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이제, 2012년을 준비하자 / 이범
[한겨레] 차기 총선과 대선이 치러질 2012년의 정치지형이 어떠할지 예측하는 일은 나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적어도 '복지'와 '교육'이 핵심적인 정책의제가 될 것임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얼추 짐작하는 바이다. 무상급식이 물꼬를 텄고, 최근엔 '건강보험 하나로' 방안이 다음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건강보험료를 월평균 1만여원 올리는 대신 어떤 질병에 걸려도 연간 부담이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보편적 의료보장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그밖에 2012년에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정책영역으로 '주거'와 '교육'이 남아있다. 특히 교육의 영역에서 '결정적 한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은 이미 충분히 무르익었다.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이 지옥 같은 교육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염원을 들여다보면, 결이 다른 두 가지 문제의식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자유주의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사민주의적인 것이다.
자유주의적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다양화'이다. 학생의 적성과 능력에 따른 다양한 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가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대학 전공에 상관없이 '국영수' 위주로 선발하는 비합리적인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민주의적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경쟁의 완화'이다. 내신 상대평가나 일제고사처럼 경쟁을 격화시키는 제도의 대안을 마련하고, 무엇보다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를 교정할 강력한 개혁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이 전혀 사민주의적이지 않았듯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전혀 자유주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는 대학 서열화에 대한 실효적 대안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으며, 특목고가 급증하는 것을 방치했고, 대입 선발을 내신 상대평가 위주로 변경하려 시도하는 바람에 학생들의 체감 경쟁강도를 급상승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겉으로는 '다양화'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일제고사, 자사고, 수능 및 교육과정 개편 등 주요 정책들이 하나같이 강력한 획일화 효과를 초래하는 것들뿐이었다.
물론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간의 수렴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특히 대학 서열화에 대한 대안에서 이 두 가지 경향이 상충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대학 서열화에 대한 진보진영의 정책대안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인데, 나는 이 방안을 시급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이 어설프게 추진될 경우, 자칫하면 '등록금 비싼 일류 사립대'와 '등록금 저렴한 이류 국립대'로 이원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향평준화'라는 정책방향 및 이를 매개로 이뤄지는 상당한 수준의 학생선발의 사회화(기존에 거론되던 공동선발·공동학위제를 포함하여 좀더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명문 사립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강력한 재정적 인센티브 등이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평균적인 자유주의자들이 보기에 매우 좌파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논거는 교육 영역에서 경쟁을 완화해야만 사교육비를 대폭 경감하고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지금처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30년 뒤에 누가 집권하든 한국 경제의 정상적인 운용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의 건설"이라고 선언한 한나라당의 강력한 대선후보 박근혜 의원도, 그 태생적 한계상 대학을 건드리는 정책은 시도하기 어렵다는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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