년 때부터 들여둔 것이다.

공부에 대한 동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긍정과 칭찬, 격려, 용기도 필요했다. 심군은 "엄마가 항상 '너는 잘될 거야. 네가 아니면 누가 하니' 등의 긍정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며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김씨는 "내 철학은 공부를 못한다고 기죽이기보다는 용기와 희망, 격려를 해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한번은 짝꿍이랑 재웅이랑 똑같이 60점을 맞아온 적이 있었어요. 저는 열심히 했다고 말했는데 재웅이가 그러는 거예요. 짝꿍은 '우리 살아서 돌아오자!'고 했다더군요.(웃음)"

엄마의 칭찬 릴레이는 집 밖에서도 이어졌다. 엄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변 사람들한테 "우리 재웅이 칭찬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이 과정을 "재웅이 안에서 '공부욕심'을 끌어내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5학년 2학기 엄마와 공부한 지 한 학기 만에 심군은 중간고사에서 5등을 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전교 1등을 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성적은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아이들한테 첫 도약의 경험은 소중하다. 심군은 꼴찌도 해봤고, 일등도 해보면서 열심히 해서 잘하는 게 왜 즐거운지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엄마랑 같이 공부하면서 내 옆에는 항상 엄마라는 멘토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지냈어요. 덕분에 고교에 와서 혼자 공부를 하더라도 공부가 두렵거나 힘들다는 느낌보다는 편안하다는 느낌이 있었죠."

'못하는 아이' 낙인찍지 말아야

고교에 올라온 뒤 엄마의 구실은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멘토를 찾아 심군한테 소개해주느라 바쁘다. 김씨는 "주변에 성실하게 살거나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들한테 '재웅이한테 좋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한다"고 밝혔다.

"엄마의 조언은 워낙 많이 들었잖아요. 좀더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줄 만한 멘토가 필요하죠."

김씨는 부모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공부를 스스로 즐겁게 잘하게 된 아들 덕분에 주변에서 충고나 조언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김씨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웅이한테 긍정적인 주문을 외워준 영향이 가장 크다"고 했다.

"저처럼 모든 부모가 함께 공부를 할 수는 없겠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엄마부터 믿음을 갖는 겁니다. 아이를 누르는 말보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말을 많이 해주세요. "우리 애는 어차피 안 돼" 소리를 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재웅이도 안 해서 못하는 게 아니고, 원래 못해서 못하는 아이로 남았을 겁니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지 말고 일단 아이의 멘토가 돼주세요. 그리고 동기부여를 해줄 요소를 잘 찾아서 용기를 주세요. 그럼 아이 안에 있는 공부욕심이 드러나는 때가 올 겁니다."

글·사진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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