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피'로 직원 배 불렸다?

이석 ls@sisapress.com 2010. 6. 2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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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가 최근 5년간 혈액수가(혈액 가격)

인상을 통해 1천6백92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뒤, 이 가운데 4백67억원을 직원 인건비를 인상하거나 부채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짜로 국민의 혈액을 뽑아 내부 직원 배 불리기에 치중한 셈이다. 이를 감시해야 할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는 예산 전용을 눈감아주기까지 했다. 복지부는 전용 예산 4백67억원 가운데 3백59억원을 탕감해주었다.

< 시사저널 > 이 입수한 적십자 내부 보고서 '혈액수가 인상 관련 사업별 추진 실적'에 따르면, 복지부는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혈액수가를 각각 3백10억5천만원과 2백30억8천만원 인상했다. 총액으로 따져보면 5년간 인상액이 1천6백92억원에 이른다. 혈액수가 인상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평가원)에 따르면, 두 차례 혈액수가 인상으로 연간 2백억원 안팎의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늘어났다.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1천억원가량 증가한 셈이 된다. 평가원의 한 관계자는 "혈액비는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80%를, 환자가 20%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혈액수가가 오르면 환자뿐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적십자는 피 값만 올려놓고, 엉뚱한 곳에 예산을 썼다. 지난 2005년 혈액백 교체에 예산 54억원을 추가로 배정했지만, 2007년 시범 사업을 위해 사용한 3억5천만원을 제외하고는 집행되지 않았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을 검사하는 핵산증폭검사(NAT) 운용비로도 해마다 2백30억원이 배정되었으나 1백60억원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헌혈자를 늘리기 위해 인상한 헌혈자 관리비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체 예산 가운데 30% 정도만 집행되었다. 적십자는 연 5회 이상 헌혈자에게 지급하는 건강검진권 구입(21억원)과 다회 헌혈자 및 헌혈 부적격자 지원(14억원) 등에 해마다 67억5천만원씩 4년간 총 2백70억원을 배정해놓았다. 하지만 실제 집행된 예산은 87억원에 불과했다. 더욱이 연 5회 이상 헌혈자에게 지급할 건강검진권(7만원 상당) 구입비는 단 1원도 집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십자는 지난 2007년과 2008년에도 인건비나 사업비 상승분 연간 1백50억원은 100% 소진하면서도, 혈액 시스템 개편이나 헌혈자 관리에 사용되는 예산은 상당 부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 직원 급여는 꾸준히 인상되었다. 적십자의 수가 미집행비 집행 내역에 따르면, 인건비성 경비 지출 내역은 지난 2005년 26억원에서 이듬해에는 1백27억5천만원으로 급증했다. 2008년에는 1백33억8백만원이 지출되었다. 차입금 이자 지급이나 체불 미지급금 지불에도 해마다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지출되었다.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까지 일부 전용해

적십자측은 예산 집행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다. 적십자 혈액사업본부 관계자는 "혈액 사업의 누적 적자가 가중되면서 혈액백 교체비나 헌혈자 관리비를 급한 곳에 사용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상황에서는 예산 돌려막기가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05년 혈액수가가 오르기 전까지 한 번도 인상된 적이 없었다. 해마다 상승하는 인건비나 재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적십자 관계자는 "예산이 없어서 10년 이상 된 버스나 혈액 원심분리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적십자가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지적은 상황을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적십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심지어 적십자 내부에서조차 "견제가 없다 보니 시스템도 없다"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부 관계자는 "복지부가 정기적으로 적십자에 대해 회계 감사를 하지만, 한 번도 이같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적십자의 누적 적자는 지난 2007년 1천억원(병원 운영 포함)을 상회했다. 적십자는 2007년 말 이세웅 당시 총재가 취임하자 거액을 들여 총재실 리모델링에 나섰다. 적십자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적십자는 지난 2007년 12월부터 총재실 자동문 수리(1백48만원), 총재 비서실 사무용 가구(9백67만원), 총재실 등 청소(1백32만원), 총재 접견실 인테리어 공사(2천7백99만원) 총재 접견실 및 특보실 사무용 가구(2천9백98만원), 특보실 등 사무용 가구(1천2백82만원) 등에 3억여 원을 지출했다.

이 과정에서 적십자는 고유 사업에만 집행하는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까지 일부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은 비영리 법인의 정관에 규정된 설립 목적을 직접 수행하는 사업에 필요한 경비이다. 적십자의 설립 목적은 인도주의 실현과 세계 평화, 인류 복지에 공헌하는 것이다. 주요 사업 및 활동은 구호·봉사·보건·남북 교류·국제 협력·혈액·병원 사업·특수복지 등이다. 이런 사업에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이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세웅 총재가 취임한 당일부터 급작스럽게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내부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 적십자 내부에 룸살롱이 생겼다"라는 비아냥거림까지 흘러나왔을 정도이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측은 "혈액사업본부의 회계는 별개이다"라고 해명한다. 적십자 관계자는 "각 사업본부별로 회계 처리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총재실 리모델링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혈액관리본부와는 상관이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십자는 당시 누적 적자가 심화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억 원의 예산을, 총재실을 리모델링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적십자 산하 혈액원 관계자는 "총재실 리모델링은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회계 처리가 투명하지 않다 보니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감사원도 지난 6월16일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서 "적십자가 정부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퇴직금 규정을 개정한 뒤, 기본 급여의 3배에 이르는 수당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윤성호

"복지부와 적십자의 짜고 친 고스톱" 시각도

문제는 이를 감시해야 할 복지부조차 적십자가 돌려치기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탕감해주었다는 점이다. 총 1천6백억여 원의 예산 가운데 적십자가 전용한 금액은 4백67억원에 달한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는 "혈액수가 인상분에 대한 것만큼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심할 경우 사기죄 등 형사적 책임도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혈액백 교체비 등 1백8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3백52억원의 예산 전용을 눈감아주었다. 향후 이로 인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적십자의 누적 적자가 심화된 상황에서 거액을 회수했다 해도 혈액수가 인상을 통해 보전해주어야 한다. 외부 정책간담회와 내부 논의를 거쳐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합의를 보았다"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1백8억원은 혈액수가 인상 없이 내부적인 자구 노력을 통해 갚도록 했다. 회계 시스템 정상화를 위한 조치도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혈액비는 현재 80%를 국민건강관리공단이 지원해주고 있다. 복지부의 경우 장관이 혈액수가를 고시할 수 있는 권한만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복지부가 혈세 수백억 원대를 자의적으로 탕감해주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초과 지급된 혈액수가 인상분에 대해 건강보험공단과 수진자는 각각의 부담 금액에 따라 민법상 부당 이익금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국 환자 네트워크인 환우회 등 일부 시민단체는 현재 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검토 중이다. 환우회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법적 검토를 받은 결과, 문제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관련 시민단체와 연계해 소송할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거액의 탕감이 복지부와 적십자 사이의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한다. 적십자의 누적 적자가 가중된 이면에는 혈액수가 인상을 제때 반영하지 못한 복지부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임금과 재료비는 매년 상승하는 데 반해, 혈액수가는 지난 1998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이에 대한 면피 차원에서 복지부가 전용된 예산의 책임을 면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MB 사진은 왜 내걸었나

2008년 3월 적십자사 대강당에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오른쪽)이 걸려 논란을 빚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지난 2008년 3월,

적십자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대강당에 난데없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이 걸렸기 때문이다. 위치는 적십자운동 창시자인 앙리 뒤낭의 그림 바로 옆이었다. 당시 적십자측은 "앙리 뒤낭 그림의 옆 공간이 허전해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건 것이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현직 대통령 사진이 적십자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절에도 적십자에는 대통령 사진이 없었다. 적십자 정관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인종적·종교적 또는 이념적 성격을 띤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시기도 논란거리였다. 이대통령의 사진이 걸린 시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 기관장의 '줄사퇴'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세웅 당시 총재는 2007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인준을 받아 취임했다. MB 정부의 물갈이 대상이었던 셈이다. '자리 보존을 위해 이대통령 사진을 건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실제 당시 내부 게시판에는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한 내부 관계자는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 동상을 세우지 그러느냐"라면서 비꼬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적십자는 서둘러 이대통령 사진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적십자 관계자는 "총재가 바뀔 때마다 특보나 사무총장 역시 물갈이된다. 이 과정에서 낙하산 인사들이 각종 직책을 맡게 된다. 겉으로는 정치적인 중립 단체를 표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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