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속 '똘이장군' 꺼내 촛불진화?

류정민 기자, dongack@mediatoday.co.kr 2008. 7. 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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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경찰-언론, 애처로운 '색깔론' 여론몰이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자]

'똘이장군'이 영웅으로 대접받던 시절 반공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똘이장군이 늑대와 돼지로 묘사된 '북한 괴뢰 집단'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희열을 느꼈고 북쪽에 적개심을 가졌다.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웅변대회, 반공 표어 대회, 반공 그림 그리기 대회 등 반공교육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때부터 철저히 시행됐다. 반공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했던 군부 독재세력에 든든한 방어막이 됐다.

체제 비판 세력은 '빨갱이'로 몰렸고 방송과 신문에는 심심찮게 간첩단 소식이 실렸다. 대학생들도 재야인사들도 각종 조직사건에 연루돼 공안 기관에 이끌려갔고 똘이장군 세대들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08년에 80년대 '똘이장군' 카드가 통할까

▲ 똘이장군 영화 포스터

70년대 말, 80년대 초 중반의 얘기를 2008년에 다시 꺼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와 70년대 심지어 이승만 시대를 넘나드는 이명박 정부가 이제는 창고 속에서 잠자던 '똘이장군'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산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시대에 '빨갱이' 타령은 통할까.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이런 일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체는 경찰과 일부 언론들이다.

서울시지방경찰청은 4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가 촛불집회 초기인 5월6일부터 불법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주도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진보연대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행위를 주도하려 했을까.

서울시경 "광우병 대책위와 진보연대가 불법행위 주도"

서울시경은 한국진보연대가 △매일 촛불집회를 열고 특히 주말에는 총력 집중 해달라 △정부에서 고시를 강행하면 즉각 규탄활동을 조직해달라 △경찰의 폭력에 항의해달라 △가두선전을 강화해달라는 내용의 투쟁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경은 지난달 20~22일간 열린 '48시간 국민행동'에서 한국진보연대가 "대학로에서 시청으로 행진을 시작한다" "국회의원에게 항의 전화와 메일을 보내자"고 주장했고 "모래주머니를 5m 폭으로 쌓을 경우 모래주머니 13만5000 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경 관계자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촛불집회에서 청와대로 나가자고 주장하고 참가단체들에게 정기적으로 투쟁지침을 하달했다는 것은 대책회의와 진보연대가 불법적인 촛불집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문화일보, 경찰 발표 대서특필…"폭력 연관성은 아직"

▲ 문화일보 7월4일자 1면.

매일 촛불집회를 열고 특히 주말에 총력 집중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경찰 폭력에 항의해 달라는 주장이나 국회의원에 항의 전화를 보내자고 제안했다고 해도 그게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미디어다음 아고라에는 이런 류의 주장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쏟아진다. 오히려 훨씬 더 과격한 투쟁을 주장하고 독려하는 글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경찰은 진보연대 수사에서 발표한 내용 이상의 과격한 주장이나 내용을 찾아내지 못했나 보다. 매일 촛불집회를 열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에 정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경찰의 수사 결과를 더 정색을 하며 대서특필한 언론도 있다. 문화일보는 4일자 1면에 <&ldquo;청와대 진격투쟁-'국민토성' 쌓기 대책회의 등 기획-조직적 주도">라는 기사를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공화국은 북을 지칭?…헌법 제1조도 그렇다면?

문화일보도 수사 결과가 약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기사의 마무리는 기사 제목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문화일보는 "경찰이 이날 공개한 압수수색 자료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 이미 공개된 것들인 데다 두 단체와 폭력시위 간의 연관성이 명쾌히 밝혀지지 않아, 두 단체의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 한국일보 7월4일자 10면.

웃지도 못하겠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은 또 있다. 한국일보는 4일자 6면 <황순원 대표 집서 '이적 표현물' 발견>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일보는 기사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의 주최 단체에 대한 수사가 공안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3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 구속된 한국진보연대 황순원 민주인권국장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에서 '공화국은 참다운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이다'라는 문장이 적힌 문건이 발견됐다"면서 "통상 '공화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줄인 말로 사용되기 때문에, 검경이 황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국=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말이었을까. 국어사전은 공화국을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를 이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화국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또 말이 들어본 단어이다. 그렇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겨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돼 있다. 황순원 국장이 말한 공화국이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북쪽과 연계시키려는 대한민국 검찰과 경찰의 인식은 한 번쯤 따져봐야 할 대목 아닐까.

경찰도 좀 과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한국일보는 기사에서 "황씨의 영장에 적시된 문건 외에는 '이적표현물'이라고 볼만한 자료가 추가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경찰 관계자의 얘기를 전했다.

▲ 조선일보 7월4일자 사설.

조선일보 "KBS는 조선중앙TV 서울 출장소인가"

조선일보는 4일자 사설에 <kbs 조선중앙TV 서울 출장소인가>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KBS <시사기획 쌈>이 지난 1일 촛불집회 관련 방송을 내보낸 사실을 지적하며 북한의 조선중앙TV와 비교한 것이다.

경찰과 언론의 '색깔론' 여론몰이는 애처롭기만 하다. 공안정국을 뒷받침하려면 좀 그럴듯한 사건을 터뜨리던가, 쓴웃음을 주는 사건을 터뜨려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똘이장군'을 꺼낸다고 해서 30~40대가 반공 글짓기 시대의 말 잘 듣는 어린이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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