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절대 가지 마라".. 아버지 원망했습니다

2011. 3. 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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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MBC 미니시리즈 < 고맙습니다 > 에 나온 치매 걸린 이병국 할아버지(신구 분)

ⓒ mbc

지난해(2010년) 추석, 아버지는 제게 줄 게 있다며 벽장 속을 한참 휘적거렸습니다. 물건을 찾는 와중에도 어지간히 힘에 부치는지 끙끙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치매의 일종인 '진행성 핵상마비'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입니다. 거동도 부자연스럽고 말도 어눌합니다. 귀도 어둡고요. 그래서 대화를 하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아버지, 무엇을 찾는지 얘기해 주세요. 제가 찾을게요."

"넌 못 찾어, 내가 찾아야 혀."

팔순이 넘어 귀가 어두워지고 병마가 찾아와 한 발짝 떼는 것조차 힘에 겨운데도 황소고집은 여전하십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자기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잠시 후 아버지 손에 작은 책 한 권이 끌려 나옵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고, 책 표지가 너덜너덜할 정도로 낡은 옥편이었습니다.

"그거 아버지 옥편이잖아요. 저 주시려고요? 전 필요 없어요. 요즘엔 컴퓨터만 치면 한자 다 나와요."

"콤퓨터에도 한문이 있다고? 그래도 이것만 있으면 웬만한 거 다나와… 난 이제 필요 없어. 도대체 글자가 보이지를 않아. 글자 보면 어지럽기도 하고… 공부는 평생 허는 거여."

이렇게 해서 저는 그 옥편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누런 옥편입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사극에 나오는 책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히 오래된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손때 묻은 누런 옥편 건네준 치매 걸린 아버지... 원망했습니다

옥편 (자료사진)

ⓒ 최은경

그렇게 받은 옥편을 아버지와 저 둘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며칠 전 고향집에 갔을 때 옥편을 내게 준 사실을 잊은 아버지는 또 다시 벽장 속을 휘적거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는 옥편이 제 손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아버지, 옥편 찾으세요? 그거 지난 추석에 주셨잖아요."

"어~ 벌써 줬어?… 공부는 평생 허는 거여."

'공부는 평생 허는 거여'란 말은 제가 커 오면서 아버지에게 늘 듣던 얘기입니다. 한때는, 아니 아주 오랫동안 제가 경멸했던 말이기도 하고요.

중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는 일찍 취직해서 돈 벌어야 한다며 공고를 가라고 했지만 저는 고집을 피워 읍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하숙이나 자취를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반 강제로 저를 기숙사에 밀어 넣었습니다.

군대처럼 규율이 엄하고, 눈뜨면 공부만 시키는 숨 막히는 기숙사를 저는 반 년 만에 나왔고 그때부터 아버지와 저는 거의 눈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제게 돈 없으니 절대 대학은 가지 말라고 했고 저는 며칠 후 책을 모두 찢어 버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공부는 평생 허는 거여'라는 말을 원망하면서….

그 후로 오랫동안, 아버지의 전쟁 참전기를 듣기 전까지, 저는 아버지가 배움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실 평생을 배움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도 공부를 했습니다.

"6·25 전쟁 때 대학생을 만났어. 그 사람은 장교였고 난 졸병이었지, 난 그 사람한테 틈틈이 영어와 한문을 배웠다. 배워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것도 그 사람한테 배웠어. 이 옥편도 그때 그 양반한테 얻은 것이지… 내 비록 일제시대에 국민핵교 밖에 못 나왔지만 기회만 있으면 배우는데 최선을…"

"공고 가서 돈 벌어라"... 아버지 아픈 마음 이제 이해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배움이 중요한데 어째서 내게는…" 이라고 물으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이미 내 나이도 마흔을 넘긴 후였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현실의 냉정함'을 뼛속깊이 느껴본 뒤였기 때문이지요.

아마 그 옛날 아버지도 아들이 원하는 것은 다 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하고 싶은 일, 힘닿는 데까지 밀어 주고 싶었을 테고요. 그것을 해줄 수 없는 처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지 이제야 짐작이 갑니다.

요즘 그 옥편을 가끔 펼쳐 봅니다. 아버지 말대로 있을 만한 글자는 다 있습니다. 그 옥편은 아버지의 지적 욕구를 평생 동안 채워주던 귀중한 물건입니다. 그 옥편을 보며 저는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을까'하며 가끔 한숨을 쉽니다. 그리고 그 한숨 속에 아버지에 대한 오랜 서운함을 실어 보냅니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게 제 탓이었고 모든 일이 제가 받아 들여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한 것도 제 탓이고, 넉넉지 못한 처지를 비관하며 허송세월 한 것도 제 탓입니다.

가끔 그 세월을 되돌려 다시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런 상상마저도 이젠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못된 습관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저는 아버지가 주신 낡은 옥편을 펼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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