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 주빌로 이와타의 박주호 선수가 스위스 FC 바젤로 이적했습니다. 바젤은 2000년 이후에만 6번의 리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최근 좋은 성적을 내는 클럽입니다. 박주호는 안드레흐트로 이적한 왼쪽 수비수 베랑 사파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번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보는 재미가 하나 더 늘어나겠죠.
그는 숭실대에 재학 중이던 2008년 일본 J2 미토 홀리오크에 입단했습니다. 미토는 2007년 J2 최하위를 간신히 면한 전력이 아주 약한 클럽이었습니다. 유망한 선수가 일본으로, 그것도 2부 리그 하위팀과 계약한 것에 대해 팬들은 적잖은 실망감을 나타냈죠. 하지만 박주호는 1년 만에 2008년 J리그 챔피언 가시마 앤틀러스 유니폼을 입었고 2010년에는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며 일본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K리그가 자유 계약 대신 드래프트를 시작하면서 유망한 선수들이 일본으로 날아갔습니다. K리그에서 뛰고픈 마음이 있어도 원하는 팀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제약이 컸고 일본이 한국보다 운동하기 편한 환경이라는 점도 있었죠. 무엇보다 K리그 드래프트에서는 계약금이 없고 연봉 상한선을 지켜야 하는 등 금전적인 부분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에이전트들은 달콤한 유혹으로 어린 선수들의 일본행을 적극 성사시켰습니다. 대학생이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하려면 학교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자퇴 후 외국으로 나가면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점도 이용하면서 말이죠.
기본적으로 어린 선수들의 일본행을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무대가 꼭 선수를 망치는 곳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운동하고 싶은 그들의 마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일본행은 기량 발전을 저해하는 지름길이란 사실만은 알아둬야 합니다. 가까운 곳이라고 해도 일본행은 엄연한 해외 진출입니다. 해외에 나가서 적응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일본으로 갔다 K리그로 돌아오는 선수가 늘어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어린 선수들은 자유로움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합숙 생활을 하며 엄격한 관리 아래 자라왔는데 해외진출과 동시에 모든 것이 자유롭게 바뀌니 운동이 제대로 될 리 없죠. 기본적인 팀 훈련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알아서 사용해야 합니다. 말은 안 통하는 데 통역도 없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든 생활을 혼자 알아서 해야 합니다. 연봉이 비싼 선수들은 구단에서 통역도 붙여주고 관리를 해주지만 막 일본으로 건너간 어린 선수들에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외부 환경에 많이 노출되면서 운동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집니다. 어느 정도 프로 생활을 하고 자기 관리가 익숙하다면 모를까 어린 선수들은 도태되기 딱 좋은 환경입니다. 운동하는 환경을 좋을지 몰라도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좋지 않은 셈이죠. 결정적으로 팀은 나이가 어려도 외국인 선수에게 인내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다면 일본행을 선택해도 좋습니다. 일본에서 성공한 어린 선수들은 모두 이런 것들을 이겨낸 대단한 선수들이죠. 서두에 언급한 박주호도 PSV 에인트호벤으로 날아간 박지성도 그랬습니다.
일각에서는 J리그가 K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일본에서도 충분히 기량을 쌓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J2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즌 도르트문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카가와 신지는 프로 4년 차인 2010년 처음으로 J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소속팀이었던 세레소 오사카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J2에 있었던 까닭이었죠. FC 포르투의 헐크도 J2에서 뛴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느 곳에서나 기량은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죠.
J리그라서, J2이라서 선수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우리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향상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좋은 선수들이 드래프트를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는 상황이 아쉽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드래프트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상황이 크게 변하지는 않겠죠. 그들을 K리그에서 보고 싶다는 욕심에 직장 선택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어린 선수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되 다들 적응을 잘하기를 바랄 뿐이죠. 어느 곳에서 뛰던 한국 축구의 재능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