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北인권법 제정은 최소한의 道理
김일수/고려대 명예교수·법학,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북한인권법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노선에 얽매여 3~4년이 지나도록 표류하고 있는 현실은 보편적 인권의 시각에서 볼 때 매우 서글픈 일이다. 지난 2005년 8월 제17대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적이 있었으나 제17대 국회의 회기 만료로 인해 폐기됐다. 이어 제18대 국회 들어 지난 2008년 10월 다시 북한인권법이 발의됐으나 오늘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발의된 북한인권법의 골격은 북한인권자문위원회 설치, 북한 인권 개선과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 및 집행계획 수립, 북한인권재단 설립 운영, 북한 인권 기록 보존 담당 기구 설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가 북한 인권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시기에 미국은 2004년 10월1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북한인권법을 발효시킨 바 있다. 이 법안에는 북한 주민의 인권 신장, 북한 주민의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 등 북한 인권 신장을 위한 실질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웃 일본도 2006년 6월23일 북한인권법을 공포했다. 정식 명칭은 '납치 문제 및 그 밖의 북조선 당국의 인권 침해 문제의 대처에 관한 법률'로 돼 있다. 이 법률에도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최대한의 노력 외에 국제적 연계의 강화,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 선박 입항 금지와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에 따른 제재 조치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13일 북한을 탈출해 동해상에 표류하던 중 일본 근해에서 구조된 9명의 보트피플은 김정일 정권의 폭압과 학정 밑에서 신음하던 일가족 9명의 목숨을 건 모험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은 이 탈북자들을 앞서 언급한 북한인권법의 정신과 그들의 희망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인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작은 목선에 의지한 채 파도 험난한 동해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것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탈출하는 북한 주민의 경우보다 훨씬 위험스러운 모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탈출을 결행한 것은 북한에서의 생존조건이 이미 한계상황에 처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외치며, 천안함·연평도 도발에서 보듯 전쟁 위협도 불사하는 호전적 북한 정권이 어떻게 내부적으로 침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공포정치와 강제수용소, 인신의 자유 탄압과 빈번한 총살형 집행, 절대빈곤과 영양실조로 고통당하는 어린이들과 병약자들, 종교와 양심의 자유 탄압 등은 이미 탈북자들의 단편적인 증언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여러 국제사회의 증언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7월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 30여개 국제인권단체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결속하여 북한의 참혹한 인권 현실을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 인권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정치적·법적 도덕성을 견지하는 자세가 될 것인지 우리는 다시 한번 자문해 봐야 한다. 북한 인권 개선과 인도적 대북 지원을 그때 그때 정치적 풍향에 따라 좌우할 게 아니라, 법적·제도적 장치에 따라 일관성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그러려면 이번 가을 정기국회에서는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는 북한인권법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높은 인권 감수성을 지닌 인권 선진국들의 노력에 동참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분단된 조국을 살아가는 동족으로서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도덕적 연대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대량 탈북자들과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현실적인 대응책을 북한인권법에 미리 마련해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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