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빌려 집 사고 월 86만원 이자 내라?서민 살림살이로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입력 2010. 8. 31. 11:49 수정 2010. 8. 3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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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호덕 기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부동산 대책. 정부는 2008년 6월 '지방 미분양 아파트 구입 때 양도세 감면, 지방 민간주택 전매제한 폐지' 정책을 발표한 후 2년 2개월 동안 무려 9차례나 각종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었다. 내용은 한결같다. 위축되어 있는 부동산 경기를 돈이 쉽게 돌게 해서 임의적으로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서민·중산층 주거 안정을 내걸었지만 실제 내용은 '아파트 분양 광고'와 다르지 않다.

월 86만 원 이자 내고 집 사라?

이번 8·29 대책은 한마디로 일 해서 번 돈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것만 확인시켰을 뿐이다. 사진은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 선대식

정부는 이번 8·29 대책에서 부부 합산 연 소득이 40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가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할 경우 연 5.2%의 금리로 2억 원까지 빌릴 수 있는 제도를 신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이 발표대로 처음으로 집을 사는 사람이 국민주택기금에서 2억 원을 빌릴 경우 이자는 얼마나 될까? 연 5.2%로 계산한다면 일년에 1040만 원. 12달로 나누면 86만 원이라는 돈이 2억 원 대출을 끼고 산 사람의 한달 이자가 되는 것이다. 한달에 원금도 상환하지 못하고 월 86만 원 이자를 물어가면서 집을 사라는 말. 이것이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환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 달 전부터 경제 신문과 보수 신문을 중심으로 하우스푸어(집을 가진 가난한 사람) 문제가 끊임없이 보도됐다. 강남에 집 가진 사람이 집이 안 팔려 한달에 몇백만 원의 이자를 물고 신용불량자의 처지에 놓여 있다느니, 분당의 또 누구는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도 하지 못하고 있다더니 하면서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부양책을 주문해 왔다.

허나, 몇몇 사람들의 딱한 처지가 이해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하우스푸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전부가 부동산 경기 침체의 선의의 피해자이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하우스푸어. 이 신조어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통령은 2008년 11월 미국 로스엔젤레스 동포와 한 간담회에서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내에 부자된다'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된 적 있다. 해외 동포에게 주식 투자 권유의 의미였다고 해명했지만, 야당에게서 도박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혹독한 비난이 이어졌다.

사실,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차례 쏟아 내는 부동산 대책은 서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자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좋은 집 싸게 나왔느니 이 기회에 빚내서라도 사두면 좋을 것'이라는 달콤한 '묻지마 투자'의 정부판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어왔다. 하우스푸어는 이런 기형적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중산층의 욕망이 빚어낸 부조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8·29 부동산 대책은 하우스푸어 돌려막기?

그런데 또다시 대출 내서 집 사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하우스푸어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또 서민들에게 '대출 한도 2억 원, 이자 5.2%' 카드를 내밀고 있으니 이게 서민을 위한 부동산 대책인지, 하우스푸어 돌려막기인지 도대체 가늠조차 힘들다. 그러면서 이런다. 이 조건은 '2011년 3월까지' 라고. 곧 매진입니다. 지금 바로 신청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전화기를 들게 만드는 홈쇼핑 상술과 똑같다.

부동산 정책의 우선 고려 대상은 집 가진 가난한 사람보다는, 집없이 가난한 사람(하우스리스 푸어 houseless poor)이 되어야 한다. 집없는 가난한 사람을 집있는 가난한 사람으로 만드는 부동산 정책은 서민들에게는 효용성도 실효성도 없는 정책일 뿐이다. 집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무주택자'보다 '가난'이란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정책이 서민정책, 부동산 정책의 중심이 되야 한다.

그러나 아홉 번이나 발표된 부동산 정책에서 서민들이 돈 벌어 집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어디 한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정부 발표는 대출 받아 몇 억 원하는 집 사고 한달 86만 원(2억 원을 대출할 경우) 이자 내면서, 원금이나 나머지 문제는 개인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투다. 집값은 어떤 기준으로 얼마가 적당하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어떤 정책으로 개선되어 몇 년 안으로 대출금을 갚아 내 집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는 전혀 대책이 없다.

이 무슨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인가? 2억 대출 받아 집 사서 집값 오르면 정부 은혜이고 집값 폭락해 '하우스푸어'되고 길거리에 나 앉으면 내 탓으로 돌리란 말인가? 이번 8·29 부동산 정책은 서민들에게는 집은 도저히 '벌어서 살 수 없는 것'임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DTI 규제 완화, 8·29 부동산 대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안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를 이용하여 집을 사려고 욕심내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고용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파견직 일자리가 노동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88만 원 세대라는 비극적인 세대의 출몰에도 누구 하나 뚜렷한 대안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현실. 대자본의 가격 경쟁에 하루 종일 파리만 날리는 동네 슈퍼 주인이 DTI 규제 완화되어 대출 받아 집 사기 쉬워졌다고 은행문을 넘을 수 있을까?

수억 원 대출 이자도 못 버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집값 하락(일부에서는 폭락이라 부른다)은 '실용정부'가 맹신하는 시장원리에서 보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수요)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수요는 없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시장 원리이다. 부동산 하락이 집 가진 가난한 사람들(하우스푸어)을 막다른 길로 몰고 있다면, 그래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왔다면, 진정한 수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책이 써야 한다.

최근 대통령은 기업에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서민들이 느끼는 고용시장은 강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밀림 세계나 다름없다. 언제 어느 때 잘릴지 모르는 고용시장, 언제 어떤 대자본의 괴물이 내 사업을 송두리째 삼킬지 모르는 자본 시장에서 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생존의 문제다.

살 수 있는 구매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 빌려 줄테니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런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수억 원 아파트 대출 이자만큼의 벌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일해서는 집 못 산다는 사실을 가슴에 대못 박히도록 확인시켜 주는 이런 부동산 대책은 이제 좀 그만 했으면 한다.

서민의 살림살이로 꿈꿀 수 없는 부동산 정책. 그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의 조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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