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백두산艦은 증언한다

문갑식 선임기자 2011. 9. 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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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숙이,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돼요. 뉴욕의 존 스태거씨에게 꼭 전해야 합네다." 문서를 건네주는 노(老)대통령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걸 받아든 이는 시인 모윤숙(毛允淑)이었다. 1949년 어느날 경무대(景武臺)에서 있었던 장면이다.

'진해를 미군에게 맡길 테니 군사원조를 해달라!' 이런 민감한 내용의 친서를 외교관 아닌 젊은 여성에게 맡긴 사연이 있었다. 한 달 전 같은 일을 공직자에게 시켰더니 일본 하코네(箱根)온천에서 기생 끼고 농탕치다 편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60년 전 우리 수준은 그랬다. 인적자원이 이 지경에, 팔아먹을 천연자원도 없었다. 그래서 일제가 만든 군항(軍港)에 미군을 끌어들여 안보도 다지고 달러를 받아 맨주먹뿐인 군대까지 무장시키자는 일석이조의 꾀를 낸 것이다.

트루먼이 무시하는데도 자존심 센 이승만 이 끝내 매달린 이유가 있었다. 독립운동 시절 진주만기지에서 본 미국 함대와 해군 때문이었다. 그때 받은 감명이 하도 깊어 그는 항상 '육해공(陸海空)'을 '해육공(海陸空)'으로 바꿔 불렀다.

당시 우리에겐 함정이 36척 있었지만, 미국제 소해정(掃海艇) 몇 척 빼면 어선이나 다를 바 없었다. 번듯한 전함(戰艦)은 이승만의 염원이자 해군의 바람이었다. 그 비원(悲願)으로 1949년 6월 '함정건조기금갹출위원회'가 발족했다. 해군이 봉급에서 성금을 떼자 아내들은 천막에서 작업복을 지어 팔았다. 이렇게 석 달간 1만5000달러를 모았다. 딱 중고 전함 한 척 값이었다.

전함구매단이 미국에 가서 1만8000달러를 주고 산 게 무게 450t짜리 구잠함(驅潛艦)이었다. 퇴역해 벌겋게 녹슨 배를 되살리려 구매단은 수리공·페인트공이 됐고 그해 12월 26일 오전 10시 명명식이 열렸다.

백두산함(艦)은 가는 곳마다 동포를 울렸다. 마스트에 태극기가 처음 걸릴 때는 군인이, 포·레이더를 구하러 간 하와이에선 사탕수수밭 노동자가, 포탄 사러 간 괌에선 징용갔다 미처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들이 울었다. 처음엔 배가 너무 초라해, 나중엔 그래도 조국의 첫 전함이라는 뿌듯함이 눈물샘을 건드렸다.

백두산함은 진해에 도착한 한 달 반 뒤 6·25전쟁이 터지자 진가를 발휘했다. 부산항으로 접근하던 소련제 수송선을 대한해협에 수장(水葬)시킨 것이다. 거기엔 북한특공대 600명이 타고 있었다.

당시 남한 항구 중 접안(接岸)시설은 부산에만 있었다. 백두산함이 없어서 부산이 함락됐다면 한국에 온 100만 병력과 물자는 갈 곳이 없었을 것이다. 남쪽으로 밀리던 국군은 뒤통수를 맞고 전멸하고 그와 함께 대한민국 도 사라졌을 것이다. 해군과 군항은 이렇게 운명을 가른다.

문제는 우리 해군의 발전에도 상황은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위에는 북한, 왼쪽엔 중국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한국 해군을 반나절 안에 궤멸시킨다는 전력의 일본이 있다. 이 중 누구라도 제주 남방해로를 1주일만 틀어막아도 한국은 고사(枯死)한다. 원유·곡물·원자재가 그곳을 지나기 때문이다. 그런 요충이기에 군을 그렇게 싫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제주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지 않았다.

거기서 종북(從北) 얼간이들이 날뛰고 겁쟁이 정권은 끌려 다녔다. 백두산함의 넋이 살아있다면 몇줌 안 되는 김정일 추종세력에 앞서 그들을 겁내 국민의 생명줄조차 못 지키는 비겁한 정권을 향해 분노의 포신(砲身)을 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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