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공 미화 기자들이 언론계 싹쓸이 했다

김은남 편집국장 2011. 7. 13. 09: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치부 기자로 발령이 난 게 하필이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당하기 직전이었다. '난닝구' '빽바지' 따위 험한 말들이 난무하던 시절, 기자들은 툭하면 회의실 밖에서 '뻗치기'를 해야 했다. 출입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회의 내용을 엿듣는 건 그중 고참 기자 몫이었다. 신참들이야 내용을 들어봤자 "저건 다" "아냐, △△△ 목소린데?" 식으로 팩트 자체가 헷갈려 우왕좌왕했기 때문이다. 안에서 고성이 오갈 즈음이면 눈치 빠른 당직자가 화장실에 가는 척 문을 열고 나오기도 했다. 문을 여닫는 1~2초 동안이나마 내부 분위기를 훔쳐보라는 나름의 기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아마도 언론의 취재 관행으로 용인되어온 수준의 '벽치기'일 것이다. 도청인지 벽치기인지, 이른바 민주당 도청 파문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경찰 수사에서 가려지기를 기대한다. 내가 의아한 것은 KBS 내부의 침묵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서는 이런 '해외 토픽급'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망신살이 뻗칠 일이다. KBS가 자기 주장대로 결백할 경우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KBS다. 당연히 한선교 의원은 진상을 밝히라고, 우리 자신부터 모든 걸 밝히겠다고 펄쩍 뛸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게 KBS는 조용하다. 심지어는 조직 내 이해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평기자들마저 잠잠하다. 그러다보니 KBS 구성원 간에 이번 사건보다 이번 사건으로 KBS 수신료 인상이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을 더 안타까워하는 정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실 웬만큼 모진 사람 아니면 자기가 속한 조직이 흔들릴 때 돌을 던지긴 어렵다. 위기일수록 팔은 안으로 굽게 돼 있다. 그렇지만 < 9시의 거짓말 > 을 쓴 KBS 최경영 기자는 "언론인이 '우리 사회'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매몰되면 그는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가치의 우선순위를 독자나 시청자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두는 사람의 정체성은 언론인이 아닌 '회사원'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디 KBS뿐이랴. 검찰에 출두하는 사주에게 "사장님, 힘내세요" 외치던 기자들은 지금 보면 애교 수준이었다. 종편 선정과 이어진 광고 수주를 위해 영업사원 못지않게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무용담을 전해 듣노라면 입이 딱 벌어지다 못해 서글퍼질 지경이다.

더 서글픈 건 이게 꼭 조직의 생존만을 위해서는 아닐 것이라는 심증에서다. 최경영 기자는 일선 기자 시절 5, 6공을 대놓고 미화하던 자들이 이 정부 들어 언론사 핵심 요직을 싹쓸이한 것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고 진단한다. '영혼 없는 기자'들이 다시금 승승장구한 역사의 퇴행, 어쩌면 그것이 오늘의 '회사원 기자'를 기른 배양액이었던 셈이다.

김은남 편집국장 / ken@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