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일로 제명된다면 누가 남겠나" 옹호 발언에 "잘했어"

최경운 기자 2011. 9. 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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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아 걸고 '성희롱 강용석 제명안' 부결.. 국회 현장 재구성

31일 오후 3시 국회 본회의장. 박희태 국회의장이 개의(開議)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자 국회 경위들이 방청석에서 대기하던 시민단체 관계자와 기자들에게 "나가달라"고 한 뒤 문을 걸어 잠갔다. 국회 곳곳에 설치된 본회의장 중계 모니터도 꺼졌다.

무소속 강용석 의원 제명징계안 표결이 의안으로 올랐다. 강 의원은 작년 7월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해 작년 9월 한나라당에서 제명·출당(黜黨)됐고, 지난 5월 1심 법원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상급 법원에서 확정되면 강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비공개 본회의가 전례가 드물지 않으냐"는 비난이 빗발치자 국회 관계자는 국회법을 내세웠다. 국회법 158조는 '징계에 관한 회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의결이 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내용이다.

여야 지도부 담합 의혹

비공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날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단상에 올라 강용석 의원을 옹호하는 발언을 시작했다. 국회 관계자는 "징계 심의를 받는 본인이 아닌 다른 의원이 옹호해주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날 불참한 강 의원은 국회 측에 스스로 변호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의장은 "발언 이후 쏟아질 비난이 두렵지만 침묵하고 있는 다수 혹은 소수의 목소리를 누군가 대변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면서 말을 시작했다. 어수선하던 본회의장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김 전 의장은 '죄 없는 사람이 이 여자에게 먼저 돌을 던져라'라고 말한 예수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정말로 여러분은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질 만큼 떳떳하고 자신 있는 삶을 살아오셨느냐. 고백하건대 저는 돌을 들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강 의원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도록 돌팔매질을 당했고, 사법적 심판이 진행 중"이라며 "뼈저리게 참회하고 있는 강 의원을 이제 그만 용서하자. 죽음의 십자가에서 끌어내리자"고 했다. "이만한 일로 강 의원이 제명된다면 이 자리에 남아 있을 국회의원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도 했다.

김 전 의장이 10여분간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자 일부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악수를 청했다. 의석에서 "잘했어" "살신성인(殺身成仁)했어"라는 말도 나왔다. 비공개 표결 결과 강 의원 제명안에 대해 재석 의원 259명 중 111명만이 찬성표를 던졌다. 의원 제명안은 재적 의원 3분의 2(198명)가 찬성해야 통과된다.

앞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은 의원총회에서 제명안 찬반에 대한 당론(黨論)을 정하지 않고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맡겼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이 결국 제 식구 감싸기로 면죄부를 줬다"고 했고, 민노당 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일제히 제명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표결 수를 보면 한나라당 때문에만 부결된 건 아니다"고 했다. 3~4일 전부터 여야 지도부는 '제명은 지나치다'는 데 암암리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의원 제명안이 부결되자 이명규 (한나라당)· 노영민 (민주당) 양당 원내수석부대표가 합의해 강 의원에 대해 1개월 국회 출석정지라는 '솜방망이 징계안'을 대안으로 내놨고, 이 징계안은 재석 186명 중 찬성 158명으로 의결됐다. 28명만이 반대했다. 국회 관계자는 "양당이 사실상 '이 정도 수준에서 징계하고 끝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고 했다. 이날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찾았으나 비공개로 진행된 표결 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의원들끼리 제 식구 감싸기

국회의원 제명안이 본회의까지 올라간 것은 1979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의원 제명안 이후 무려 32년 만이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제명안은 정치적 탄압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후 부도덕한 처신이나 비위 행위가 수없이 많았으나 국회는 단 한 번도 동료 의원을 제명시키겠다고 시도해본 일조차 없었다.

제명안이 본회의에 회부되기 이전 단계인 윤리특위를 통과시킨 일조차 거의 없었다. 이번 18대 국회 들어 57건의 의원징계안이 발의됐지만 윤리특위를 통과한 경우는 이번 강용석 의원 제명안이 유일했다.

국회는 검찰의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해준 일도 거의 없었다. 2000년 이후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19건의 체포동의안 중 10건은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본회의에 올라간 9건 중 8건이 부결됐고, 작년에 학교 공금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민주당 강성종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게 유일했다. 2004년 2월에는 당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 수감된 의원에 대한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의원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징계는 우리 정치 현실상 앞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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