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평생 작은댁으로 사셨다" 김대중 전 대통령 출생의 비밀 토로

2010. 7. 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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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는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서 일체 말하지 않았다. 많은 공격과 시달림을 받았지만 '침묵'했다. 평생 작은댁으로 사신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감춘다 해서 어머니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고, 나 또한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화해하셨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자서전 <김대중 자서전>이 29일 출간됐다. '출생에서 정치 입문까지'를 엮은 1권과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퇴임 후 서거 직전까지'를 기록한 2권으로 구성된 이 자서전에서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과 대통령 선거 당시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에 대한 회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심경 등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73년 납치 사건의 와중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팔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양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그때,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나는 기도드릴 엄두도 못 내고 죽음 앞에 떨고 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옆에 서 계셨다. 아, 예수님!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고, 표정도 그대로였다. 옷도 똑같았다. 나는 예수님의 긴 옷소매를 붙들었다."

자신을 죽음의 문턱으로까지 몰고갔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에 대해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세월이 흘러 그의 맏딸 박근혜가 나를 찾아왔다.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지 25년 만이었다. 그녀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2004년 8월 12일 김대중도서관에서 박 대표를 맞았다.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박 대표의 손을 잡았다. 박 대표는 뜻밖에 아버지 일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드립니다.' 나는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하여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

민주화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와 관련해선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선거가 끝나자 국민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민심은 흡사 폭격을 맞은 듯했다. 거리는 너무나 조용했고, 특히 민주 진영에서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어찌됐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많은 민주 인사들의 희생과 6·10 항쟁으로 어렵게 얻은 선거에서, 그것도 오랜 독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치른 국민의 직접 선거에서 졌다. 국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평생을 지역감정의 덫에 걸려 살았던 그는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술회했다. "나는 내가 호남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 번도 고향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차별받는 호남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못해 늘 가슴이 아팠다. 그렇기에 호남인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지역감정을 선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나는 고향인 전라도를 찾는 데 많이 망설였고 가지 않았다. 가고 싶었지만, 진정 만나고 싶었지만 고향 땅을 일부러 밟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선 실망과 우려를 나타냈다. "이명박 당선인의 국정 운영이 걱정됐다. 과거 건설 회사에 재직할 때의 안하무인식 태도를 드러냈다. 정부 조직 개편안을 봐도 토건업식 밀어붙이기 기운이 농후했다. 통일부, 과기부, 정통부, 여성부 등이 폐지 및 축소되는 부처로 거론됐다. 내가 보기로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를 먹여 살릴 부처였다. 그 단견이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선 핵 폐기 후 협력'이란 부시 대통령조차 폐기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 후보로 나를 찾아왔을 때는 햇볕 정책에 공감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가장 보편적인 길을 찾는 것이 실용일진대, 그는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았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선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고향 앞산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다. 하루하루가 너무 가혹했을 것이다. 검찰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노 대통령의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을 마치 소탕 작전을 하듯 조사했다. 매일 법을 어기면서까지 수사 기밀을 발표하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 처리에 대해서도 여러 설을 퍼뜨렸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 대통령 장례위원회 측에서 내게 조사를 부탁했다. 나는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반대한다고 다시 알려 왔다. 내가 준비한 조사는 결국 읽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그의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역사적 인물과 동시대 인물에 대한 자신이 평가를 담았다. 녹두장군 전봉준에 대해선 전봉준 장군과 동학 농민군이 부르짖은 반봉건주의는 당시 최고의 사상이었다고 평가했다. 국제구호 활동가인 한비야씨에 대해선 여러 인종의 세 아이를 입양하였다니 고개가 숙여졌다고 썼다. 개그우먼 김미화씨에 대해선 평소 개그우먼으로 김미화씨를 높이 평가했는데 시사 자키의 자질도 상당해서 놀라웠다고 적었다.

그는 2009년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까지 정리된 자서전 원고를 읽으며 직접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추가로 구술해 반영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원고를 최종 검토하고서 편지 형식으로 여는 글을 적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고르바쵸프 전소련 대통령,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글을 보내와 앞머리에 실었다.

e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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