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화백 "민주화가 교육까지 미쳐야 한다"

2011. 10. 1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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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인 박재동 화백이 교육에 따끔한 충고를 했다. "학교가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한 그는 "아이들은 사람이 안됐다는 이유로 강제하고 벌을 준다, 민주화가 교육에까지 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화백은 16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에서 강연했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산민주항쟁 32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것이다. 박 화백은 교육과 관련한 견해를 피력한 뒤,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있는 박재동 화백.

ⓒ 윤성효

"요즘 국민이 주인이라는데, 교육에 있어서는 학생이 주인은 아니다. 교사와 대학이 주인인 데서 벗어나서 학생이 주체가 되는 게 이 시대의 민주화이고 교육개혁이다. 지금처럼 아이들은 아직 인간이 못 됐으니까 사람으로 만들어 줄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을 같은 인격자로 대해 주어야 하고, 교육의 주체로 되어 기획하고 발언하고 참여해야 한다." 박 화백은 학생인권을 강조하면서 한 상담 교사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남자 중학생이 손톱을 굉장히 길렀다고 한다. 누가 봐도 눈에 띄었다. 상담 선생이 그 손톱을 보고 '손이 참 이쁘다'고 했다. 그 다음 날 그 학생은 손톱을 깎고 왔다. 그 학생은 어디에 내세울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고, 하나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손톱을 길렀던 것이고, 인정을 받고 난 뒤에 깎았다. 누구나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이 안 되니까 괴롭고, 죽기도 한다. 그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왜 손톱을 그리느냐'고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 화백은 "제가 생각하는 권리는 아이들도 선생을 가르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옛날에는 문맹률이 85%였다. 선생은 글자를 가르쳐 주기에 절대적 권리였다. 지금 아이들은 엄청나게 안다. 컴퓨터 쓰기나 공룡, 바둑, 피아노 등 어른들이 아이들한테서 배울 게 많다"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로 가야 한다. 일방적인 관계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요즘 학교에서 자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아이들은 착하다. 유럽에서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 아예 오지 않는다. 우리는 다 온다. 우리 교육은 미래가 있다. 아이들은 인내심을 갖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있다. 어른보고 그 시간 동안 학교에만 있으라고 하면 아마도 도망가거나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선생들은 다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교사가 됐다. 선생들은 공부 잘하는 심정은 아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에서 '박재동 화백과의 대화' 행사를 가졌다.

ⓒ 윤성효

'몰두(입)할 권리'도 강조했다. 박 화백은 "몰입하게 되면 다른 생각을 안 한다. 몰두하면 나중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어떤 일에 사명감을 전해주는 사람은 그 희열의 맛을 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도 어릴 때는 노는 것에 몰입한다. 몰입은 평가와 관계없이 재미로 해야 하는데, 몰입할 수 있는 아이들의 권리가 없다"면서 "몰입할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했을 때 제일 기쁜 거, 후회하지 않는 거, 잘할 수 있는 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거, 그런 것이 무엇인가, 그런 것을 찾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방황할 권리도 있다는 것. 박 화백은 "아이들은 이것저것 해보고 방황도 해봐야 한다. 그런 것을 통해서 자기를 찾을 수 있다. 방황하지 않고 어떻게 자기 것을 찾을 수 있나. 실패할 권리도 있다"고 말했다.

중학교 졸업하던 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실패'를 떠올렸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1년간 서면에 있는 학원에 다녔다. 간혹 용두산 공원에 와서 낮잠을 잤다. 그러면서 만화를 그렸다. 그때 114쪽 만화를 그렸는데, 나중에는 만화를 그리는 게 '노가다'더라. 실패했을 때 너무 좋은 기회가 왔던 것"이라며 과거를 떠올렸다.

아이들은 실수하고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 그는 아이를 낳았던 여고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고생이 아이를 뱄는데 낳아 키울 곳이 없었다. 그 여고생은 아이를 키우고 싶었고, 학교 창고 구석에서 아이를 키웠다. 친구들이 도와주었고, 친구들은 아이 보는 게 즐거움이었다. 어른들은 여고생이 아이를 낳으면 부끄럽다며 떼어내어 버리려고 한다. 실수를 배려로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데 말이다. 만약에 그 아이를 학교에서 키웠더라면, 그 아이는 많은 이모가 있고, 선생들은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 것이다. 학교에 생기가 돌게 된다. 아이를 낳은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면 아버지도, 친할머니도 나타날 것이다. 만약 부끄럽다고 떼어내 버린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 고통 속에 자랄 것이고, 급기야 그 고통을 나만 가질 수 없다며 다르게 나갈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있는 박재동 화백은 16일 부산 민주공원에서 강연했다.

ⓒ 윤성효

아이들은 서로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박 화백은 "요즘 중·고등학생이 손을 잡고 다니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우리는 왜 못해봤을까. 억울하다. 사랑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배운다.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지를 배운다"고 말했다.

돈을 벌 권리도 있다고 했다. 그는 "옛날 아이들은 우리가 못 살아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이 돈을 벌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공부만 하게 할 수 없을까 였다"면서 "요즘 아이들은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어른들은 '누가 네 보고 돈 벌어 오라고 했느냐'며 공부만 하라고 한다. 공부만 하는 게 아이들은 너무 힘들다. 차라리 돈을 벌게 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험을 들추어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림을 그려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실에서 까불던 아이가 권총을 하나 그려주면 그때 돈으로 20원을 주겠다고 했다. 평소에는 대충 그렸는데, 돈을 받는다고 하니까 사력을 다해 그렸다. 그 때 일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 동네 꼬마가 캐나다에서 공부하다 와서 그림이 들어간 공책을 500원에 팔아서 저는 그 돈을 주고 샀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줄게'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저는 그 아이의 장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이들이 저한테 만화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묻는다. 정말 되고 싶냐고 묻고는, 나중에 되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만화가라고 생각해라고 했다. 만화가는 나이 제한이 없고 자격증도 없다. 많이 보면 인기작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만화책을 내서 격려사를 써준 적도 있었고, 그 책은 일본어판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법관이 되고 싶은 아이가 있으면 지금 친구들의 싸움을 판가름 내고, 선생이 되고 싶으면 밑에 학년을 가르치면 된다. CEO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있었는데, 지금 친구들 하고 회사를 차려 보라고 했다." 박재동 화백은 "실패도 빨리 하는 게 좋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은 좋은 친구들 하고 작당할 권리다. 친구들하고 작당하면 어떤 일이든 이겨낼 수 있다"면서 "국영수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어른들은 '공부 하면 나중에 행복해 질 거야' 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지금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부는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적게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국영수 위주로 하겠다는 말과 같다. 입시에 방해가 되는 것은 다 쳐내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 수학 공부를 하는데 어떤 아이는 잘 따라가지만 다른 아이는 잘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자기 속도를 가져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 자기가 쳐해 있는 진도가 다른데,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선후배 교류의 권리가 있다. 1학년은 2학년한테 말을 높여야 하고, 길에서 2학년 만나면 좋은 일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도 만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서로 상하로 따지기 때문이다. 서로 교류를 해서 자유스럽게 해서, 상하로 따지지 말고 수평으로 해야 한다. 서로 도와주고 해야 한다. 저학년과 아이들은 고학년과 선생을 슬슬 피하는데 나라가 발전하겠나."

박재동 화백은 16일 오후 부산 민주공원에서 강연했다.

ⓒ 윤성효

박재동 화백은 "아이들은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자치권이 있어야 한다"면서 "결국에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려면 대학서열화를 없애야 하고, 서울대를 위해 모든 것들이 들러리 서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시대 교육 대토론회'를 제안했다. 박 화백은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청, 국회의원, 대학, 기업 등 모두 참여해서 교육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큰 회의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교과부에서 정하는 대로 왔다 갔다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하고 싶다고, 교사들은 이렇게 가르치고 싶다고, 기업은 이런 사람을 뽑겠다고 요구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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