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 틀리면 어때! 한 줄만 쓰면 또 어떻고!"

2011. 7. 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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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레네 자유글쓰기 수업을 만나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억지로 썼던 일기, 받아쓰기를 통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키운다. 충남 예산여중 2년 김효진양도 이런 형식적인 글쓰기가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쓰는 일이 즐겁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충남 대술초 임대봉 교사를 만나 '마음밭 생활글쓰기'를 하면서 쓰는 즐거움을 알았다. 임 교사가 '마음밭 생활글쓰기'라고 이름 붙인 글쓰기 방식은 프랑스 교육자인 셀레스탱 프레네가 실천한 '자유글쓰기'였다. 자유글쓰기란 학생들이 자신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주제에 따라 자유롭게 쓴 글을 말한다. 학교 수업의 변화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요즘, 프레네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자유글쓰기란 무엇일까? 편집자

주제, 형식 얽매이지 마!

"지나간 일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봅시다. 어제도 좋고, 그저께도 좋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던 일도 좋아요. "

지난 6월23일 동광초 2학년3반 교실. 전성실 교사의 말에 여러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저희 할머니가 편찮으세요."

"그래? 할머니가 어떻게 편찮으셔?"

"머리가 생각이 잘 안 나신대요."

"그럼 할머니를 위해 뭘 해드리고 있지?"

"안마도 해드리고 그래요."

한 여학생의 이야기에 이어 다른 여러 학생들이 손을 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냈다. 여의도에서 마포까지 자전거를 탄 이야기부터 길고양이한테 밥을 준 이야기까지 갖가지 생활밀착형 사연들이 쏟아졌다. "자! 그럼 이번에는 공책에 글을 써보자. 어떤 걸 써도 좋아요. 지금 들려준 자기 얘기도 좋고, 지금 친구들이 해준 얘기도 좋습니다. 선생님이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쓰는 겁니다." 전 교사의 다음 설명에 학생들은 각자 공책을 펼쳐놓고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약 3분 뒤, 전 교사가 외쳤다. "그만! 자! 이제는 여러분 공책을 뒤에 앉은 친구한테 넘기세요. 제일 뒷줄에 앉은 사람은 제일 앞에 앉은 친구한테 주면 되겠지? 공책을 받으면 친구가 쓴 이야기에 이어 글을 써보는 겁니다."

이런 '이어쓰기'는 프레네 자유글쓰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특별한 규칙은 없지만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도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다. 먼저 교사는 학생들한테 교실 안에 자신의 삶을 데려올 수 있도록 돕는다. "어제, 그저께, 오늘 무슨 일 있었니?"라고 질문하면서 아이들 삶을 교실 안으로 끌어오게 하는 것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곳에 글 쓸 소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한테 빈 공책은 두렵지 않다. 특히, 이어쓰기의 경우는 이미 다른 친구가 글을 시작해줬기 때문에 첫 문장을 적는 마음이 비교적 가볍다.

'이어쓰기'는 프레네교육을 실천하는 대안학교인 성장학교별에서도 하고 있는 자유글쓰기 가운데 하나다. 이 학교를 다니는 배규하(18)군은 "누가 '오늘 내 생일이다'라고 적었으면 그 뒤로 생일과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생일 케이크에 독이 들어갔다'라는 상상 속 이야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글쓰기를 하면서 글을 쓴다는 거 자체가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는 걸 느꼈어요. 제약이 없는 글쓰기여서 그런지 창의적인 생각들도 많이 나오죠."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쓴 글을 자기만의 공책에 가둬놓지 않는다. 쓴 글을 다른 학급 구성원들과 공유하며 소통한다. 그리고 이 결과물을 협력이 더해진 작업물로 완성하기도 한다. 발표 등을 통해 서로의 글을 나눈 뒤에 학급신문, 문집, 서신교환 등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프레네는 공교육에서 이런 방식의 자유글쓰기를 실천하면서 학생들한테 자기표현을 할 기회, 교류와 소통의 기회를 줬다. 실제 전 교사네 반 학생들은 시흥 검바위초 황은주 교사네 반 학생들과 교실편지를 나누고 있다. 전 교사는 "자신이 쓴 글을 활자로 만나고, 그 글을 신문이나 문집을 통해 다른 대중들한테 소개한다는 것이 아이들한테는 큰 동기를 마련한다"고 했다.

자기표현, 공동체 소통으로 이어져

자유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글쓰기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사네 반에서도 원하는 아이들에 한해 자유글쓰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주제도, 형식도, 분량도 자유로운 이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친구를 보면서 참여를 안 하던 친구들이 참여 의사를 알린다.

학생들이 자유글쓰기를 즐거워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뜻 아래 형식적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전 교사의 학급 아이들은 흔히 말하는 '깍두기공책'을 쓰지 않는다. 네모난 틀을 주고 글을 쓰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지런히 쓰는 고전적인 형식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 또 당연히 맞춤법과 띄어쓰기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렇게 틀을 정해놓으면 자유로운 생각도 나오기 어렵다. 실제로 3반 김서은양의 공책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지런히 반듯하게 쓴 글이 많지 않았다. 김양은 자유글쓰기 시간에 공책에 달팽이 모양의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는 등 정말 자유로운 형식으로 자기만의 글을 써내려갔다. 또 '기억', '니은', '디귿', '리을'을 적어두고, 각각 이 자음으로 시작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총 네 문장의 글 한편을 완성하기도 했다. 김양은 "이렇게 써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생각이 나온다"고 했다.

교사들은 자유글쓰기를 하면 1차적으로 글쓰기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전 교사는 "받아쓰기,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일기 등을 쓰면서 느꼈던 글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벗어버릴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마음 깊이 숨겨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또 이런 글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서로의 속사정을 나누기도 한다. 전 교사는 "혼났던 기억, 마음 상했던 말들에 대해서 적은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면 잘못 쓴 단어, 띄어쓰기 공부는 언제 할 수 있을까? 자유글쓰기를 통해 신문, 학급문집 등을 제작하고, 학생들끼리 서로의 글을 읽어주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다듬어진다. 성장학교별의 정수미 교사는 "자유롭게 쓸 때는 띄어쓰기, 맞춤법, 단어의 올바른 사용 등에 대해 신경을 안 쓰게 하는데 친구들과 공유하거나 협력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해준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이 단어가 더 맞지 않니?" "이번 글이 저번 글보다 더 좋은 거 같아"라고 이야기를 해주죠. 그리고 학급신문에 내는 등 인쇄매체에 실을 때는 대중들 앞에 글을 보여주는 거니까 친구들끼리 사전을 찾아 단어를 제대로 썼는지도 봐줍니다. 신문 제작, 출판 등을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대술초 임대봉 교사는 "자유글쓰기는 학생들한테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개인들 사이에 얽혀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입장 차이를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자유글쓰기는 프레네교육의 일부이면서 학급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고리 구실도 한다. "네가 나보고 죽으라고 해서 기분 나빠." "핸드폰으로 사진 찍지 마." 전 교사네 교실 한쪽에는 이렇게 칭찬과 부탁의 자유글쓰기 메모를 붙여둔 칠판이 있다. 교류와 소통의 기회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식적인 자치회의로 확장될 수도 있다. 성장학교별에는 '3분의 1 법칙'도 있다.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의견을 3분의 1씩 반영한다는 의미다. 성장학교별 정수미 교사는 "자유글쓰기와 자치회의 등은 프레네 교육철학의 중요한 실천인데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민주주의, 소통, 자율성이 실현된다"고 했다.

호기심 촉발자, 교사의 구실 중요해

자율적으로 글을 쓰는 환경을 만드는 데는 교사의 구실이 가장 중요하다. 프레네교육에서 교사는 곁에서 적절한 때 호기심 요소를 던져주고, 도움말을 주는 인물이다. 전 교사는 "프레네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해주고, 그것을 아이가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교사가 아이들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자율성이 최대한 나올 때까지 말이죠. 기본적으로 교사가 던져주는 걸 아이들이 주워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던져놓은 것을 교사가 주워담으면서 수업의 방법이나 형식, 동기유발 요소를 찾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프레네교육과 자유글쓰기

프레네교육은 프랑스의 초등학교 교사인 셀레스탱 프레네(1896~1966)가 공교육 개혁을 위해 창안한 프레네 교육은 20세기 유럽 교육개혁운동의 큰 흐름을 차지하는 교육사상이다. 프레네교육은 학습에서 학생들의 동기와 자발성을 매우 중시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기초해 스스로 학습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프레네는 어린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자신한테 깊은 인상을 남긴 주제에 따라 자유롭게 쓴 글, 즉 자유글쓰기를 교육실천의 핵심 기술로 삼았다. 자유글쓰기는 세 가지 원리에 기초를 둔다. 첫째는 쓰기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기를 부여하는 자유 글쓰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네는 아이들이 글을 쓰고,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는데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자유글쓰기에 이어 글쓰기 한 것을 인쇄출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자유글쓰기를 학교에서 행하는 일하기의 지엽적인 부분에 국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글쓰기는 글을 썼다고 완성되는 건 아니다. 자유글쓰기 한 것을 학교 신문이나 문집으로 제작하기, 쓴 것을 칠판에 적고 단어 찾기, 통신 교류하는 친구한테 발송하는 앨범으로 제작하기, 글 쓴 작품의 문법을 살피고, 연습하기 등으로 확장되고 이런 과정들이 순환되고, 반복해서 이어져야 의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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