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코믹 말폭탄'이 세계 최악인 이유
[고승우 칼럼] IHT 북 대외 비난 비판…북평화협정 전환, 6.15공동선언 이행되면 사라질 것
[미디어오늘 고승우 전문위원]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최근 북한의 대외 비난이 세계 최악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북한이 외국 언론사와의 제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용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이른바 '북한 바로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나올 만한 기사다.
그러나 이 기사는 반쪽짜리 기사다. IHT 기사는, 한반도가 정전상태이며 북한을 적대시한 한미 두 나라의 강력한 심리전 전개와 북한의 대응이라는 상호적인 측면을 외면했다. 이기사는 언론이 보도를 통해 대북 공세를 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평가된다.
IHT는 지난 22일 "북한이 원색적인 대외비난 표현을 하는 것은 세계 챔피언 수준이며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표현에 담긴 숨은 의미를 제대로 읽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IHT는 '북한이 세계 최악 수준의 원색적인 대외비난 표현을 한다'고 평가 했으나 이는 어떤 조사방법을 통해 내려졌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IHT "북한 '서울 불바다' 클린턴 '소학교 여학생' 표현 세계 최악"
IHT는 북한의 대외 비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최근 북한이 훈련용으로 호전적인 구호를 내건 한국의 일부 전방 군부대와 관련해 '무자비한 보복 성전으로 대답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등 코믹하게도 보이는 현란한 언어를 잇따라 쓰고 있다. 한반도 내 미국의 군사훈련에 대해 '1만 배의 보복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거나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이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인간추물'이라고 욕하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소학교 여학생'이라고 조롱한 사례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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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앙방송의 리춘희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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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T가 제시한 원색적인 대외 비난 사례는 북한이 자국 안보 등에 직결된 사안으로 그것은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s)차원에서 취해졌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심리전의 교과서적 의미를 살피면, 심리전은 적대 세력의 가치 신념체계, 감정, 동기.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전개되는 것으로 그 수단은 적의 심리 상태를 교란시킬 모든 파괴적 무기 등이 포함되지만 그 결과를 심리적인 것으로 국한한다. 예를 들어 미 국방성의 심리전에 대한 개념정의는 다음과 같다.
"국가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적대 세력의 사고, 감정, 태도, 행동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취해지는 선전이나 다른 심리적 행동을 말한다."
한반도는 정전협정이 반세기 이상 지속되는 지역으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정전협정에 규정되지 않은 '공세'가 갖가지 형태로 수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원색적인 대외 비난'과 같은 '말 폭탄'이다.
심리전 차원에서 제시되는 '말 폭탄'은 상대를 위축시키거나 오판토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니 IHT가 '북한이 원색적인 대외비난 표현에 담긴 숨은 의미를 제대로 읽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타당하다. 예를 들면 남북은 최근까지 상대방을 최대한 흠집 내는 '말 폭탄'을 주고받다가 며칠 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 비핵화 회담을 열고 이어 북미 회담이 이번 주말 열리는 쪽으로 상황이 급진전 되었다. 말 폭탄 상황에서 급반전한 이런 현상은 남북이나 미국 등이 한반도 관련 외교에서도 심리전적 방식을 항상 동원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많은 사례의 하나에 불과하다.
대북 적대 정책이 부른 북한의 심리전 외면한 IHT
IHT가 한반도 정세를 객관적으로 조명했다면, 북한의 대외 비난 등은 남한이나 미국이 지난 수년 동안 취해온 대북 적대적 정책과 강도 높은 심리전과 직결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번과 같은 일방적인 기사는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IHT는 한미 두 나라가 그 동안 북한을 강도 높게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격한 반응을 유발하는 정책을 취해온 것을 외면한 채 현상적인 것만을 부각시켜 보도한 것은 적절치 않다.
최근 남한의 경우를 살피면, 이명박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계획을 추진한 것은 천안함 사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뤄진 한미 연합 훈련 등의 대북 군사 훈련과 함께 수행된 대표적인 대북 심리전 사례들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폐쇄적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북한의 균열을 초래하기 위해 대북 심리전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최근까지 정상적 남북 소통을 전면 부인하는 조치로 일관해왔다. 이명박 정부는 6.15공동선언이후 이룩된 남북교류협력 과정에서의 김정일 위원장의 역할 등을 철저히 무시 또는 외면하면서 기존의 남북 관계를 중단 또는 마비시키는 조치를 주로 취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대북 심리전의 강화였다.
이는 미국 정부가 천안함 사고 등에서 남한 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방식 등을 통해 한미 공조형태로 추진되었다. 미국 정부는 천안함 사고를 동북아에서의 미국 국방력 강화 차원에서 활용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신 냉전구도가 등장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IHT가 보도한 한반도의 부분적인 현상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실천되어 남북이 상호공존하면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작업이 재개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남북이 교류협력을 강화할 때 '말 폭탄'이 자취를 감추거나 그 정도가 약화되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달성되면 말 폭탄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물론 북한도 그런 때가 되기 전에 반세기 이상 고수하고 있는 어휘와 문장의 형태가 SNS 시대에 걸 맞는지를 자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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