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다양한 문제 해결위해 윤리등 비판 이성의 복원 필요"

2008. 7. 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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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철학대회' 참석위해 내한 회슬레교수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30일~8월5일 서울대) 개막에 맞춰 100여개국에서 2000명이 넘는 철학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비토리오 회슬레 미 노트르담대 교수(48)는 특별히 주목받는 스타 철학자다.

독일 출신인 그는 68혁명 이후 유럽철학계를 풍미한 탈근대 사상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플라톤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이성철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해왔다. 그가 푸코, 데리다, 들뢰즈 이후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해석학의 거두 가다머의 극찬을 받은 박사논문 '진리와 역사'를 비롯해 '헤겔의 체계' '도덕과 정치, 21세기의 정치윤리학을 위한 기초들' 등의 저서를 발표한 그는 대중철학서 '죽은 철학자들의 까페'(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국내 독자와도 친숙하다.

대회 개막 전,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한 회슬레 교수는 "20세기를 풍미한 탈근대 사상이 이성 개념을 위축시키면서 현실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렸다"며 "21세기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이성 등 다양한 비판이성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보편적 규범을 만드는 철학의 역할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하다"며 철학이 대중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신은 이성에 중심적 역할을 부여하는 객관적 관념론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다. 21세기에 이성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객관적 관념론의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언급하겠다. 먼저 객관적인 도덕적 판단의 문제다.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보자.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로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을 제시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습이나 규범 체계는 시공간에 따라 다르다. 즉 상대적인 관습이나 규범에 도덕적인 질문들을 환원할 수 없다.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도덕 규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두번째는 세계인식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세계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인식 가능한가'하는 인식론에 관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세계가 수학적으로 구성돼 있고 수학이 현실에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세계인식이 가능한 것이다.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현실자체가 이성적으로 구조화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세계는 객관적 이성의 표현이고 세계 그 자체에 객관적 이성이 포함돼 있다."

-객관적 관념론은 이성을 배격하는 탈근대주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탈근대 이성 비판이 갖는 한계는 무엇인가.

"탈근대주의는 이성 개념의 축소를 가져왔다. '기술적 이성'이 근대가 산출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탈근대 이론가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성이 스스로 산출한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일반화해버리면 모든 문제가 권력투쟁으로 환원된다. 그런 점에서 탈근대 철학자들이 일반적인 이성까지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은 윤리적 이성이 필요하며, 세밀하고 상이한 이성개념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근대의 기술적 이성 외에 윤리적 이성 등 다양한 이성개념을 상정할 때만이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탈근대 사상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례로는 무엇이 있을까.

"탈근대적 사유는 포괄적인 정의이론을 갖고 있지 않은데 그게 가장 치명적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무엇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입장이 없다. '과연 정의로운 전쟁은 어떠한 근거에서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여기에 대답을 해야 한다. 하지만 탈근대 철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못할 뿐만 아니라 질문조차 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에 대한 강조가 독단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이데거를 보자. 그는 환경문제에 대한 근대의 파괴적인 경향을 인식하고 치밀하게 분석한 점은 탁월하다. 그러나 근대적 계몽에서 싹트고 발전된 보편적인 정의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하이데거가 나치와 협력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탈근대 사유의 긍정성은 기술적 이성의 위험성을 지적한 점이다. 반면 사건을 책임지고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렸다. 현실에서는 이성적이고 규범적인 이론들이 필요한데 탈근대사조는 그런 보편적인 능력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런 점은 전통적인 독단적 사고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인터넷과 결합된 새로운 대중정치를 놓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보화사회를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보는가.

"인터넷의 장점은 부인할 수 없다. 빠르고 좀더 값싸게 효율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대중들의 의미있는 정치적 행동을 강화시켜줄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전통적인 출판물에 비해 정보가 정확하지 않고 피상적이다. 즉 사회의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을 인터넷 정보에 의존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감정에 휩싸이기 쉽고 피상적인 내용으로 복잡한 사태를 단순화할 여지가 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회 양극화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시장근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대세다. 국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생산성의 측면에서 옳지 않다. 그러나 국가의 과제도 분명하다. 국가는 시장이 잘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독점이나 가격담합 등의 시장질서교란행위를 제어해야 한다. 또한 국가는 이익만을 최대화하려는 태도가 너무 광범위하게 퍼지는 것을 제어해야 한다. 그런 풍토를 통제하지 않으면 기업가들이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사회가 부패할 수 있다."

-이번 철학대회의 주제가 '지금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이다. 한국에서는 철학이 현실과 떨어진 고루한 학문으로 취급받으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철학이 복잡다단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떠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보나.

"50년 전만 해도 위대한 사상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르트르, 하이데거, 화이트헤드를 언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세상이 복잡해졌고 세분화됐기 때문이다. 철학도 분석철학처럼 기술적이고 세밀한 분야에 몰두하면서 종합이론가들이 나올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철학은 여전히 중요하다. 인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범이론을 만드는 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현대철학자들은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철학서를 많이 써야 한다. 또한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학 형식의 저술을 고민해 봐야 한다."

<글 강병한·사진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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