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시 주민소환 무엇을 남겼나
(하남=연합뉴스) 김경태 심언철 기자 = 전국 처음으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경기도 하남시의 주민소환운동이 12일 소환여부를 확정짓는 투표 결과 김황식 시장에 대한 소환이 무산되고 시의원 2명만 소환되는 선에서 마무리됐으나 지난 14개월간 하남시의 현안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지역민심을 분열시키는 적지않은 후유증을 남겼다.
첫 시험대에 오른 주민소환제도 역시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참여 확대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행상 적지않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 됐다.
◇ 행정공백..민심 분열 = 지난해 10월 김황식 하남시장의 광역 화장장 유치계획 발표와 함께 하남시의 모든 행정은 이 분야에 집중됐다. 광역 화장장 유치가 무산된다면 하남시는 1년 2개월을 성과없는 정책에 행정력을 소모한 셈이다.
하남시는 지난 6월 광역 화장장 유치를 전제로 대형 아웃렛단지 개발 등을 포함한 교육.교통.환경.부자명품 도시를 만들겠다는 4대 비전.전략을 발표했으나 모두 광역 화장장 유치에 따른 지원금이 있어야 추진 가능한 사업들이다.
김황식 시장은 광역 화장장 반대운동이 시장퇴출 운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찬반투표로 화장장 유치여부를 결정하자"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반대 쪽 주민들과 법적 공방까지 벌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장기간 주민과 갈등을 빚고 두 차례 38일간 직무가 정지되면서 행정공백이 생기고 김 시장은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주민소환투표에는 9억2천만원(1차 2억5천만원, 2차 6억7천만원)의 시 예산이 들어갔다. 하남시의 열악한 재정여건(재정자립도 47%, 가용예산 400억원)을 고려하면 아까운 혈세가 두 차례 주민소환 추진에 소모됐다.
게다가 14개월간 지속된 감정섞인 대립으로 지역민심은 김 시장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두 갈래로 갈라졌다.
이 때문에 하남지역에서는 "결과적으로 시장이나 주민 모두가 피해자"라면서 분열된 민심을 어떻게 추스를 지, 어떤 부작용으로 나타날 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또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지역사회와 지방정부의 갈등 조정능력이 한계를 드러냈고 이에 대한 중앙.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중재시스템의 작동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시각이 많다.
비록 명분이 있고 발전적인 정책이라도 주민들을 최대한 설득시키고 함께 뜻을 모아 추진하려는 지방행정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 주민소환제 논란 = 지난 5월 25일 주민소환법이 발효되고 7월 23일 하남시 주민들이 처음으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면서 주민소환제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시민사회에서는 일정한 수의 주민들이 찬성하면 지방공직자를 임기 중에 퇴출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참여를 확대하고 지방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투표실시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현행 주민소환법에 소환청구사유 제한조항이 없어 이유를 불문하고 투표권자의 10-20% 이상이 서명해 투표를 청구하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투표가 실시된다.
김 시장은 이를 문제삼아 "주민소환법이 위헌 법률"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또 청구기간 제한이나 청구 각하요건 등 주민소환법의 여러 조항에서 허점이 노출되면서 행정소송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민소환투표 발의만으로 자치단체장의 권한행사를 정지한 것을 두고도 공무원의 투표 중립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장기간 행정공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남시장의 경우 주민소환투표 발의와 동시에 두 차례 38일간 직무정지로 '식물상태'가 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지방자치단체장과 퇴출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주민 눈치만 보는 소극적이고 인기영합적인 정책만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김 시장은 이번 소환투표가 "님비현상을 이용해 소신과 민주적 절차(주민투표)에 따라 행정을 펼치는 시장의 직위를 부당하게 박탈하려 한다"면서 "주민소환법 미비로 주민소환이 '정치적 소환'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주민소환 자체가 주민들의 손으로 주민의견에 반하는 지방공직자를 '정치적으로 탄핵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남시주민소환추진위 측은 "화장장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독선과 졸속 행정, 시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등 시장으로서의 자질 부족이 소환사유였다"며 반박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용학 수석전문위원은 "주민소환이 주민의 참정권 강화라는 취지에서 공감한다. 그러나 지역현안사업이 주민소환까지 간다는 것은 안타깝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청구사유를 명시하는 등 주민소환법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서영복 사무처장은 "주민의사를 초기단계부터 좀더 열어놓고 수렴하는 열린 행정을 해야 한다"며 "이번 주민소환투표가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 성숙을 위한 기회이자 사회적 비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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